
[현대해양] 창경. 물속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그 거울 너머로 강원 강릉시 강동면 창경바리어업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강릉 바다는 너무나도 맑아 그 높이가 나무 한 그루 정도 족히 될 해조들이 투명하게 보이는 모습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바람 한 점 없는 잠잠한 날씨, 파도 위로 떼배와 전마선이 넘실거렸다. 넘실거리는 배에는 강릉 돌미역이 가득 쌓여있었다.
창경바리와 푸름
강릉 창경바리어업은 조간대 바위를 뜻하는 강원 지역 방언 ‘짬’에 자란 미역 등의 해조류나 어패류를 배를 타고 나가 창경을 통해 물 속을 보면서 긴 낫대로 베어 채취하는 어업이다. 현재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일대에서 집단으로 전통 방식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어업이며, 주요 어획 수산물은 돌미역이다. ‘창경바리’는 창경을 이용하는 어업 또는 어민을 뜻한다. 창경바리어업의 시초는 18세기 초 함경도 어민들이 바닷속이 잘 투영돼 보이도록 수면 위에 어유(魚油)를 뿌리는 ‘푸름’이라는 방식에서 시작해, 산업화 후 유리가 널리 보급되면서 창경(窓鏡)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강릉 지역에서는 1950년대 이전에는 짬에서 미역 등의 채취를 진행할 때 문어, 대구 등의 내장, 즉 생선 애를 썩힌 어유를 작은 항아리나 깡통에 담아뒀다가 배 주변의 수면에 뿌려 투시성을 높이고 시야를 확보해 어로 활동을 진행했다.
창경바리어업의 기본 도구는 배, 창경, 낫대(낫이 달려있는 대나무 장대), 작살 등이 있으며, 과거에는 주로 떼배를 이용했으나 현재는 전마선을 많이 이용한다. 물속을 들여다보는 창경은 가볍고 견고한 나무로 긴 사다리꼴 형태의 틀과 그 바닥에 유리를 붙이는 형태로 제작된다. 물안경을 쓰면 물속이 선명하게 보이듯, 창경을 통해 시야가 확보돼 바닷속을 더 명확하게 들여다보며 미역을 채취할 수 있게 된다. 떼배나 전마선에 1~2인이 승선해 수중의 미역을 걷어 올려 배에 싣는 작업을 하고, 육지로 옮겨 미역을 건조대에 붙이는 작업을 3~4명의 가족이 함께 한다. 건조와 포장, 판매 등에도 가족이 참여해 지역의 중요 소득 사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창경바리어업은 1950~1970년대 사이 동남해안 일대에서 크게 성행했으나, 현재 집단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강릉시 강동면 일대에만 남아있는 전통 어업이다. 현재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 지역의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 있는 해역을 중심으로 3개 어촌계가 창경바리어업을 지속적으로 보존,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이렇게 3개 어촌계에서 생산되는 미역에 한해 포장재에 ‘창경바리’를 표기한다.

바다부챗길로, 창경바리 보러 가자
지난달 12일 이른 새벽, 심곡리 원도식 어촌계장은 눈을 뜨고 제일 먼저 기상을 관측한다. 과거에는 심곡리 인근의 ‘섭바위’라는 명칭을 가진 바위를 관찰하며 바위 주변으로 파도가 칠 때 흰 거품이 일어나지 않아야 출어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현재는 기상 관측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수고가 덜해졌다. 다행스럽게도 이날, 파도가 잔잔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 조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침 8시, 어민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섰고, 기자는 창경바리어업 조업구역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정동심곡 바다부채길’로 걸어 올라갔다. 정수리가 타버릴 듯한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지만, 창경바리어업을 하기엔 완벽한 날씨였다. 잠시 기다리니, 어촌계원들과 함께 출항한 전마선 7척이 일제히 나타났다. 이윽고, 바다부챗길 인근의 미역바위 ‘짬’에 붙어서 조업을 시작한다. 창경에 연결된 실줄을 단단히 물고, 얼굴을 파묻고 바닷속을 긴 낫대로 찌른다. 1~2번 찌르자마자 정확히 미역을 다발로 건져 올린다. 바닷속을 가볍게 헤치는 것으로 보였는데, 떠오르는 미역으로 금방 배가 가득 찼다. 80세 가까운 노인들이 평생을 창경으로 바닷속을 들여다보며 쌓았을 노련함이었다.
창경바리어업인들은 한참 후 조업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선착장 옆에서 운영하는 건어물 가게를 돌보던 어업인의 부인이 손수레를 끌고 왔다. 80세가 넘은 고령의 어업인들이지만, 물에 촉촉하게 젖어있어 무거운 미역이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를 다들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인근의 바다부챗길을 산책하려던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막 채취한 신선한 미역을 그 자리에서 나눠 먹고, 비닐 봉투에 아낌없이 담아 나눠주는 정 또한 목격할 수 있었다. 바닷물을 흠뻑 머금고 있는 미역은 정말로 짰는데, 방금까지 바닷속에 있던 싱싱한, 또 몸에도 좋은 미역을 언제 또 먹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어업인들이 건네주는 미역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창경바리어업은 11시 이전에 조업을 끝내야 한다. 채취한 미역을 햇볕에 충분히 말리는 건조 과정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미역을 많이 채취해와도, 건조 작업에서 실수가 있으면 미역이 마르면서 붉은색을 띠게 되는데, 이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직접 물 속에 들어가 미역을 채취할 수 있는 잠수어업에서 미역 채취가 선호되지 않는 이유다. 많이 채취해와도, 건조 과정을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창경바리어업이 잔잔하고 화창한 날씨에 주로 진행되는 것 또한 건조 과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채취한 미역을 가져오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미역을 선별하고, 못 먹는 부분을 잘라낸 뒤 건조 작업에 돌입한다. 본래는 그물망 위에 널어 햇빛에 3일 이상 말리는데, 현재는 육상에서 1차 건조 작업 후 강릉시에서 창경바리어업 유지를 위해 지원해 준 건조기로 2차 건조함으로써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 채취한 미역은, 내년 설을 샐 때까지 묵혀서 삭는 과정을 거쳐야 부드러워진다고 어업인은 설명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비로소 미역의 ‘퍼들퍼들한’ 느낌이 줄어들어 판매하기에 적합해진다고 한다.


오동나무 떼배타고 ‘짬’으로
오전 10시, 또 다른 형태의 창경바리어업이 진행되고 있는 정동1리로 향했다. 정동1리의 창경바리어업은 ‘떼배’를 이용하는 방식인데, 오직 한 사람으로부터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정상록 어촌계장은 오동나무를 3년간 그늘에 말려 직접 만든 떼배로 3대를 이어오며 창경바리어업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정상록 어촌계장은 동력이 있는 전마선에 떼배를 묶고, 짬이 잔뜩 있는 해역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에메랄드빛 바다 아래로 미역이 풍성하게 자란 짬들이 보였다. 떼배에 옮겨탄 정상록 계장은 노를 저어 방향을 전환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며 미역을 채취했다. “이게 바로 강릉 창경바리어업입니다!”라고 정상록 계장은 기자에게 외쳤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떼배가 미역으로 가득 찼고, 미역을 자루에 담아 전마선 내부의 보관함에 넣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배를 타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창경바리어업을 보여준 정상록 계장은 건조 작업을 위해 선착장을 바삐 떠났다.
창경바리는 ‘역사’가 될 것인가
창경바리 돌미역은 1980년대 양식 미역이 대량 생산되면서 한 때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재 자연산 선호와 웰빙 바람을 타고 돌미역의 수요가 다시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지켜오고 있는 어민의 수가 적고, 고령화로 인해 전승자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어쩌면 우리 대에서 잊힐 수도 있는, 우리 바다가 간직한 옛 모습을 창경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