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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다시16. 이은상의 『노산시조집』에 나타난 바다

  • 기사입력 2024.05.19 19:12
  • 기자명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 고신대 석좌교수
노산시조집  이은상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노산시조집 이은상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해양] 노산 이은상은 1932년에 그의 첫 시조집인 『노산시조집』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펴냈다. 이 시집에는 1924~1932년 사이에 창작한 작품으로 모두 112편 282수의 시조가 실렸다. 시집 구성은 8부로 나뉘었으며, 1부 <가는 곳마다>, 2부 <흐르는 봄빛>, 3부 <달 아래 서서>, 4부 <쓸쓸한 그날>, 5부 <꿈은 지나가고>, 6부 <송도노래>, 7부 <금강행>, 8부 <양장시조 시작편>로 편집되어 있다.

전체 시조의 반수 이상이 국내의 명승고적지를 찾아 느낀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 외의 작품들은 인생과 자연과 생활에 대한 감회를 노래하였고, 이 중에는 우리에게 가곡으로 잘 알려진 「성불사의 밤」, 「가고파」, 「봄처녀」 등도 이 시집에 실려 있다. 특히 마지막 8부에 실린 양장시조 시작편은 시조 형식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은상은 이 첫 시조집을 출간하면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변을 밝히고 있다.

내가 소학교를 마칠 때까지도 아버지께서는 홇이 나를 업으시고 황혼이면 뜰앞 나무 밑을 거니시었습니다. 그리고는 늘 고인의 시조를 읊으시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시조든지는 알 길 없으나 그 중에서 귀에 아직 들리는 것이 一曲 二曲 하시든 것이라 지금 생각하니 栗谷의 石潭九曲歌나 아니었든지. 내가 고시조 중에 이를 가장 애송함도 그 까닭입니다.

뒤에 듣자오매 자작도 하셨다건만 불초자- 뫼쇠 둔 것이 없음은 일생에 잊지 못할 恨事이어니와, 그 님이 가오신 지 어느덧 십 년. 그로 말미암아 내가 시조의 실로 들어선 것이 또한 십 년. 이제 한 적은 책자를 만들어 세상에 보내매 당신 생각이 다시금 간절합니다.

지나간 십 년 동안 내 떠러진 광주리에 모인 시조가 모두 740여 수. 어느 것인들 燒棄를 면할 자 되리오마는 부끄러운 그대로 5백쯤은 모아 보고도 싶은데 그나마 1권에 다 싣기 어려운 사정으로 이제 爲先 3백수쯤만 추렸거니와 요거로도 나딴은 여러 色趣의 것을 골고루 編次 하노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서러운 努力. 어느 노래가 내 마음을 따랐으리까. 너무나 큰 것은 마음이오 너무나 작은 것은 노래입니다.

소리는 귀에 들려 그만으로 사라지고 글자로 남긴대도 눈에 보여 그치나니 이런 노래로 어이 그 마음 表하리이까. 다만 마음의 한쪽 자취를 그리는체 하였을 뿐입니다.

나는 이제 생각하노니 우리 중에 정을 같이 하신 이 이 노래로 지팽이 삼아 그 마음의 세계를 밟으신다면 노래의 의의- 진실로 거기에 있고 또한 내게는 더 큰 영광이 없겠습니다.

이상의 성장과정과 영향을 통해 노산의 시조집이 세상에 출간되었는데, 이 시집에 노산은 바다를 노래한 「漁浦 달 밝은 밤에」와 「고향생각」을 발표했다. 이 중 「고향생각」은 가곡으로 불러진 시조이다. 두 시조를 통해 노산 이은상이 노래한 당시의 바다 이미지를 살펴본다.

「漁浦 달 밝은 밤에」는 시 제목 그대로 漁浦에서 달밤의 정취를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공간이 해변 모래사장에서 시작된다. 밀물이 몰려오자 시적 자아는 그곳에서 다시 풀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인기척에 놀라 반디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해변가 풀밭의 밤풍경이 한 장의 그림처럼 선연하다. 그리고는 白馬島로 향하는 조각배를 띄워 달밤의 바다를 노닐고 있다. 그 시간이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달밤의 밤배놀이에 흠뻑 취해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시적 자아의 자연에의 심취는 ‘어즐은 세상 일을 생각하며 무삼하리’라는 상태로 나아간다. 오직 밤고기 뛰는 소리에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에 도취된 시적 자아의 밤배놀이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강호시가와 거리가 멀지 않다. 시대상황이 조선시대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란 나라 잃은 시절의 아픔이 지식인들을 자연 속으로 내몬 결과일까.

 

「고향생각」은 홍난파가 곡을 붙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시조로 알려지기보다 가곡으로 널리 불러지는 노래이다. 이 작품은 어려운 상징이나 수사가 없이 간명하면서도 서술적인 시어들로 이루어져 있어 특별한 해석이 필요 없다. 문제는 이 시의 주제가 시 제목처럼 고향생각이란 점이다. 고향생각은 고향을 떠나서야 가능한 사유이다. 고향을 떠나 살면서 고향에 소식을 전하고자 갯가로 나갔지만 배는 이미 떠나버려 소식도 전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토로하고 있다. 소식도 제대로 전할 수 없는 상황이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할 수밖에 없다. 시인이 시의 마지막을 ‘때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로 끝맺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시인이 왜 이렇게 고향노래를 부르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역시 이도 앞선 시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란 시대적 상황이 만든 결과이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은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은상은 당시의 실향민이 되어 떠돌고 있던 자들의 보편적 정서를 이렇게 서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노산 이은상 시조 시인이 지닌 특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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