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레저 바로알기 9.산업 성장의 골든타임
해양레저 바로알기 9.산업 성장의 골든타임
  • 김충환 경영학박사・경기도청 전문위원
  • 승인 2023.07.1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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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2023년 6월 일본 도요타의 ‘크라운(CROWN)’이 한국에 약 50년 만에 판매를 재개하였다. 일본 내수시장에서나 명맥을 이어오고 있고, 글로벌시장에서 부진한 모델인데도 국내 여러 매체와 유튜브 콘텐츠에서 자주 다뤄졌다. 물론 한국 도요타가 강한 마케팅을 했을 것이란 이유도 있지만 아마도 중장년 층에게 ‘도요타 크라운’이라는 브랜드가 주는 과거의 향수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일본산 제품을 줄여 부르는 일제(日濟, Made in Japan)는 품질과 디자인, 완성도 등 선망의 제품이었다. 소니(SONY), 샤프(Sharp), 내셔널(National), 아이와(AIWA) 같은 전자제품과 자동차는 물론 다양한 소비재 물건까지 일제를 선호하던 시절이었다.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 시대를 열었다는 소니의 워크맨(Walkman)은 대당 평균 가격이 2만 엔을 넘었음에도 전 세계에 약 3억 8,000만 대가 판매되었다.

이러한 강력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일본의 1983년 국가 GDP는 1조 2,000억 달러로 세계 2위가 되었으며, 1995년에는 5조 3,000억 달러로 1위인 미국 7조 6,000억 달러의 약 70%까지 따라잡아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1995년 일본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2,000 달러로 한국 1만 2,000 달러의 약 3.5배나 되었는데 이 시기 도요타 크라운은 잘사는 일본에서도 성공하는 사람들이 타는 상징적인 자동차였다. 당시 일본인 소득의 30% 수준밖에 안 됐던 한국 입장에서는 닿기 힘든 브랜드였는데, 2023년에 수입된 도요타 크라운은 현대자동차의 그렌저와 비슷한 가격대에서 한국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2022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2,000 달러로써 일본 3만 3,000 달러의 약 95%까지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일본, 대만의 1인당 GDP 추이 (단위: 달러) ※자료_IMF
한국, 일본, 대만의 1인당 GDP 추이 (단위: 달러) ※자료_IMF

일본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199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 당시 일본 기업들은 급격한 엔화 강세와 금리 인하, 부동산 활황 등으로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더 큰 이익이 발생하는데 굳이 힘들게 제품개발에 투자하고 수출하는 것이 우선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정작 제품개발이 중요한 시기를 놓친 결과 2000년대에 시작된 3차 산업혁명, IT 시대에서 일본 제품들은 혁신을 담지 못했다.

세계 최초 낸드 플래시 메모리 개발, 세계 최초 킬로바이트급 DRAM 생산 등 IT 시대의 핵심인 반도체는 일본이 1990년 초반까지 주도하던 기술이다. 당시 세계 반도체 매출 상위 10개 기업 중 6개가 일본 기업이었고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2년 일본 기업은 세계 15위에 하나뿐이며 점유율도 7%로 떨어졌다. 브라운관 TV의 대명사인 소니의 트리니트론을 앞세운 세계 TV 시장 1위도 일본이었으나 PDP, LCD, LED 등 평판 TV 시장으로의 변화를 놓쳐 현재 세계시장 1위는 2006년부터 17년째 삼성전자가 차지하고 있다. 휴대용 음악기기도 워크맨에서 mp3로, 휴대용 카메라도 콤팩트 카메라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변화하며 많은 아날로그 시대의 일본 기업들이 디지털 시대에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2023년 신동아 6월호에는 ‘일본은 어쩌다 반도체 추락 국가가 됐나’라는 글이 실렸다. 반도체가 기존 질서와 기득권에 머물다가 혁신하지 못했다는 분석과 함께 이대로라면 2030년쯤 일본 반도체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0%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일본의 반도체 패인으로 꼽은 점은 투자의 신속성과 결정의 과감성에서 한국에 밀렸다는 점이었다. 일본은 전문경영인이 투자하려 해도 오너나 주주가 브레이크를 걸어 제때 투자하지 못했기에 신중하긴 했지만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이나 대만은 절대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는 오만함이 더해져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었다.

 

산업 근대화를 넘어 정보화시대, 3차 산업혁명에 성공한 한국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 최빈국으로 전락한 데다가 국가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음에도 1960년대부터 수출 중심의 공업화 전략을 수립하고 1970년대 석유,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중화학공업의 발전을 거쳐 1980년대 가전, 전자산업의 성장이 2000년대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으로 이어지며 3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다.

5,000년 역사를 가졌음에도 세계에서 두각 받지 못한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나라가 탁월하고 적절한 결정과 추진력, 전 국민의 노력으로 5,000만 명 이상 인구를 가지고도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7번째가 국가가 되었다. 놀라운 점은 이 7개 국가 중 우리나라만이 제국주의 열강에도 들지 못했으며, 오히려 식민 지배를 받았던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2022년 세계은행(World Bank) 기준 한국의 국내 총생산(GDP)은 세계 10위이며 수출 규모는 세계 6위로서 경제력뿐만 아니라 K-Pop 등 문화적인 측면까지 더해지며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서 성장해 가고 있다.

2022 대륙별 세계 GDP
2022 대륙별 세계 GDP

하지만 2022년 대만에 1인당 국민소득을 역전당해

아시아의 4룡(한국, 싱가폴, 홍콩, 대만) 중 가장 뒤처진다고 여겨졌던 대만의 2022년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2,811달러로 우리나라 3만 2,237달러를 넘어섰다. 대만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3.2%씩 성장한 반면 한국은 2.6%에 그쳤기 때문이다. 대만의 제조업 부가가치는 10년간 29.1%에서 34.1%로 증가하였음에도 한국은 27.8%에서 25.6%로 오히려 줄었으며 그 기간 대만의 고정투자 증가율은 5.7%로 한국 2.8%의 두 배나 차지했다. 2022년 무역수지에서 478억 달러의 적자를 낸 한국과 달리 대만은 514억 달러의 흑자를 달성했다.

2022년 세계 수출, 수입시장 점유율 - 상위 10개국
2022년 세계 수출, 수입시장 점유율 - 상위 10개국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의 글로벌 점유율은 58%를 차지하며 시가총액은 2019년에 이미 삼성을 넘어섰다. 한국이 여러 규제와 문제로 주저하는 사이 대만은 ‘기술이 안보’를 외치며 공격적으로 인력을 양성하고 기업을 육성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매출 10억 달러를 넘은 반도체 대기업이 한국은 12곳인데 대만은 28곳으로 2배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5년간 대만 수출액은 연평균 9.1%씩 급증해 2.9%에 그친 한국을 빠르게 따라오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2028년엔 대만이 한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수퍼요트 제조사 호라이즌(Horizon)의 요트
아시아의 대표적인 수퍼요트 제조사 호라이즌(Horizon)의 요트

그뿐만 아니라 대만은 수퍼요트 제작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대표적인 수퍼요트 제조사 중 아시아 회사는 호라이즌(Horizon)과 오션 알렉산더(Ocean Alexander) 뿐이다. 이들 제조사를 중심으로 수퍼요트 제조 생태계가 카오슝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대만국제보트쇼(TIBS)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결정을 늦추고 정체된 사이 대만은 ‘더 분명한 선택과 집중’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산업구조를 갖춰가며 우리나라에 바짝 다가왔다.

 

임박해온 해양레저 기술의 근본적 변화

해양레저산업의 기술은 응용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자동차, 섬유, 조선, IT 등 관련성이 높은 대형 산업에서 만들어진 기술을 해양레저용으로 변환하고 적용하여 장비개발과 사용에 응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형 산업이 탄소배출, 친환경 기술 등으로 강하고도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2023년 세계해양협회(ICOMIA) 및 국제보트쇼 주최자연합(IFBSO) 연차총회에서 다룬 주요한 주제 중 하나도 탄소배출 절감에 대한 것이었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내연기관 개발 중단, 전기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자율주행, 증강현실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접목 등 이제는 그동안 해양레저산업에서 사용해왔던 기술들의 근본적인 변화가 임박해왔기 때문이다.

배워야 하는 선진 해양레저 국가의 기술

하이테크 시대라고는 하지만 해양레저산업의 기술은 보수적이고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면이 많다. 바다라는 위험하고도 변수가 많은 환경에서의 활동이므로 경험과 검증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러므로 해양레저 업계의 기술적 장벽은 여러 특허와 인증으로 높고도 단단하게 설정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하이테크 분야에서 다양한 기초 기술을 갖고 있지만 해양레저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경험이 부족하므로 관련 기업들의 시장진입에 여러 애로가 있었다. 아날로그 기반의 시대에서는 더욱이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에 기회조차 얻기 어려웠지만, 3차·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을 해양레저에 접목할 수 있는 이 시기에 우리가 진입할 기회가 왔다.

이미 유럽에서는 전기 배터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엔진, 포일형(foil) 선체 등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상용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장부품의 경우 이미 상용화가 꽤 이루어져서 내연기관의 연비개선, 제품수명 연장, 탄소배출 절감 등 단점을 보완한 혁신적인 장비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런 장비를 개발하려면 경험이 담긴 선진제품이 들어오고 경쟁을 통해 기술력과 제품 신뢰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국제선급연합회 (IACS: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lassification
국제선급연합회 (IACS: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lassification

글로벌 표준과 다른 국내 선박용 물건 및 기자재

미국과 유럽의 선박용 물건 및 기자재의 국제표준은 ISO, CE 등을 따르며 국제선급연합(IACS) 선박의 국제표준을 인정하고 미국의 ABS과 노르웨이 DNV, 이탈리아 RINA등 대표 선급의 국제표준을 인정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선급(KR)과 프랑스(BV)선급은 정부검사대행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다른 선급은 완전한 상호인증이 아닌 데다가 상선 대비 규모가 적은 레저용 선박이나 전기, 하이브리드 추진선 등 국제 선급 및 국제 인증 기자재는 국내 즉시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별도의 형식승인 및 예비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시간, 비용 등의 증가와 해외기업의 소극적 참여를 가져온다.

많은 해양레저 제조기업 대표들은 수출을 희망한다. 내수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활발한 제품개발과 활동을 하는 해양레저 기자재 업체는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이 다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인증제도가 국제 선급 형식승인 제품을 즉시 인정해주지 않다 보니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인증을 적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우리나라 인증제도에 따라 제품을 만들면 그대로 해외에도 수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개방은 당연한 명제,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는 전략적 방법

국내 기준을 따로 마련해야 국내 기업을 보호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국내 기업과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면 현상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수준의 기술과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개방하지 않고 변화에 주저해 현상 유지는커녕 밀려나 버린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10년 후, 20년 후 내가 지금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변화를 싫어했고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반도체도 기존 질서와 기득권에 머물다가 혁신하지 못했다.’ 1차, 2차 산업혁명을 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끝내고 제국주의 열강을 너머 세계 2위 경제대국까지 올라섰던 일본의 40년 경력 산업계 취재기자가 회고한 말들은 급변하는 환경변화 속에서 산업 성장의 골든타임을 놓친 댓가가 얼마나 큰지를 알려주는 경종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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