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생선 고등어
국민생선 고등어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5.03.31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밥도둑 누명이 더 나았던 국민생선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밥도둑’ 누명을 썼을 만큼 우리 밥상 한가운데를 차지해온 국민생선 고등어가 그 자리를 갈치에게 내주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바다의 보리’라 불리며 값도 싼데다 영양분도 많아 최고의 건강식품 중 하나로 꼽히면서 국민적 사랑을 받아왔다. 고단백 식품에다 지방·칼슘·인·나트륨·칼륨 등 없는 게 없고, 고도 불포화지방산인 DHA 성분은 두뇌발달과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EPA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키면서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동맥경화·심근경색·뇌졸중·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것으로 정평 나 있다.

특히 체내 산화환원을 촉진시키는 니코틴산은 숙취해소에도 특효로 알려져 애주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왔다. 또 산란을 앞둔 가을철부터는 지방분이 더욱 많아져 고소하면서도 뛰어난 저작감(詛嚼感)을 선사하고 있어 국민생선으로 조금치의 손색도 없다.

세계 어장을 통틀어 유독 한반도 주변에 다량 회유하면서 상대적으로 값도 싸 주부들의 손을 많이 타온 고등어가 밀려난 것은 우선 씨알이 예전 같지 않아서다. 성체 한 마리 무게는 평균 500g을 웃도는데, 최근 위판장으로 들어오는 거개가 200g 미만인 갈고등어여서 먹을 게 거의 없다보니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자갈치아지매들은 무게에 따라 ‘상급(400〜500g)’ ‘중급(300〜400g)’ ‘하급(200〜300g)’으로 나누는데, 그에 못 미치는 갈고등어는 통조림 재료나 가축사료 용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등급에도 들지 못한 잔챙이마저 천정부지로 값이 뛰다 보니 그만 챔피언 자리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고 만 것이다.

부산공동어시장 집계를 보면, 지난해 상급품 위판량은 겨우 1천여 톤으로 4년 전인 2011년에 비해 4분의 1수준으로 감소한 반면, 갈고등어는 7만5,000여 톤으로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어시장에서 상급 대우를 받으며 팔리고 있는 호랑이무늬의 고등어는 멀리 지구 반대편인 북해의 노르웨이 어부들이 잡은 것으로, 국내 유통물량의 10% 가까이 되고 있다. 지난해 수입량도 20,000톤으로 5년 전보다 두 배 반이나 늘었는데, 그 같은 증가세는 국내 생산량 감소와 남획으로 인한 잔챙이 씨알이 부채질 했다.

그 계제에 노르웨이 수산청 관계자까지 내한하여 자국 고등어를 실컷 자랑했다. ‘우리 고등어는 차가운 북해에서 잡은 거라 지방분이 더 많아 맛이 최곱니다’라고. 그리하여 이제는 ‘택배 주문도 받는다’는 케이블TV 홈쇼핑방송까지 나오는 판이다.

지난 1월말(22〜23일) 부산공동어시장에는 모처럼 400톤가량의 ‘등급어(等級魚)’가 쏟아져 들어와 활기를 띠었으나 그것도 잠시, 불과 1주일 후에는 겨우 20kg 들이 300여 상자를 끝으로 위판장은 텅 비어버렸다.

반짝 활기는 최근 타결된 한일어업협정 덕분에 한국어선들이 일본의 EEZ(배타적 경제수역)까지 들어간 덕분이라지만, 곧 일본 어민들의 반발도 나왔다. 한국선을 가리켜 중국 뺨치는 싹쓸이꾼이라고 혀를 차는 상황이 되고 만 게 그것.

신임 수협회장에 거는 기대

고등어 씨알이 전갱이만큼 왜소해진 건 그간 행해진 무분별한 남획도 문제였지만, 수백 척 중국선들의 무차별적인 싹쓸이 조업의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특히 중국어민들에게 어자원의 합리적 관리와 보호는 달나라 이야기여서, 방금 알에서 깨어난 치어까지 마구잡이로 훑어내고 있으니 도대체 클 새가 있겠느냐는 게 그 진단인 것이다.

날로 우심해지는 중국선들의 불법조업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해 필자는 이 페이지를 통해(2014년 11월호 참조) 세월호 참사를 보고 격노한 박 대통령이 60년 역사의 해양경찰을 해체하겠다고 했을 때, 3면 바다인 한반도 특성상 그 파수꾼인 코스트가드(Coast-Guard)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후유증 가운데 하나로 중국선들의 극성을 꼽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해양경찰의 공중분해는 중국선 단속포기말고도 ‘해양치안(海洋治安)의 공백’으로까지 확대됐다. 남해안 일대의 황폐화와 어민들의 해양인식 실종이 그걸 뒷받침한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낙동강 어귀인 부산 강서구와 다대포 인근 해안의 경우, 현재 수척의 폐어선(廢漁船)들이 가라앉은 채 물결에 희롱당하고 있고, 주위로 폐그물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음을 본다. 예전 같았다면 법규에 따라 처리되었을 폐선을 몰래 가라앉힌 결과다.

해양경찰이 해체되고 불과 서너 달 사이에 일어난 일로(11월 19일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흡수됨), 이를 ‘공유수면관리법’ 등으로 단속하여야 할 일손 부족에다 어민들의 법 준수의식 해이와 도덕적 와해가 중첩된 결과인 것이다.

해경해체가 야기한 법질서의식의 실종은 남해지방해양경비안전본부(구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의 ‘2014년도 사건처리 현황 보고서’가 잘 보여준다.

가령 2013년도 쓰레기 무단투기 등 해양환경관리법 위반 단속 실적은 1,200여 건에 달하였는데 작년에는 12건으로 급감했고, 무허가조업과 관련한 수산 관련법 단속 역시 1,100여 건에서 408건으로, 그리고 어민과 선원을 상대로 한 각종 사기사건마저 612건에서 79건으로 급감한 것 등이 그 증거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이를 단속하여야 할 정예인력이 해경해체와 함께 타 부서로 배속된 것과 요원이 대폭 줄어든 결과이며, 또 단속에 나서더라도 오히려 어민들이 ‘없어진 해경이 왜 야단이냐?’는 식으로 삿대질을 하기 예사여서다.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으로 한반도 주변 해역은 아예 황폐화되고 말았다. 남해지방본부에 따르면 수백 척에 불과하던 중국어선이 요 몇 달 사이에 배도 더 늘어나 현재 2,000여 척에 이른다는 추계는 실로 간담을 서늘케 한다. 서부의 무법자 같은 그 ‘인해선단(人海船團)’을 제어할 방도는 도대체 없는 것일까.

마침 고등어를 국민생선으로 등극시킨 대형선망 김임권(金任權)조합장이 24대 수협중앙회장으로 취임했다. 차제에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을 원천 차단할 특단의 대책마련과 함께 철저한 어자원 관리로 ‘우리 식탁에는 우리 어부가 잡은 생선을 올리자’는 그의 호소가 실현되기를 소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