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과 토고납신(吐故納新)
12월과 토고납신(吐故納新)
  • 조천복 소설가/한국해양문학협회 부회장
  • 승인 2016.12.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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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천복 소설가/한국해양문학협회 부회장
12월의 의미 - 대망의 달인가, 절망의 달인가

12월은 어떤 달인가?

프랑스의 소설가 기드 모파상은 그의 소설 여자의 일생에서 ‘12월은 음울한 달, 일 년이란 세월의 밑바닥에 뚫린 어두컴컴한 굴 같은 달이다’라고 했다.

이에 반해 아메리카 인디안들 중 체로키족은 ‘다른 세상의 달’, 퐁카족은 ‘무소유의 달’, 크리크족은 ‘침묵하는 달’이라고 하며 달에 숫자가 아닌 고유한 특징을 표시한 이름을 붙였다. 아마 그들은 12월을 침묵하며 마음을 비우고 다가올 다른 세상을 준비하는 달로 여겼던 것 같다.

기독교의 교회력에서는 12월의 4주간이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待臨節-Advent)이 되어 새해를 시작하는 달이 되므로 올해는 11월 27일(일)부터 2017년이 되는 것이리라.

이제 12월, 북반구의 겨울에 들어섰는지 벌써부터 북서 계절풍에 실린 미세먼지가 스며들더니 어느새 요상한 계룡산 산곡풍이 온 나라를 휘젓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날씨조차 냉·온탕을 반복하는데다 덩달아 온갖 소문이 피어올라 욕탕에 낀 수증기처럼 자욱하지만 우리는 절벽이 어딘지 모르고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항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육지의 안개다. 자욱한 해무(海霧)는 레이더가 있어 언제나 조심하면 되는 것이지만 육지의 안개는 어떤 레이더나 내비게이션도 통하지 않는 절벽 같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일부터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가 된 후 발생한 대규모 인공지진의 후유증으로 거대한 해일이 덮치고 있다. 가장 먼저 그 폭류를 뒤집어쓰는 사람이 바로 그 바다에 있던 1,400여 명의 선원들이고 다음은 1,000여 명의 관련 산업 종사자들로, 가족까지 합치면 1만여명이다. 그들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12월의 대림절이 참으로 음울한 달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지진을 기획한, 금융기법만을 주장하며 선무당 행사로 많은 종사자들을 절벽으로 내몬,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그런 잘난 사람들은 육지의 한 복판에서 ‘에헴! 톨톨’ 하고 있으니… 누구 탓인가, 아니 누구를 탓하랴.

해양수산업에 대한 국민적 각성이 필요한 때

유대인 강제수용소였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 들어서면 ‘과거를 잊은 자는 과거를 반복할 운명에 놓여있다’라는 죠지 산타야의 경구를 제일 먼저 만난다고 한다. 그 말처럼 우리 해양수산계와 정부의 최초 큰 알력은 1998년 11월 28일에 체결되고 1999년 1월 22일에 발효된 신한일어업협정의 후유증이었다.

그 협정에는 경제성이 가장 큰 제주도와 일본 사이의 경계선 조업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책정되었고 또한 조업 쿼터에서조차 쌍끌이 어업을 망각했던 것이다. 당시 수산경제연구원의 통계에서도 약 5,000억원의 어민손실이 계량되었고 전국어민총연합회에서는 어민의 직·간접피해액은 무려 1조 3,700억원이라고 주장하며 궐기했고 심지어 국회에서 까지 장시일 농성 했었다.

그 결과 정부로부터 응분의 사과와 반대급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필자가 노총(勞總) 재직 시절 국가예산자문위원을 하며 느꼈던 심정은 해운·수산산업에 대한 타 부처의 인식은 참으로 무지했었다는 점이다. 아마 그게 평소 도시사람들이 갯가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무관치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해양수산부에 대한 타 부처 공직자들의 태도 역시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번 한진해운 사태를 보면서 가장 이 후유증을 걱정하고 염려했을 곳이 해양수산부와 선주협회였을 것이다. 그들은 백방으로 최선을 다했겠지만 아마 중과부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세계 3위인 CMA-CGA의 유동성 위기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1970년 파산 직전이었던 두 개의 회사를 병합하여 합팍 로이드(Hapag Lloyd)사를 탄생시키며 거액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독일의 사례는 차치하고라도, 이웃 중국 정부가 수십억 달러를 코스코(COSCO)에 지원해 해운업을 살린 사례를 들어, 설사 어떤 괘씸한 원인이 있었다 해도 우선 응급처치로 해운 산업만은 제대로 살려놓고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당사자들의 주장은 계룡산의 산곡풍과 합세한 다른 이종산업의 거대한 역풍에 밀려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선주협회, 사실 동종 산업계에서는 대단한 이익단체지만 타 산업이나 정치계에서는 참으로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바로 해양문화가 없어 천박하게 보이는 해양수산계의 오늘이니 어쩌랴, 뿌린 대로 거두는 세상인데도 그 잘난 국회의원 중에 해양수산 출신이 없으니 누가 그 절박한 현실을 호소할 수 있었겠는가?

세계적 정신의학자인 프랑수아 롤로르(Francois Lelov)는 ‘타당한 원인으로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건강하고 정당하며, 또한 그 분노는 타인에게 경각심을 주어 우리자신을 지키는 보호수단이 된다’라고 설파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때 반드시 격렬한 분노를 표출해야만 했었다. 한진해운사의 가족, 노조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등 관련 산업의 모든 노사단체가 합세해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한 때의 반짝 궐기가 아닌, 그야말로 장기간 부산이 아닌 서울의 관가에서 촛불시위와 같은 농성을 했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그럼 선무당이 사람 잡듯 ‘해운산업을 괴멸시키는’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가와서는 기어코 또 가버릴 12월, 우리는 묵은 숨을 토해내고는 새로운 숨을 들이마시며 자세를 바로잡는 토고납신을 반드시 해야 할 터인데도 당신들은 아직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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