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도전자들
위대한 도전자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1.02.17 14: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죽음의 문턱 - 북태평양 꽁치어장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그들은 방금 일선에서 귀환한 위대한 전사(戰士)들이었다. 화약연기 자욱한 들판과 고지를 종횡으로 누비며 생사를 넘나드는 적과의 전투에서 끝내 승리를 쟁취한 위대한 용사(勇士)들이었다.

그들의 전쟁터는 차갑고 거친 북태평양 꽁치어장이었다. 방금 귀항한 선체는 마치 수년을 표류한 배처럼 빨갛게 녹이 슬어 있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덮쳐 씌우는 파도와 강풍에 끝없이 시달리고 부대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웃으며 닻을 내리고 있었지만,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결빙할 듯한 영하의 바다였을 텐데도 햇살이 얼씬거렸던지 피부는 까맣게 그을어 있었고, 다듬지 않은 난발봉두에 더부룩한 턱수염은 오히려 그들을 외경스러운 영웅으로 만들고 있었다. 곧 500톤급 북태평양 꽁치잡이 봉수망선(捧受網船) 제305창진 호의 이윤길(李允吉) 선장을 비롯한 그 소속원들이다.

그들을 위대한 전사로 숭앙하는 것은 한 마리의 고기라도 더 잡기 위해 다른 배들은 모두 철수한 빈 어장에서 혼자 저 망망하고 거친 북태평양을 지킨 강인한 도전정신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은 추가적으로 40여 톤의 고기를 더 잡았다. 성어기 때보다 살이 포동포동 더 오른 기름진 어획물이었고, 영양가도 풍부한 실로 연중 최고로 꼽히는 물고기였다. 그 40톤의 고기를 더 잡기 위해 305창진 호는 보름여나 더 황파(荒波) 속 북태평양에 잔류했다. 그리하여 모항인 감천항으로 돌아온 것은 출항한 지 꼭 7개월만인 지난해 12월 20일의 일이었다.

지난 해 북태평양으로 출어한 한국의 꽁치잡이 봉수망선은 모두 17척이었다. 한결같이 매년 5월이면 닻을 올렸고, 산란기인 8~9월을 거치며 한겨울이 목전에 당도한 11월말까지 폭풍우와 싸우며 꽁치를 잡았다. 그렇게 평균 6개월간 사투를 벌이다가 캘린더 마지막 페이지인 12월로 들어서면 서둘러 그물을 걷고 귀국 길에 오른다. 고기 떼가 없어서 아니라 그 계절이면 북태평양 전역이 황천(荒天)으로 뒤덮여 어군탐지나 집어 등의 통상적인 조업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창 성어기인 지난 6개월 동안 바다가 견딜만했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 동안에도 일본열도와 알래스카 양쪽으로부터 쉬지 않고 폭풍우가 내습하여 부득이 일본의 센다이 만(灣) 가까이로 피신하기를 몇 차례나 하였고, 그 와중에 한 발 늦은 두어 척 대만선이 침몰하는 사고도 있었다. 그런데도 12월로 접어들면 기상은 더욱 험악해져서 결단코 정상적인 조업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배들은 서둘러 그물을 개켜 넣고 처음 떠났던 모항으로 돌아와 내년 해빙기까지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게 북태평양 꽁치잡이배들의 연례적인 항해일지였는데, 이 선장의 305창진 호는 그 같은 통상적인 원칙을 깨트리고 보름이나 더 어장을 지키며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였던 것이다.

그들이 위대한 까닭

이윤길 선장이 한 달을 더 어장에 머물기로 한 것은 전년도에 비해 어획량이 현저히 미달한 때문이었다. 다른 배와 견주어 그렇게 뒤진 편도 아니었지만, 가령 2년 전인 2008년도에는 1,800톤을 잡았었고, 최악의 해라던 2009년에도 1,500톤을 잡은 데 비하면 지난해의 1,200톤은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불황은 비단 이 선장의 305창진 호에만 국한 된 게 아니었다. 조업선 17척 모두의 어획량이 지난해보다 2~300톤 미달한 게 그 증거였다. 이유는 너무도 명료했다. 만연한 자연재앙인 지구온난화가 그 주범이었는데, 그 결과 해수온도가 연년에 비해 2~3℃ 가량 높아진 탓에 어군의 회유 활동에 영향을 미치면서 어장판도가 확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이 선장의 305창진 호는 선령(船齡)이 30년이나 되는 노후한 선체였다. 조업선들은 어장을 선택함에 있어 어차피 타선의 움직임에 민감히 반응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배가 나은 어황을 보이면 곧장 그 쪽으로 접근하는 등의 침로변경이 그것인데 선체의 노후로 기동력이 뒤지다보니 그만 때를 놓치고 이삭줍기 식 조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부족함을 만회하기 위해 305창진 호의 이 선장은 한 달을 더 어장에 잔류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상이 모든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 6개월 동안의 정상어기 동안에도 거친 파도로 조업을 포기하기 일쑤였는데, 그러다가 심지어 뱃머리를 풍상 쪽으로 유지하기 위해 던져 넣은 팔뚝보다도 더 굵은 시앵커(Sea Anchor)의 연결 로프가 절단되는 최악의 사고까지도 당했는데, 12월 북태평양은 더욱 광란(狂亂)의 소용돌이로 돌변하여 한시도 선체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오죽하면 ‘북양(北洋)의 겨울바다를 항해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뱃사람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렇게 이를 악물고 보름여를 더 어장에 머물었으나 정작 조업을 강행한 날짜라야 겨우 사흘에 불과했다. 그 틈새에서 잡은 고기가 40여 톤이었다. 그 얼마나 값지고 고귀한 어획물인가.

305창진 호에는 선장을 포함한 핵심사관 7~8명을 제외한 일반선원은 모두 조선족을 비롯한 동남아 출신이다(총 승선인원 37명).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험난한 한국선 꽁치잡이배를 선택한 외국인 선원들이 고난의 사투 끝에 받아 쥐는 기껏 몇 백 달러의 월급이야말로 꿈의 결실이자 달콤한 열매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들은 모두 귀항 길에 올랐는데도 선장과 함께 보름이나 더 죽음의 바다에 머무는 데 동의했던 것이다.
꽁치는 산란기를 두세 달 지난 10월과 11월 치라야 영양가도 풍부하고 맛도 좋다.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 맛’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영양학적으로 풀이하면, 그 시기의 꽁치는 혈액 속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탁월한 EPA와 영아기 두뇌발달을 돕는다는 DHA 등 불포화지방산의 함량도 적지 않은 ‘등푸른 생선’의 대표어종이다. 그 고귀한 고기를 잡기 위해 꽁치잡이배들은 실로 목숨을 건 북태평양 거친 바다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305창진 호의 항해가 값진 것은 그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문턱도 마다 않고 북태평양 황파 속에서 외롭게 한 달을 더 사투한 그들이 위대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