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토분쟁
세계의 영토분쟁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0.10.1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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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일본의 영토야욕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최근 일본 정부는 연례보고서인 ‘2010년 판(版) 방위백서’를 발표하면서 서두에다 다음과 같은 주장을 담았다.

- 우리나라(일본) 고유 영토인 북방 4개 섬이나 다케시마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이 같은 내용은 2005년 이후 한 자도 바뀌지 않고 매년 되풀이 게재되고 있다.

독도는 현재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경찰이 주둔하면서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한데, 더 이상 무슨 대응이 필요할까. 따라서 매년 반복되는 일본의 다케시마 운운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그저 ‘이불 속 만세’로만 그치고 있다.

독도 말고도 일본은 현재 ‘댜오위다오(釣魚島)’와 쿠릴열도 4개 섬을 두고 중국과 러시아와도 영토분쟁을 여기하고 있다.

일본명 ‘센카쿠열도(尖閣列島)’인 댜오위다오는 다섯 개의 섬과 3개의 암초로 이루어진 무인도인데, 지난 달 7일 두 번째 큰 섬(0.91㎢)인 ‘구바섬(久場島)’ 인근에서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조업을 하던 중국 저인망선 한 척을 검거하면서 힘겨루기 양상이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국 어선은 오히려 순시선인 ‘요나쿠니’ 꽁무니를 뱃머리로 들이받은 다음 정선명령도 무시한 채 다음에는 현장에 도착한 다른 순시선 ‘마즈키’ 함 우현을 들이받았다. 그 사고로 요나쿠니 함 현측 난간이 크게 휘어졌고, 미즈키 함 우현은 책상 넓이만큼 움푹 패였다.

합세한 두 일본 순시선은 곧 중국선을 붙잡아 오키나와로 끌고 간 다음 선원 14명은 풀어준 다음 중국선 잔치슝 선장만 ‘어업볍’과 ‘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구속했다.

얼굴이 푸른색 수건으로 씌워진 선장의 압송 과정을 방송에서 본 중국인들은 다음날 곧 베이징 주재 일본대사관으로 몰려가 ‘일본은 당장 우리 영토인 댜오위다오에서 나가라!’는 플래카드를 펼치고 시위를 벌였다. 이에 일본 외무성도 주일 중국대사관에 ‘유감의 뜻’을 전달했고, 중국 외교부도 대변인을 통해 ‘일본 측에 엄중한 신청(항의)’을 하는 식으로 서로 맞섰다. 여기에 대만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양상은 복잡해졌다.

기록에 따르면 댜오위다오는 원래 1373년 중국 명나라 선원들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되어 있고, 청일전쟁이 한창이던 1895년 그 섬들이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음을 안 일본이 영토로 편입한 이래 2차 세계대전 동안 오키나와와 함께 미국의 관리 하에 있다가 1972년 일본에 돌려졌다는 게 일본 측 주장이다. 이처럼 댜오위다오에 대한 3국 주장은 섬 인근에 석유 등 해저자원의 부존이 확인되면서 더욱 첨예해졌다. 결국 일본은 중국의 전방위적 초강수로 구속기간을 연장한 어선 선장을 중도에서 빼내는 데 성공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으나 그 불씨는 두고두고 잠재해 있는 상황이다.

쿠릴 4개섬 놓고 러시아와도 각축

일본이 ‘북방영토(北方領土)’라 부르는 쿠릴열도 남쪽 4개 섬(아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역시 러시아와 분쟁상태에 있다. 그 섬은 태평양전쟁 종전 후 줄곧 러시아에 귀속되어 왔다.

일본의 주장에 대해 러시아는 이의 귀속이 연합국의 사전 승낙 하에 이루어졌으며, 종전 후 맺어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은 단 한 차례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 일본이 발간한 사전에서도 이투루프나 쿠나시르 등 두 섬을 ‘쿠릴열도 남부’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강하게 배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 상대적으로 작은 섬인 시코탄이나 하보마이 두 개는 홋카이도의 부속섬이라는 해석이 있으므로 돌려줄 수 있다고 한 발 물러섰으나 지금 와서는 모든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방침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의 하나가 2007년 당시 러시아 외교부장관이던 세르게이 라브로프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현장을 전격 방문한 사실이다. 이를 두고 각 언론은 북방 4개 섬에 대한 러시아 입장이 단호함을 나타낸 것이라 말했다.

방문 동안 라브로프 장관은 러브콜로 일본에 대해 4개 섬을 두 나라가 공동으로 개발하자고 제의하였으나, 일본은 응답하지 않았다. 만약 라브로프 장관의 제의에 흔쾌히 응했다가는 자칫 4개 섬이 러시아 영토임을 용인하는 결과에 이른다는 우려에서였다. 다음 해(2008년) 양국 정상은 쿠릴열도 4개 섬 문제 해결을 위해 상호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토협상은 조금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

세계적으로 야기된 영토분쟁은 한둘이 아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지역을 비롯, 러시아와 그루지아의 남(南) 오세티아 분쟁은 국제적인 중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으며, 멀리 남대서양의 포클랜드는 그 영유권을 두고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한 판 전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특히 아르헨티나 군사평의회 의장이자 대통령직무대행이던 레오폴드 갈티에리가 반군부 정서의 국민 마음을 돌리기 위해 영국 지배하에 있던 포클랜드에 무력침공을 감행하면서 촉발된 전쟁은 7백여 명의 아르헨티나군과 250여 명의 영국군이 전사하였고, 다수의 함정이 격침된 가운데 74일 만에 끝났지만, 패전을 당한 갈티에리는 실각한 반면 대처 영국수상은 ‘철의 여인’이라는 칭호까지 받으면서 대영제국의 영광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영토는 국가 존재의 가장 기초적 자산이다. 특히 200해리 경제수역 시대에서 새로운 해양질서가 확립되고 있는 현실에서 하나의 자그만 바위섬일지라도 그 상징성은 크다.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구호가 정겨운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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