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상생(相生)의 생존전략
한·미FTA 상생(相生)의 생존전략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11.11.3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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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신(神) 카이로스 이야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는 아주 특이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하늘의 지배자요 전지전능한 ‘제우스신’의 여러 아들 가운데 한 명으로 태어난 그는 뒷머리에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뒷대머리의 이상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태리 북부 토리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카이로스’의 조각상을 보노라면 호메로스가 기록한 그리스 신화에 담긴 수많은 영감(靈感)과 교훈을 터득하게 된다.

 ‘카이로스’의 앞모습은 단단한 근육질에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지만 뒷모습은 영 딴 판이다. 뒷대머리에 등은 굽고 자세마저 불안정하다. 손에는 칼과 저울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고 어깨에는 커다란 날개가, 그리고 발뒤꿈치에도 작은 날개가 달려 있다. 금방이라도 웅크린 자세에서 도약하면서 날아갈 모습이다.

 이 석상에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카이로스’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요,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치면 만시지탄(晩時之歎)만 남는 법이다. 인간만사가 다 그렇다. 기회란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에게만 포착된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기회가 왔을 때 ‘카이로스’의 저울처럼 신중하게 판단하고 손에 든 칼처럼 신속하게 결단하라는 암시가 ‘카이로스’의 석상에 그대로 묻어난다.

 4년 7개월 만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최루탄이 터지는 난장판 속에서 한·미FTA는 그렇게 눈물겹게 태어났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잉태된 한·미FTA 협정이 노무현 정권 실세들의 극렬한 반대 속에서 탄생하는 웃지못할 기현상이 벌어졌지만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무엇이 정의(正義)이며, 무엇이 불의(不義)인지를.

 한·미FTA가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賣國)이 될 지, 나라를 구하는 구국(救國)이 될 지 두고 볼 일이지만 막말과 극언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두고두고 역사의 심판대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부 의존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농수산업 성공의 길이 열린다

 지난 11월 22일 한·미FTA 비준안과 한·미FTA 관련 14개 부수 이행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에서는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세부적인 지침을 신속하게 마련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제2의 개화, 개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세계 최대의 경제권역인 미국과 유럽연합(EU), 그리고 아세안국가들과 동시에 자유무역협정을 해결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으며, 세계 경제규모의 61%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들과 관세없이 교역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문제다. FTA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전지전능한 도구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개방에는 필연적으로 경쟁이 수반된다. 그리고 경쟁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마련이다.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취약한 분야, 즉 농수축산업과 서비스산업에는 엄청난 격랑이 몰아닥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장옥 서강대교수는 한·미FTA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전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 미국의 제도를 어떻게 수용하느냐, 그리고 타(他)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의 노동생산성을 어떻게 따라가느냐 하는 실로 엄중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노동생산성을 100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5.6%에 불과하다. 같은 시간을 노동하고도 우리나라 근로자는 미국 근로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동생산성 문제는 미국의 근로제도와 미국 정부와 정치권의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정책결정 능력이 절대적인 뒷받침 되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제 우리도 글로벌스탠다드에 맞게 각종제도와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가 위에서 지적한 여러 가지 제도의 혁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미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산업분야, 특히 농·수산업에 대한 지속가능한 생존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과거 김영삼정부 시절부터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세계 자유무역협정(WTO)과 다자간(多者間) 자유무역협정(DDA)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200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농수산업은 경쟁력 면에서 예나 지금이나 별반 나아진게 없다는 비판적 분석들이 쏟아져 나온다.

 정부는 한·미FTA에 대비하여 22조 1000억 원의 예산을 농수산업 경쟁력 강화에 투입한다고 밝혔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과거 정부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러한 우려를 감안하여 이명박대통령은 농수산업의 피해를 보상한다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한·미FTA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수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적극 육성하겠다는 결의를 밝힌 셈이다.

 농수산부는 한·미FTA 발효시 연간 평균 8,445억 원, 앞으로 15년간 12조 6,675억 원의 누적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한 바 있다. 정부가 밝힌 대책 가운데 그동안 정부와 국회에서 합의한 피해보전 직불금 지급기준 문제나 밭농업직불제, 수산직불제, 농어업용 전기공급대상 확대. 면세유류 공급문제, 배합사료 등에 대한 부가세 영세율 적용기간 연장 등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는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정부의존적 보상심리에 젖어 있는 농어민들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개도해 나가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농수산업에도 시장경제논리와 경쟁의 원칙이 뿌리내리도록 해야만 자생(自生)의 길이 열린다.

 개방과 경쟁을 두려워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듯이 한·미 간에도 윈윈(win-win)하는 상생의 영역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상호의존적 생존전략이야말로 한·미 FTA의 본질이요, 핵심인 것이다.

 우리 앞에는 한·미FTA 보다 더 험난한 한·중, 한·일 FTA가 기다리고 있다. 시장개방과 수출 경쟁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다른 경쟁국보다 한발 앞서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와 번영이 찾아 올 것으로 확신한다. 경쟁을 해야 상생(相生)의 길이 열리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기회는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 갈구하고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앞머리는 단단한 동아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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