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⑫ 보세창고업자의 책임범위는 어디까지?
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⑫ 보세창고업자의 책임범위는 어디까지?
  •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승인 2024.03.18 2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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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1. 당사자

대법원 2023. 12. 14. 선고 2022다208649 판결
원고/피상고인 중소기업은행
피고/상고인 ㈜드올의 소송수계인 삼일냉장㈜: 승소


2. 사실관계

가. 원고는 2016. 3. 7. C회사와 일람불수입신용장 발행을 위한 여신거래약정과 외국환거래약정을 체결하고, C회사는 수입하는 물품과 관련 서류를 원고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하기로 약정하였다. 원고는 2017. 5. 16. C회사에게 취소불능화환신용장인 수입신용장을 개설해 주었고, C회사는 이를 이용하여 중국 수출회사로부터 이 사건 수산물(냉동 참조기 15,260카톤)을 수입하였다.

나. 중국 운송회사는 2017. 5. 19. 중국의 닝보항에서 이 사건 수산물을 선적하였고, 이 사건 수산물은 2017. 5. 24. 보세창고업자인 피고의 부산항 보세창고에 입고되었다. 피고는 이 사건 수산물이 위 보세창고에 입고될 무렵 중국 운송회사의 국내 운송취급인으로부터 선하증권 사본을 팩스로 송부 받았다. 피고는 2017. 5. 26. C회사의 요청을 받고 화물인도지시서 등을 수령하지 않은 채 C회사에게 이 사건 수산물을 반출하였다.

다. 원고는 2017. 7. 11. 중국 은행으로부터 선하증권을 취득하였고, 2017. 7. 24. 중국 은행에 수입신용장 대금 168,595,722원을 지급하였다.

라. 원고는 C회사와 그 사내이사 소외인이 이 사건 수산물에 대한 권리를 원고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고도 이를 무단으로 반출하는 불법행위(배임 또는 사기)를 저질렀고, 피고가 그 불법행위를 고의 또는 과실로 방조하였다는 취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3. 사건의 쟁점

보세창고업자인 피고가 화물 인도에 관하여 부담하는 주의의무를 선하증권을 취득하지 못한 신용장 개설은행인 원고에 대해서까지 부담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으며, 그 전제로서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기 위한 요건 및 판단 방법, 해상운송화물이 통관을 위하여 보세창고에 입고된 경우, 운송인과 보세창고업자 사이의 법률관계가 문제되었다.


4. 2심법원의 판단: 원고 승소

원고가 중국 은행으로부터 취득한 선하증권은 이 사건 수산물에 관한 선하증권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가 이를 취득함으로써 이 사건 수산물에 관한 양도담보권을 취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고는 C회사와 체결한 여신거래약정 및 외국환거래약정과 원고의 이 사건 수입신용장 개설, 이 사건 수입신용장에 기초한 이 사건 수산물의 수입에 따라 이 사건 수입신용장 대금을 지급할 경우 이 사건 수산물에 대한 적법한 권리자(양도담보권자)가 될 지위에 있었다.

피고는 선하증권의 발행인이나 그로부터 적법하게 권한을 부여받은 자로부터 발행된 화물인도지시서를 제출받을 주의의무를 부담함에도 이를 다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수산물을 반출하였다.

피고는 이 사건 수산물이 신용장 거래로 수입된 사실과 이 사건 수산물을 임의로 반출하면 이 사건 수입신용장 개설은행인 원고가 손해를 입게 된다는 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 피고가 이 사건 수산물을 C회사에 임의로 반출함으로써 원고는 중국 은행에 신용장 대금을 지급하고서도 이 사건 수산물에 대한 양도담보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손해를 입게 되었다.


5. 대법원의 판단: 파기환송, 피고 승소

해상운송화물이 통관을 위하여 보세창고에 입고된 경우에는 운송인과 보세창고업자 사이에 해상운송화물에 관하여 묵시적 임치계약이 성립하고, 보세창고업자는 운송인과의 임치계약에 따라 운송인 또는 그가 지정하는 자에게 화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 해상화물운송에 있어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은 선하증권의 소지인에게 화물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하므로, 운송인의 이행보조자인 보세창고업자도 해상운송의 정당한 수령인인 선하증권의 소지인에게 화물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한다. 나아가 보세창고업자는 화물 인도 과정에서 운송인이 발행한 화물인도지시서가 화물을 인도할 수 있는 근거서류로 적법하게 발행되었는지 등을 확인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

그러나, 보세창고업자가 화물 인도에 관하여 부담하는 주의의무는 선하증권 소지인의 권리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하고 손해를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뿐, 선하증권을 취득하지 못한 신용장 개설은행에 대해서까지 이러한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

원고는 이 사건 수산물이 반출될 당시 이 사건 수산물을 표창하는 선하증권을 취득하지 못하였고, C회사와의 약정에 따라 향후 양도담보권을 취득할 채권적 지위에 있었을 뿐이다. 피고는 중국 운송회사와 임치계약관계에 있으나, 원고와는 이 사건 수산물의 보관·인도에 관하여 계약관계에 있지 않다. 이러한 사정 아래에서 피고가 원고를 위하여 보호하거나 침해를 방지해야 할 법익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고가 원고의 권리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하고 손해를 방지할 주의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령 피고에게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입은 손해는 원고가 이 사건 수산물을 표창하는 선하증권을 취득하지 못하였음에도 중국 은행에 신용장 대금을 지급한 데 기인하는 것이므로 피고의 과실과 원고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6. 결론

과실책임의 원칙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함에 있어 상당인과관계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방조로 인한 불법행위의 경우, 상당인과관계의 인정 요건 및 판단 방법에 대하여 치밀하게 숙고하여 그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7. 7. 13. 선고 2005다21821 판결, 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5다234985 판결 등도 같은 취지로 판시하였다.

본 판결은 불법행위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인정 요건 및 판단 방법에 대한 이러한 법리와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화물인도지시서와는 구분되는 선하증권의 물권적 효력을 고려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한 합리적인 판결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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