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의 리더쉽
처칠의 리더쉽
  • 이준후/시인, 산업은행 제주지점장
  • 승인 2010.06.0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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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는 아주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재작년의 글로벌 경제위기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의 금융위기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번지고 있다. 회복기미를 보이던 우리 경제도 다시 충격을 받기 시작하던 차에 아뿔싸, 천안암 사태가 터졌다. 경제위기에 안보위기까지 겹치게 되니 어려움이 倍增될 수밖에.

 어려운 시기일수록 이를 극복하고 돌파한 리더쉽은 빛나기 마련, 이러한 리더쉽을 최고로 발휘한 사람중 첫번째는 처칠이 아닐까 한다. 처칠은 당대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구한 세계 최고의 정치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사후에 인정을 받는 여러 위인들과는 달리 처칠은 생전에 최고의 영예와 존경을 받았다. 무엇보다 처칠은 정직과 원칙의 정치인이었다.

 처칠은 위기의 상황에서 항상 정직하게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해 주었다. 그는 수상이 되자마다 “내가 여러분에게 줄 것이라고는 피와 땀과 눈물과 노고뿐”이라고 말해서 당시의 상황이 최악임을 알렸고 “지금 영국과 다른 나라들은 어두운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고 밝혀 영국 국민들에게 앞으로는 더 큰 희생과 고통이 찾아오리란 사실을 정직하게 일깨워 주었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했을 때에도, 싱가포르가 함락되었을 때도 그 어두운 패배의 소식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나 위기의 시간에도 변함없이 당당한 자세와 강인한 의지를 보여 줌으로써 항상 주위사람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그는 아무리 나쁜 소식이 있어도 결코 동요하거나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늘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런 긍정적인 힘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주변에 퍼지는 것이다. 처칠에게는 바로 그런 강력한 힘이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공경에 처한 영국에게 나치는 끊임없이 평화협상을 제의했다. 국내에서도 나치와의 협상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고, 심지어 처칠 내각에서 외교부 장관을 맡은 핼리팩스 경까지도 그런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처칠은 그 모든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오직 ‘무조건 항복’만을 강경하게 요구했다. 처칠에게 나치는 도저히 남겨놓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범죄 집단이었기 때문에 존속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히틀러에게 양보를 거듭한 前任 체임벌린 수상은 평화애호가 이자 유능한 협상가로 칭송을 받았다. 반면에 융통성 없이 원칙을 고집하는 처칠에게는 ‘전쟁미치광이’ 혹은 ‘파시스트’라는 비난이 퍼부어 졌다. 그러나 역사는 고집쟁이 처칠이 옳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처칠 리더쉽의 또 다른 덕목은 현장주의에 있다. 처칠은 아프리카나 유럽 전장에 불쑥 나타나 전황을 살피곤 했다. 수상이 전장에 나타나면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이는 효과도 있었지만, 현지사정을 파악해야 런던에서 적절한 작전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처칠은 전투가 치열한 최전방에서 요란한 총소리를 들으며 막사 식당에서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현대 경영학에서도 CEO가 가급적 업무현장을 자주 돌아다니는 것이 회사의 능률도 높이고 사원의 사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 ‘현장위주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자가 귀한 때였으므로 정부가 전선에 잇는 전체 병참을 개선하기는 어려웠지만 병사들은 세심한 수상의 배려에 감사하고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병사들과 대화하는 것은 처칠이 택한 자기희생의 방식이었다. 병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주 최전선에 나타난 노년의 수상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꼈다.

 처칠의 최대 장점은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반대당이 반대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만약 찬성만 한다면 반대당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그가 항상 미래를 바라보고 살면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강한 자의식에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모욕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가 증오감이나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언젠가는 상대방도 자신의 진심을 알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설령 지금 당장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뒤를 보고 걷는 자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우리의 두 눈이 얼굴에 있는 이유에는 뒤가 아니라 앞을 보라는 뜻이 숨어 있음을 새겨야 할 것이다. ‘오직 앞만 보고 산다.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것이 처칠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이다.

 이 어려운 시기, 이보다 더 어려운 시기를 돌파하였던 처칠의 리더쉽, 정직과 원칙 그리고 현장주의와 미래에 대한 확신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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