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CPTPP 수산 피해액
알려지지 않은 CPTPP 수산 피해액
  • 박종면·전미영 기자
  • 승인 2022.11.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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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변단체 연구는 CPTPP 타결용 전시 자료”
농어민들의 CPTPP 공청회 반대투쟁
농어민들의 산업부 주최 CPTPP 공청회 반대투쟁 장면

[현대해양]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이 국내 수산업에 끼칠 피해액이 기존에 알려진 연 69억~724억 원이 아니라 3,000억 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 CPTPP 가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소수 여론은 다변화하는 산업 시장에서 디지털 콘텐츠와 제조에 강한 한국이 더 넓은 수출시장으로 진출할 기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CPTPP는 전례 없이 광범위한 분야의 제품에 대한 역내 관세를 전면 폐지할 뿐 아니라, 디지털 무역, 전자상거래, 지적재산권, 국영기업 등의 핵심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규정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수산업은 희생양

그러나 CPTPP가 가져올 국익을 기대하는 전문가들도 국내 농수산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5월 법무부에서 발행한 ‘통상법률’지에 게재된 김호철 산업통상자원부 부이사관의 기고에 따르면 기존 CPTPP 체결국의 경우 농축산물은 평균 96.4%, 수산물은 평균 100%의 수입 가능한(양허가) 품목에 대한 관세를 철폐했다. 현재 우리나라와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된 국가들로부터 수입하는 양허가 수산물 품목의 경우 뉴질랜드, 캐나다, 칠레, 페루와는 99~100% 수준으로 제한하지 않고 있으나,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일본에 대해서는 각각 91.3%, 87%, 47.9%의 양허율에 머물고 있어 CPTPP 체결 시 이들 국가와의 추가적인 시장 개방의 폭이 주요 논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에서 수입하는 국내 수산업 부문의 낮은 양허율(47.9%)은 후쿠시마산 수산물 등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식품에 대한 규제 적용의 결과다. 대만의 경우 CPTPP 가입 후 10여 년 만에 원전 오염 가능성이 높은 후쿠시마산 농식품 수입을 허용한 사례가 있는 만큼, 이번 CPTPP 체결 과정에서 새로운 가입국에 대한 가입비용이 어떻게 청구될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김봉태 교수, “수산 피해액 연 69억~724억 원”

FTA(자유무역협정)와 RCEP를 거쳐 자유무역의 세계적 흐름이 거세지며, 양자 간 협정이 이뤄지는 각각의 과정에서 자유무역의 형태와 정도에 따른 국익과 사회경제적 영향들이 예측 및 실현됐다. CPTPP 체결 진행 소식 이후 국내의 산업계는 그에 대한 영향을 예측하기 위한 조사와 연구에 착수했다. 일례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2018년 발간물 ‘CPTPP 발효와 농업통상 분야 시사점’ 기고에서 “한국과 유사한 농업 생산구조를 지닌 일본의 CPTPP 농식품 관세철폐율이 76.2%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80%를 초과하는 것은 수용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가입비용으로 판단된다”는 연구자의 견해를 밝혔다.

이에 반해 CPTPP가 수산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자료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3월 25일 김봉태 부경대 교수(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원)는 산업통상자원부 주최 CPTPP 공청회에서 부분균형분석(균형대체모형)을 적용해 분석한 ‘개별 수산물의 수입시장과 국내 시장의 균형변화’를 발표했다. 그런데 부분균형분석은 특정한 시장만을 분리해 분석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분석 결과를 도출하는 데에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현실경제와는 차이가 있는 분석방법이라고 지적된다. 김봉태 교수는 이날 CPTPP 공청회에서 수산업계의 양허율을 최소 96%(일부 품목 민감성 반영), 최대 100%(한-미 FTA 수준 개방)를 기준으로 각각 연평균 69억~724억 원의 피해 규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는 정부가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CPTPP로 인한 국내 수산업계의 피해액이 됐다. 별다른 조사와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6일 국회에서 윤재갑 의원실 주최로 열린 CPTPP 토론회. 이날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CPTPP 가입으로 인한 수산 피해액은 1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4월 26일 국회에서 윤재갑 의원실 주최로 열린 CPTPP 토론회. 이날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CPTPP 가입으로 인한 수산 피해액은 1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백일 교수, “우리 수산 피해액 3,000억 원”

이에 대해 최근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는 “발표 자료에 분석을 시도한 원천 데이터와 함숫값에 대한 첨부가 없어, 객관적 자료로 인정하기 더욱 어렵다”며 “CPTPP 양허율 완화에 따라 변화할 총수산물 수입증대물량을 예측했을 때 증대율 63%를 기준으로 3,000억 원의 규모까지 추정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토론하고 싶다”며 비판했다.

백일 교수는 “친환경과 수산식품의 거점이며 동시에 배타적 경제수역(EEZ) 같은 세계적 해양경계 경쟁 및 영토의 최후 보루라는 국가 존망이 걸린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수산업은 희생업종으로 치부돼 왔다”며 수산업이 희생양임을 강조했다. 특히 백 교수는 “연 67억~724억 원으로 추산되는 예상 피해규모 역시 관변 기관들의 현저한 과소평가임은 물론 수산업의 가치를 무시하는 매우 잘못된 경향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백 교수는 지난 9월 5일 국회에서 열린 ‘CPTPP 가입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전문가 발표회에서 연평균 69억~724억 원 피해 규모를 산정한 연구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관변단체 연구의 수산업 최대 피해 추정은 CPTPP 타결용 전시 자료로 과소추정일 가능성이 높다”며 “수입수산물은 양식 및 어업해산물 등 생산방법과 산생물 냉장 냉동 등 유통형식을 막론하며 품목 또한 한국 측 주생산물인 넙치, 장어 등의 거의 전 수산물로 확대될 것이며, 이에 비례한 피해 증가는 당연히 따라오는 부수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백 교수가 주장하는 CPTPP 가입시 수산 피해액은 3,000억 원이다. 그가 주장하는 피해액 근거는 평균 양허율이 RCEP보다 5% 높은 96%이기 때문에 환태평양 국가들로 주로 구성된 CPTPP에서는 적어도 5%의 수산물 총수입 증가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금액상으로 약 3,000억 원에 이르는 규모다.

 

윤재갑 의원, “피해액 1조 원 넘어”

피해액 축소 추산에 대한 비판은 또 있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윤재갑 의원(더불어민주당 해남·완도·진도) 의원은 “정부는 CPTPP 가입 시 수산업 분야 피해액을 매년 최대 724억 원으로 추산했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간접피해와 수산보조금 금지, 중국의 가입변수를 고려해 의원실에서 피해 금액을 추산한 결과 피해액은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확인됐다”며 “CPTPP 가입은 관세 철폐와 시장개방으로 우리 수산업 생산기반 자체를 붕괴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럼 연 67억~724억 원으로 추산된다는 피해규모는 어떻게 나왔을까? 해수부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대응 수산보조금 개편방안 연구(2016년 9월) △메가 FTA 대비 수산분야 경쟁력 강화 방안 연구(2021년 7월) △메가 FTA 대응을 위한 수산후계인력 육성 방안연구(2022년 9월) 용역을 발주했는데, 세 입찰 건 모두 단독입찰로 유찰된 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서 맡아 진행했다. 당시 KMI에는 김봉태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었고, 김 연구원이 부경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CPTPP 수산 피해 연구를 부경대에서 진행했다.

 

과소평가된 피해 추산

그러나 세 연구 결과물에 대한 이해 관계자들의 정보 접근은 어렵다. 이미 완료된 두 연구용역의 요약보고서를 포함한 보고자료 전문이 대외비로 처리됐으며, 2023년 상반기 사업 종료 예정인 수산 후계인력 육성방안 연구도 공개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농림축산식품부가 2019년 메가 FTA 추진 대응전략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그 결과물로 2021년 8월 ‘메가 FTA 대응 및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농업정책 방향(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발간, 공개한 상황과 대비된다. 다양한 관점과 연구 방법론과 전공 기반을 바탕으로 수산업을 연구하고 지원할 기반이 부족한 실정이다.

해양수산부가 운영하는 수산물수출정보포털에서는 수산업과 관련된 기초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으나 국책연구기관 외 수산업계 세부 이슈에 대해 이를 활용하고 분석하는 전문 연구진은 찾아보기 어렵다. 박명섭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수산업계에서 산업 영향 및 심화 연구를 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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