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해기사’ 처우 개선 어떻게 해야 하나
‘위기의 해기사’ 처우 개선 어떻게 해야 하나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2.09.07 11: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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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승선기피 두드러져

[현대해양] ‘MZ세대’라 불리는 젊은 해기사(海技士)들의 승선기피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 치닫고 있어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시피크(Seapeak) 해운을 비롯한 영국 등의 외국적 선사 근무 해기사들의 근무조건이 알려지면서 국내 원양상선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시피크 해운에 근무하는 제1항해사 김태원 씨는 지난달 20일 진행된 ‘바다 저자와의 대화’ 발표에서 이 선사는 LNG선과 LPG선 전문 선사로 3개월 승선 후 3개월 유료 휴가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근무 조건 또한 국적 선사의 그것과 월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나아가 4개월 승선 근무시 승선한 만큼 휴가를 준다는 것. 따라서, 원화로 제1항해사 연봉이 1억 원이라면 1년 중 6개월만 일하면 이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급휴가의 경우 외항상선은 1개월에 6일, 내항상선은 1개월에 5일이 주어진다. 1년 승선 시 외항상선의 경우 최대 72일, 내항상선의 경우에는 최대 60일 유급휴가에 그친다.

승선 실습을 떠나는 예비 해기사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계없음)
승선 실습을 떠나는 예비 해기사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계없음)

유급휴가 등에서 선진국과 큰 차이 드러나

상황이 이렇다 보내 국적선사의 근무 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보일 뿐만 아니라 국제 경쟁력 또한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유럽선사의 경우 24시간 인터넷이 가능해 가족, 친지, 지인들과 항상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하는 일은 우리 선사와 유사하지만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고 식사의 질도 차이가 꽤 많다는 것. 요일별 메뉴가 달라지고 종교에 따라 특정 음식을 기피하는 경우 맞춤형으로 식사가 준비된다는 것. 즉 힌두교, 무슬림, 기독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 심지어 희귀 종교인까지도 맞춤형 식사가 가능할 정도도 승선 해기사들에 대한 대우가 국적 선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 선사에 취업한 김 1항사는 인터넷에서 구직공고를 접하고 지원해 채용이 됐다. 이에 대해 SK해운 1항사 출신 이재혁 씨는 “우리는 30년 전에 초급 해기사로 승선할 때와 지금 달라진 게 없다. 당시에는 10개월 승선에 유급휴가 6일 부여, 현재는 8개월 승선에 유급휴가 6일 부여로 (크게) 변한 게 없다”고 탄식했다.

이에 대해 김인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 해운업계가 대규모 흑자가 난 지금 선원정책도 세계 5위권의 선진국 수준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선원이 없으면 선주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다.

전·현직 해기사뿐만 아니라 해기사를 가족으로 두고 있는 이들도 해외 선사의 높은 급여 조건과 업무환경에 놀랄 따름이다. 3항사 아들을 둔 박지영 씨는 “3개월 승선에 3개월 유급휴가, 24시간 인터넷 연결, 더불어 안전에 대한 높은 인식을 기본으로 하는 유럽 선사의 시스템이 너무나 부럽다”며 “젊은 혈기에 외부와 단절되고 폐쇄된 선박이라는 근무 환경에 익숙해지며 성장해가야 하는 우리 주니어 사관 약 70%가 승선 5년 이내에 하선, 이직한다고 하니 숙련된 시니어 사관의 수급 부족이 계속 심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부모는 “임금과 휴가를 떠나 적절한 시기에 원활한 교대가 현재로선 제일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근무조건이 더 악화됐다?

또 목포해대를 졸업하고 현대상선(현 HMM) 항해사로 일했던 정초영 군산대 교수는 “2022년 현재 학생들을 원양어선과 해운선사에 항해사로 나가도록 가르치고 있는데, 20년 전의 항해사 보다 지금 현재의 항해사의 처우가 더 좋은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으로 말했다. 정 교수는 “현재 거의 모든 항해사는 계약직이다. 원양어선은 아직도 1년 이상, 상선은 아직도 6개월 이상의 장기 승선하고 있다. 그 사이 군 복무기간은 28개월에서 18개월로 줄어들었다. 해기사 월급도 육상에 비해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SM(Ship Management) 위·수탁 사업 경험이 풍부한 이재혁 씨는 “선사의 사정과 의지의 문제라고 본다. 업무 로드 증대를 포함한 선원관리 비용의 증가에 관한 문제라 생각된다”며 “IMF 이후 지난 20년간 선사들이 어떤 해사정책 방향에 초점을 두고 SM COST, 특히 선원비를 중점관리해 왔는지를 보면 선원법 개정이나 반대 입장을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육상근무 조건 비해 해상근무 나아지지 않아

그러면 군 복무 기간도 대폭 줄고 병사 급여도 급상승하고 육상 근무자의 처우 또한 좋아지고 있는데 왜 해기사 처우만 30년 전과 달라지지 않아 마치 퇴보하는 것처럼 보여질까? 이에 대해 이재혁 씨는 지난 20년 전과 선사의 사정을 비교해보면 선사들의 오너십이 거의 다 비해운산업(사모펀드, 하림, SM그룹 등)이나 금융산업(산은)의 지배를 받거나 자회사 등 영향 구조가 바뀌었다. 이런 구조적 환경도 선원법 개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도 싶다”고 말했다.

그럼 자율주행선박이 보편화되면 선원들의 대우는 어떻게 바뀔까? 선원도 필요 없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정초영 교수는 “자율운항선박의 장미빛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선원의 처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 해양사고를 일으키는 주범이 항해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제1위의 수산물 소비 국가로 원양어선에 승선하는 항해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해운은 국가 경제의 호흡 혹은 동맥과도 같기 때문에 자율운항선박이 상용화 되는 것은 맞지만 중간 단계의 논의가 생략되는 느낌을 받는다”며 선원 처우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선원 처우 개선 주장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왜 여지껏 변화가 없을까 성토하는 이도 있다. 권종호 이삭(주) 대표는 “우리 해기사 처우 문제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닌데 우리 해운계 정책 입안자들이나 관료를 포함한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 사실을 (깊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성토했다. 권 대표는 “우크라이나 등 동구권 선원들도 이미 25년 전부터 3개월 승선 3개월(혹은 2개월) 휴가, 11주 승선 11주 휴가 이렇게 운용했는데, 나라는 발전하고 육상의 근로조건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는데 우리 해상의 후배들이 선배들보다 더 열악한 근로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선배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예비 해기사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계없음)
예비 해기사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계없음)

승선예비역제도 축소도 원인

국내 해기사들이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이직율이 높은 것은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다. 해수부 자료에 따르면 60세 이상 선원이 전체 선원의 37%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며, 특히 선원 세대교체 시기를 놓치면 우리나라 해운·수산업계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선원의 경우 전체 정규직 근로자 월평균 임금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근무 강도 대비 낮은 보상, 사회와 단절 등으로 이직이 빈번하고 육상직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개인의 삶과 일과의 균형이 중시하는 MZ세대의 장기승선 기피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병역 문제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승선예비역제도가 제대로 작동해서 해사대학 졸업 후 승선으로 군복무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제도 혜택 인원이 점점 줄고 군복무 기간 또한 대폭 단축돼 군복무를 대체하는 승선의 의미도 상당히 준 것으로 파악된다.

폐지 위기에 놓인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는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정하는 교육기관에서 정규교육과정을 마친 현역병 입영대상자 중 항해사 기관사 면허를 소지한 이가 졸업 후 5년 안에 3년간 승선 근무를 하면 현역으로 군복무를 필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의무승선을 마친 사람 중 40세 이하는 전시, 사변이나 동원령이 선포되면 예비역 장교나 부사관의 병적에 편입해 군수물자의 수송을 담당하게 된다.

최근 대부분의 해기사들이 비정규직으로 선원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데다 의무 승선 기간에 해당하는 3항·기사 연봉이 4,000만 원 대로 일반 대졸 취업자와 비슷하지만 근무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는 점도 짚어보아야 할 이유다. 최근 해기사 직업이 대표적인 4D(Dirty, Difficult, Dangerous, Distant) 업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윤철 한국해대 교수는 얼마전 해운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소수산업으로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농업의 경우 그 필요성을 인정해 국가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 않냐”며 “선원 교육시스템의 정비와 교육기관에 대한 지원도 같은 시각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원법 개정?

선원법 개정 문제도 언급되고 있다. 해기사 이재혁 씨는 “정부가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 근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서 선원법에 시대정신까진 아니어도 해기인력에 관한 현실인식이 좀 반영됐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해기사 박영선 씨는 “선원법은 특수한 근무환경을 고려하여 선원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법인데 근로기준법보다 보호가 미흡하다. 선원들의 단체행동권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현행의 규정은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 이제는 선원법을 시대에 맞게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Z세대는 워라벨 중시

김인현 공간정보통신 대표는 “우리는 요즘 워라벨을 중요시하는 MZ세대 해기사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존중도 하지 못한다”며 “우리의 현실은 참담하다. 우리 선원법은 과거 100여 년 전 일본법의 틀을 가져와 큰 변화 없이 그대로이다.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개선은 쉽지 않다. ‘해기전승’ 차원에서 선원들의 유급휴가를 대폭 늘려야 한다. 젊은 선원들에게 제대로 된 유인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승선 기피를 막지 못한다.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석행 시마스타 대표는 “주니어 해기사관들의 이탈과 연안선 선원 부족 사태는 열악한 선원의 처우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해양수산부, 해운협회 등 유관기관 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적극적인 개선책이 반드시 강구돼야 한다. 과거 한진해운은 가족동승제도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해기사 처우 개선은 국제 경쟁력 상승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재혁 씨는 “주니어 해기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30년 전 해대 졸업자들을 보면 그 때도 70% 이상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재학 중에는 1항사 두 배 타고 하선하는 걸 목표로 했는데 막상 몇 년 승선하고 군복무도 끝난 상태가 되니까 육상으로 가고 싶은 심리가 강하게 작동했다”고 돌아봤다.

법정휴가부여시점 단축 및 법정휴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박지영 씨는 승선 1개월 당 유급휴가 6일을 최소 8일로 늘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직 선장의 말은 현실을 뼈아프게 직시하게 한다. 허승우 선장은 “한국 선원들은 더 이상 선주들에게도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다. 실무에서 한국 국적의 선·기장들도 한국 국적의 주니어 사관뿐만 아니라 1항·기사 급까지도 외국선원을 더욱 선호하는 시대가 됐다”고 전했다.

 

매력 잃은 한국 해기사

현재의 열악한 승선 근무 조건은 더 이상 매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제 경쟁력에서도 떨어져 우리 해기사들의 해외 취업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젊은 해기사들은 3년간 승선하며 병역특례를 받는 것보다 18개월 군복무를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급여가 매우 매력적으로 높아지거나 승선 조건과 처우에 대한 획기적인 혁신이 있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정신력, 의무감, 사명감에 호소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젊은 세대, MZ세대는 자유로운 생활과 워라밸을 상당히 중시하기 때문이다.

선원법 개정 또한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박영선 씨는 “선원의 단체행동권을 엄격히 제한하다 보니 실제 선원으로서는 최후의 무기가 박탈된 상태다”라며 “국가에서는 노사간 힘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관련조항을 폐지하거나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고민이 많다”며 어선원 문제까지 의견을 듣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윤미향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의원은 “시대가 바뀌고 있다”며 “선원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근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장기승선으로 인한 가족, 사회와의 단절감 해소를 위해 유급휴가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윤 의원은 “선원법상 단체행동권이 엄격히 제한돼 있어 선원들이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관련 법을 개정해 선원들의 복지와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해법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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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2023-02-13 02:49:43
해기사 외에 아무도 관심 없는 해기사 복지, 인권.
중앙동 해운회사들 마저 선원을 부품 취급.
CCTV로 항시 선원 감시 인.권이 가볍게 무시되는 직업.
점점 많아지는 규제로 매년 체감될 정도로 늘어나는 업무량,
그럼에도 일도 못하고 책임감 없는 외국 주니어 사관 배치,
선원을 늘리던가 임금/복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