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사 과징금 이후… 해운업계 과제
해운사 과징금 이후… 해운업계 과제
  • 김엘진 기자
  • 승인 2022.02.0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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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해운법·공동행위 규정 마련해야

[현대해양]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해운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해운사 담합 의혹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건이다. 공정위는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한-동남아 노선에서 12개 국적선사, 11개 외국적선사가 총 120차례 운임담합을 했다며 23개 선사에 총 9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금액은 당초 심사보고서의 8,000억 원에 비해 크게 줄어든 규모지만 여전히 해운 업계는 공정위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해수부 역시 공정위의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수부의 의견이 상황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해운업계가 이제 스스로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17일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한국해기사협회 등 200명이 공정거래 위원회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였다.
지난해 11월 17일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한국해기사협회 등 200명이 공정거래 위원회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였다.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

공정위가 해운선사에 심사보고서를 보낸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선사들의 행위가 담합인지 공동행위인지에 대한 논란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지난달 18일 발표된 공정위의 ‘23개 국내·외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한-동남아 항로 해상운임 담합 제재’ 서류와 며칠 뒤 24일 알려진 해수부의 ‘정기 컨테이너선사 공동행위에 대한 설명자료’에 답이 있다. 양 기관에서 내놓은 두 문서는 이 사건을 보는 공정위와 해수부의 시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공정위는 “해운법 제29조는 일정한 절차상·내용상 요건 하에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23개 선사들의 운임 담합은 특히 해수부 장관에 대한 신고 및 화주단체와의 협의 요건을 흠결했다”고 말한다. 절차상 요건이란 해수부 장관에 대한 신고와 화주단체와의 협의다. 공정위는 선사들이 절차상 요건을 지키지 않았기에 이들의 행동을 ‘담합’이라 규정하고 공정거래법 제19조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해수부는 “국내외에서 전혀 문제가 없었던 공동행위에 대해 정부나 화주 단체의 요청이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신고했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며 비상식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동안 포괄적인 운임 공동행위 신고에 대해 문제 없이 승인했기 때문에 선사들이 적법행위로 인식했기에 이들의 행동을 ‘공동행위’라고 칭한다.

 

해운협회, 전원회의 결과 대응책 마련 나서

양 기관의 의견 차이만큼 업계나 전문가 반응도 갈렸다. 해운협회는 그간 공언한대로 행정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0일 해운협회는 정기총회를 열고, “해운공동행위에 공정거래법 적용 제외와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해운산업의 공동행위는 해운법에 따라 규율되도록 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해운협회는 2022년 예산 중 1억 원을 ‘해운 공동행위 관련 연구’ 명목으로 책정했으며, 제도 개선 연구 용역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해운협회는 해운산업과 공동행위의 당위성에 대해 언론, 전문가 칼럼, 관련 세미나 등을 통해 꾸준히 홍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해운협회의 ‘2021 사업보고서’를 통해 협회가 공동행위 관련 전문가의 의견과 성명서 발표에 힘써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업계와 전문가 의견에 대한 의구심도 존재했다. 구교훈 배화여대 교수는 “얼마 전 한 기자가 통합물류협회나 한국무역협회,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사들까지 해운의 편에 서고 일사분란하게 관계자들이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류협회나 무역협회 등 포워딩사는 선사로부터 운임을 잘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선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해수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해수부의 ‘정기 컨테이너선사 공동행위에 대한 설명자료’는 지난달 24일 이후 배포가 금지됐다. 해수부 관계자는 “그 자료 관련 우리와 공정위 사이가 안 좋다는 기사가 많이 나와서 부처 간의 관계를 신경써야 하는 시점이라는 대변인실의 방침에 따라 더 이상은 배포하지 않겠다”며, “해운협회에도 자료를 주지 못한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동남아 노선 과징금에 대한 해운협회의 소송 계획에 대해서 무죄를 주장하거나 과징금 금액을 줄이는 것은 선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공정위가 심사하고 있는 ‘한-중/한-일 노선 과징금 부과’ 대처 방안을 묻자, “사법 부분에 있어 우리는 직접 관여가 불가능하고, 지금까지처럼 참고인으로 소환될 경우 입장을 전달할 뿐”이라며, “(지금까지와) 같은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국회에 계류상태인 해운법 개정안의 통과를 위한 계획은 따로 없었다.

 

재발 방지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해운선사들은 해수부 소관법령인 ‘해운법’에 따라 해수부에서 허락한 방식으로 오랜 기간 ‘공동행위’를 했고,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맞았다. 해수부에서는 공정위에 유감을 표했을 뿐이다.

해수부 관계자를 포함한 업계 전문가들은 해운협회가 행정소송을 한다고 해도 공정위의 판결을 뒤엎고 무혐의 결론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해운법이 통과되지 않았고, 한-중, 한-일 노선에 대한 심사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선사들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 변호사는 과징금의 규모를 더 줄이는 일에 집중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징금 962억 원은 공정위 입장에서의 부과금이며, 지금까지의 판례로 보아 소송을 통해 과징금 규모를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한-일, 한-중 항로에 대한 심사도 (동남아 항로 심사와) 비슷하게 나올 것으로 보이기에 이번 소송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해운법 개정안 통과 이전에 문제가 된 부분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공동행위 절차 자체를 대폭 보강하는 듯 철저한 준비를 해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인현 고려대 해상법 전문 교수는 “일본의 경우 우리 해운법에 해당하는 해상운송법과 공정거래법의 적용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두 기관은 왜 이러한 기본적인 입법상 조치를 미리 취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발방지를 위해 해운법을 개정하고, 양 기관이 명확하게 법의 적용 범위를 정한 후 이를 선사들에게 고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위기를 해운업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구 교수는 “국내 해운업계는 다소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라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인맥, 선박금융, 정부지원 등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외부 전문가들을 과감히 영입하고 해운항만과 연계운송 터미널 관련 인프라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등 해운업의 미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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