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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75. 나가 있는데 안 아프겠어요

남해안별신굿 2 거제죽림

  • 기사입력 2024.05.18 11:23
  • 기자명 현대해양 기자
물안개에 묻힌 굴양식장
물안개에 묻힌 굴양식장

[현대해양] 별신굿 이튿날 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새벽에 도착해야 산신제를 볼 수 있는데 굴 양식장에 드리워진 안개에 홀리고 말았다. 비록 상당에서 열린 일월맞이굿은 보지 못했지만 아쉽지 않았다. 죽림마을은 거제시 거제면 거제만 바닷가에 있다. 바다와 갯벌로 둘러싸여 있고, 대나무가 많아 ‘대숲개’라 불리기도 했다. 농사를 짓는 논과 밭보다 바다와 갯벌이 너른 어촌이다. 지금은 간척과 매립으로 주변에 논이 많지만, 과거에는 섬이나 다름없었다. 집집마다 굴 양식을 많이 했다. 지금은 작은 배로 그물이나 통발을 넣어 딱새비(갯가제)를 잡고, 갯벌에서 조개(바지락, 개조개, 맛조개)를 잡는다. 밭에서 시금치와 마늘 농사를 지어 팔기도 한다. 어촌 어디나 그렇듯 고령화가 낳은 풍경이다. 마을주민은 500여 명에 이르지만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42.5%에 이른다. 최근 어촌신활력증진 사업에 선정되어 새로운 계기를 맞고 있다.

일월맞이굿을 마친 서낭대가 삼현육각의 응원을 받으며 소나무 밑을 지나 선창으로 들어온다. 어제 당산제를 지냈던 곳이다. 삼현육각 소리가 고요한 아침을 흔들어 깨운다. 자정 무렵 지내는 산신제는 마을을 지켜주는 자연 신에게 예와 정성을 갖추어 마을 안녕을 기원한다. 외부인은 절대 참석할 수 없다. 마을 돌장승과 골목을 돌며 신들에게 별신굿을 알리는 골메기굿이다.

마을 곳곳을 돌면서 마을을 지키는 모든 신을 모시는 골메기굿
마을 곳곳을 돌면서 마을을 지키는 모든 신을 모시는 골메기굿

‘곤발네 할매’에게 인사를 드린다

죽림마을에는 아주 특별한 할매가 있다. ‘곤발네’라 불리는 할매는 바닷가 할미당에 모시고 있다. 어떤 사람은 벅수라고 하고, 어떤 이는 미륵불이라고도 한다.

옛날 큰 폭풍우 때 두 개의 미륵불이 떠내려오다 하나는 마을 앞 바다에 빠지고 하나는 뭍으로 올라왔다. 바다에 빠진 미륵불이 할배 미륵불이다. 이 미륵불은 바닷물이 빠질 때 1년에 한 차례 정도 볼 수 있다. 뭍으로 올라온 할매 미륵불은 오매불망 할배를 기다리고 있다. 바닷일을 하는 주민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 절을 하며 풍어와 안전을 기원했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마을에 120여 척의 배가 있었다. 첫 조업을 나갈 때면 배 안에서라도 곤발네 할매에게 인사를 드린다. 할매는 1885년 을유년 흉년 때 식량이 떨어져 아사자가 속출할 때, 직접 가꾼 수수와 조를 수확해 엿을 만들어 소문나지 않게 오줌통에 넣어 아이들만 먹도록 했다. 마을주민들은 섣달그믐과 정월 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한다. 별신굿을 할 때도 가장 먼저 할미당에 인사를 한다.

할미당 옆 바닷가는 조선조 수군 기지 어해정(禦海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병사들 식량과 병기를 운반하는 부두로 할배와 할매 벅수가 계선주와 수호신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할미당굿이 끝나면 수중묘, 선창, 기중기 등 해안을 따라 풍물을 치며 돌고 난 후 서낭대를 마을 앞 솟대 옆에 묶고 본격적인 별신굿이 이어진다.

우짜든지 큰 병치레 하지 마시고

할미당굿을 마치면 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제청에서 10개 굿이 이어진다. 옛날에는 3박 4일, 4박 5일 이어진 굿이지만 지금은 하루에 펼쳐진다. 마을주민들이 생업에 바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명맥이 끊어졌다가 이어진 것만 해도 다행이다. 본청에서 가장 먼저 하는 굿은 부정굿이다. 굿청을 정화하는 굿이다. 이어 날씨를 관장하는 가망굿, 재수와 풍요를 기원하는 제석굿, 어선과 집에 선왕을 모시는 선왕굿,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굿으로 이어진다.

남해안별신굿은 서해 마을굿이나 동해 별신굿에서 볼 수 없는 굿이 지동굿이다. 마을문서를 모시고 하는 굿이다. 마을 어른들이 좌정을 하고, 그 앞 탁자에 지동궤를 놓는다. 지동궤는 마을운영과 살림살이를 정리한 문서가 들어있는 나무상자를 말한다. 죽림마을 지동궤에는 250여 년 전부터 전해오는 마을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지동굿이 시작되면 앉아 있던 어르신들도 일어서서 예를 표한다.

과거부터 전해오는 정신적 지주인 마을문서와 현재까지 마을을 지켜온 마을어른을 모시고 하는 굿이다. 조상을 위무하고 지혜로운 어른을 존중하는 것이다. 모든 굿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마을주민이든 여행객이든 연구자든 무녀(지모)가 든 부채에 지전을 놓으면 무녀는 덕담으로 화답한다. 대부분 건강과 풍어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무녀들은 마을주민과 오랜 기간을 소통해 온 탓에 마을사는 물론 가족사를 잘 알고 있고, 알아야 한다.

“어찌 나가 있는데 안 아프겠어요, 우짜든지 큰 병치레하지 마시고 건강하이소”
“딱새우, 조개 많이 잡히고, 농사도 풍년들게 해주시고”
“우짜든지 자식들 건강하게 해주시고”

이어 큰손님 마마를 모시고 모든 병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해달라는 ‘손님풀이’, 조상님을 대접하는 ‘영호찬’, 지모가 산이(악사)에게 술을 한 잔씩 주며 덕담을 나누는 ‘대신풀이’, 장수나 장졸을 위무하는 ‘군웅굿’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도는 영혼이나 제청에 좌정하니 못한 잡신들에게 한판 먹이고 놀다가 좋을 곳으로 보내는 ‘시석(송신굿, 거리굿이라고도 함)’이 이어진다. 시석굿을 할 때는 물밥을 만들어 바다로 보내 잡귀, 잡신을 먹이고, 마을주민들과 지모와 악사 등이 어울려 한바탕 여흥이 이어진다.

액과 부정한 것을 배에 띄워 보내다

별신굿은 마을 축제의 성격을 띤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탈굿(탈놀음)과 띠뱃놀이다. 탈굿은 해학과 풍자를 담고 있으며, 띠뱃놀이는 묵은 액을 마을에서 내보내는 연행이다. 점심을 먹을 무렵부터 마을주민 몇 명이 제청 옆 바닷가에서 대나무와 새끼줄을 가져다 놓고 띠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띠뱃놀이는 남해안별신굿에서는 죽림마을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죽림에서는 띠배를 두 척을 만든다. 띠뱃놀이는 전적으로 선주들이 준비하며 띠배에 걸린 노잣돈도 무녀가 아니라 선주들이 챙긴다.

“조개도 한 가래”
“도다리도 한 가래”
“딱새도 한 가래”
“에헤야 가래야”

마을주민과 참가자들이 후렴을 따라 하며 띠배를 바닷가로 운반한다. 그리고 바다로 보낸다. 마을 모든 액과 부정한 것을 배에 싣고 보내며 즐기는 별신굿 마무리 행사다. 묵은 액을 배에 실어 멀리 보내는 굿이다. 물이 들었다가 나가는 시간에 맞춰 띠배를 보낸다. 마을에서 멀리 바다로 나갈 때 액을 내쳤다고 믿는다. 띠뱃놀이 장소는 수중묘가 있는 곳이다. 제청에서 수중묘까지 신대를 앞세우고 띠배가 나서며, 뒤를 악사들이 풍물을 치며 따른다. 여치 끝 수중묘까지 500여 미터를 이동한다. 수중묘는 자식이 귀한 집안이나 금실이 좋지 않은 사람이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자식을 얻고 금슬도 좋아진다.

남해안별신굿은 198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에서 전승 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경상남도 통영 죽도 사량도과 거제 죽림 수산 등 섬과 어촌마을에서 어민의 풍어와 안전, 마을의 안녕, 주민들 평안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을 제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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