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리빙 쇼어라인(Living Shoreline)과 숨 쉬는 해안뉴딜
⑤ 리빙 쇼어라인(Living Shoreline)과 숨 쉬는 해안뉴딜
  •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승인 2022.01.0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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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현대해양] 2021년, 그 어느 해보다 뜨겁고 숨 가빴던 한해였다. 기후위기에 코로나까지 산 넘어 산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왔던 만큼, 해양분야 성과도 나름 있었고 잠시나마 기쁨도 컸다. 우리나라 바다만의 특별한 가치가 전 세계인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원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K-갯벌은 14년의 우여곡절 끝에 세계자연유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 12월 발표된, K-갯벌 가치 연 18조 원이라는 낭보는 힘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 국민에게 가슴이 탁 트이게 하는 시원한 소화제였다. 2013년 발표 이후 정체된 K-갯벌의 숨겨진 가치가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K-갯벌이 우리에게 아무 대가 없이 주는 혜택(생태계서비스), 그 막대한 경제적 가치의 주역은 조절서비스(무려 연간 16조 4천억 원)로 밝혀졌다. 그동안 추측만 무성했던 정량적 가치가 5년간의 연구로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우리 연구팀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남정호 본부장이 이끄는 연구팀과 함께 지난 2017년부터 전국 갯벌에 대한 해양생태계서비스 가치 평가 연구를 진행해왔다. 결과는 놀라웠다. 2013년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조절서비스 2조 원을 8배 훌쩍 상회하는 16조 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산출됐다. 오염정화(14조 원), 재해저감(2조 원), 탄소흡수(120억 원) 측면에서 K-갯벌이 주는 연간 해양생태계서비스 가치는 기대 이상이었다. 갯벌은 오염물질을 깨끗하게 걸러주고, 연안침식과 같은 자연재해도 줄여주며, 국가 탄소중립 달성에 꼭 필요한 해양의 훌륭한 탄소흡수원 역할까지 도맡아 해왔던 것이다.

 

‘리빙-쇼어라인’이란

그러나 과거 우리는 연안과 갯벌의 이토록 큰 가치와 역할에 무지했다. 우리는 연안개발이란 명분으로 해안선을 따라 콘크리트와 같은 ‘회색구조물’로 된 인공제방을 수없이 만들었고, 33.9km라는 세계 최장의 새만금방조제를 가진 나라임을 자랑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개발에 미쳤고,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을게다. 그러나 인공제방은 홍수, 슈퍼태풍, 쓰나미, 허리케인과 같은 대자연의 힘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가장 파괴적인 자연재해인 허리케인은 초강대국 미국도 피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대책이 없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허리케인은 거의 해마다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고, 미국 최대 하구 중 하나인 체사피크만도 허리케인과 이에 따른 연안 침식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1970년대 초 이른바 ‘리빙-쇼어라인’이란 개념이 대두된 배경이다. 리빙-쇼어라인 개념은 인공제방과 같은 일명 ‘회색구조물’은 철거하고, 해안가에 식생이나 굴밭과 같은 자연서식지를 대폭 늘림으로써 허리케인에 대비하고 연안 침식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후 플로리다주 등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고, 연안 생태계 건강성을 회복하자는 추가적 목적에 맞게 보다 활발해졌다. 2000년대부터는 NOAA(미국 해양대기청)가 주도하면서 다양한 목적과 방법으로 미국 전역에서 시행하는 국가사업이 됐다. 작금의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적합한 선제적 대응사업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리빙-쇼어라인, 왜 중요한가

그렇다면 왜 리빙-쇼어라인 사업이 연안 침식을 줄여주는 것일까? 이 사업의 핵심은 바로 자연의 기능을 이용한 생태공법에 있다. 염생식물의 식재, 모래 또는 바위와 같은 자연재료를 이용한 방파제 조성, 굴밭과 같은 생물체와 그 서식지를 활용한 파력 감쇄가 연안 침식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즉 자연제방의 역할과 강점을 살렸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아가, 자연서식지의 확장은 바다 생물의 가입, 정착, 성장에 더욱 유리하므로 해양생태계 구조와 기능이 향상되고 해양생태계 건강성이 전반적으로 증진된다.

최근 발표된 NOAA 리빙-쇼어라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연안습지 재해저감 비용은 연간 25조 원, 1km² 당 생태계서비스 가치 100억원 상승, 투자 대비 효용인 사업 편익은 7배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 연안과 갯벌의 블루카본 탄소흡수 기능이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이제 리빙-쇼어라인은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적합한, 그리고 경제적인 해양생태계복원사업의 롤모델이 됐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시작해야

최근 전 세계에서 리빙-쇼어라인 사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 영국, 이스라엘 등 선진국에서는 친환경 생태블록을 기존 설치된 인공구조물(방조제, 격벽 등)에 부착하거나 연안에 추가로 배치하여 연안 침식을 줄이고, 해양생물다양성도 증진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2018년 세계적 자동차 기업인 볼보(Volvo)는 시드니 해양과학연구소가 주도하는 ‘Living Seawalls’란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호주 볼보가 친환경 거대 에코타일 시제품 50개를 시드니 항구 방파제에 부착한 것이다. 이 에코타일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재료로 3D 프린팅해서 제작됐는데, 호주에 잘 발달한 맹그로브 나무뿌리, 산호초, 해안암반의 형상을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형상은 해양생물의 부착성을 높여 생물다양성을 증진시켰고, 다공성 세밀 구조도 추가해서 오염물질까지 잘 흡착해주는 기능까지 배가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일찍이 2012년부터 에코콘크리트와 패류를 활용해서 연안 침식을 방지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ECOncrete라는 환경엔지니어링 업체는 지난 10년간 미국, 네델란드, 모나코, 스페인의 연안과 항구 등지에 에코콘코리트 블록을 적용한 대규모 해양생태복원 사업에 앞장서왔다.

홍콩도 최근 발 빠르게 리빙-쇼어라인을 받아들였다. 2019년 홍콩 동청에서 시작된 에코-쇼어라인 시범사업인데, 총 1,000억 원을 들여 전장 약 3.8km 해안을 에코-쇼어라인으로 정비하는 사업이다. 에코블럭, 굴패각, 암초, 조수웅덩이 등 다양한 자연구조물을 자연스러운 조간대 지형처럼 배치하고, 상부에는 염생식물도 심는 등 리빙-쇼어라인 생태공법을 복합적으로 적용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동청 해안지역의 해안서식지 질과 해양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고,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해안 경관까지 개선한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시작된 홍콩형 리빙-쇼어라인 사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콩 정부는 이 사업을 미래 매립사업의 모델로 삼겠다고 하니 복원사업인지 개발사업인지 아리송하다. 여하간 현재의 인공제방을 연성화하고 자연제방을 만들어 친수공간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리빙-쇼어라인 개념이 적용된 것은 맞다. 이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홍콩시티대학의 케니 렁 교수가 2018년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황해생태계학회 때 거창한 계획을 설명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그 성공적 결과를 홍콩 언론을 통해 알게 됐음에 새삼스럽기도 하고, 더 일찍 우리나라에서도 추진됐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도 남는다. 리빙-쇼어라인, 우리말로 ‘숨 쉬는 해안뉴딜’ 사업이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시작됐으면 한다.

 

경제성과 기대 이상의 파급효과

리빙-쇼어라인 사업은 가성비 측면에서도 압도적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이유는 조성 공법에 있는데, 바로 자연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인공구조물은 설치, 유지(관리)비용이 매우 비싸다. 리빙-쇼어라인 설치비용은 1m 당 약 3,000~5,000달러 정도 된다. 유지(관리)비용은 설치비용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하니, 대략 1km 리빙-쇼어라인 조성에 우리 돈 30-50억원 정도가 소요되는 셈이다. 1km 방파제 건설에 수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됨을 생각하면 선택지는 뻔하다. 리빙-쇼어라인의 경제성을 논할 필요가 없겠다.

최근 NOAA는 지난 20년간의 사업 결과를 통해 1km 해안선 조성이 연간 110t의 탄소를 추가 저장하고, 정화기능과 홍수조절 능력까지 배가시킨다는 사실을 새롭게 제시했다. 또한, 4.5m 미만 폭의 식생지나 굴밭 조성은 파력 에너지를 50% 이상 더 흡수하고, 인공구조물보다 태풍이나 파도에 대한 저항능력을 배가시킨다는 점도 밝혀졌다.

연안 침식 방지를 목적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리빙-쇼어라인 사업이었다. 그러나 지난 50년간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진행돼면서 사업의 목적과 취지는 조금씩 달라졌다. 중요한 것은 리빙-쇼어라인 사업의 개념, 중요성, 가치, 효과성, 그리고 경제성까지 모두 입증됐다는 사실이다. 리빙-쇼어라인의 필요성에 더 보탤 말은 없을 것 같다.

특별한 점은, 리빙-쇼어라인은 연안생태계가 제공하는 다양한 해양생태계서비스를 고르게 그리고 꾸준히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다양한 해양생물의 서식처가 되고, 생물작용이 활발하면 생태계 정화능력도 그만큼 향상되기 마련이다. 또 태풍이나 홍수로 범람하는 물의 흐름을 조절해주는 완충 기능도 증대하고, 앞서 강조한 블루카본의 가성비를 고려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작금의 글로벌 이슈인 탄소중립이란 글로벌 화두란 측면에서 지금 딱 우리에게 시급하고 절실한 사업이란 생각이다.

국외 리빙쇼어라인 시공사례
국외 리빙쇼어라인 시공사례

“숨 쉬는 해안뉴딜”, 한국형 K-리빙-쇼어라인

2015년 NOAA에서 발간된 리빙-쇼어라인 가이드북에 따르면 10개의 생태공법이 소개돼있다. 기술유형은 사업대상지의 파고, 조차, 조류, 경사, 퇴적상, 지형지리 등 다양한 해양환경 특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시공의 유형별 장점과 주요시공 방법까지 상세히 안내돼있어 매우 유익한 자료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해양환경과 생태계 특성에 맞는 K-리빙-쇼어라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지난 10월 운 좋게 미국에 다녀왔다. 미국의 리빙-쇼어라인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기 위해 코로나를 뚫고 미국 뉴저지 케이프메이에서 개최된 ‘미국 리빙-쇼어라인 워크샵’에 참석하고 K-리빙-쇼어라인 기획연구를 발표하기 위함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리빙-쇼어라인 프로젝트를 한눈에 볼 좋은 기회였다.

다행일까? 공교롭게도 200여 명이 참석한 이 워크샵에 외국인 참가자는 우리 연구실 일행뿐이었다. 우리는 주최 측의 눈에 들었고, 행사를 주최한 미국 하구복원학회의 다니엘 하이든 학회장과 단독 토론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도 미국의 리빙-쇼어라인에 관심이 많고, 우리는 특별히 리빙-쇼어라인의 생태공법을 복합적으로 적용하여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해안뉴딜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든 대표도 우리의 관점과 시도가 의미가 있다고 동조하면서 향후 적극적인 교류와 협력을 약속했다.

이어 따라나선 케이프메이 해변 리빙-쇼어라인 복원지에서 우리는 새롭게 조성된 모래뻘과 굴밭을 눈으로 확인했고, 양빈(모래 붓기)과 식생(조림)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실제로 새롭게 조성된 미국 리빙-쇼어라인 해변을 거닐며 우리는 미래 곧 시작될 ‘K-숨 쉬는 해안뉴딜’ 사업에 대한 희망과 청사진도 그려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무사히 귀국했다. 잠깐이었지만 2년 만의 해외 나들이가 꽤 알찼고, 과거 너무나 당연히 지내던 ‘마스크프리’ 일상에 대한 고마움으로 고개가 절로 숙어진 매우 귀한 시간이었다.

 

숨 쉬는 해안뉴딜의 방향과 바람

그렇다면, 우리만의 ‘K-숨 쉬는 해안뉴딜’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까? 나는 우리나라 바다와 갯벌이 가진 독보적인 생태적 우수성과 특장점을 잘 살리고 더 키울 수 있는 방향이 좋다고 생각한다. 앞선 몇 차례의 연재에서 언급했듯, 우리는 삼면에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사색 그 이상의 무지개 바다를 가지고 있다. 이는 해양환경 특성이 매우 다르다는 뜻이다. 즉, 각 바다가 갖는 환경과 생태계 특성에 맞는 리빙-쇼어라인 생태공법이 차별적이면서도 복합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K-해양생물다양성’으로 대변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다양성을 자랑하는 서해, 남해, 동해, 그리고 제주 바다의 서식생물상을 유지하면서도 고유종을 잘 지킬 수 있는 식생과 굴밭, 에코공법이 순차적이면서도 복합적으로 적용돼야 함이 중요할 것 같다. 가령, 생물의 종수나 개체수를 중시하는 알파다양성보다 종조성과 유연관계를 결정하는 군집에 초점을 둔 베타다양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이 필요하다. 물론 두가지 다양성을 모두 증진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끝으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은 바로 우리 갯벌이 가진 블루카본으로서의 가치, 즉 탄소흡수력을 증진시키는 방향의 에코-쇼어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갯벌 블루카본 연구의 선두그룹에 있는 우리다. 갯벌 블루카본의 국제인증은 물론이고, 이매패류나 해조류와 같은 다양한 신규 블루카본 후보군을 실제 우리나라 해안에 적용하는 친환경 시공방법을 발굴하고 개발하여 상용화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미국의 리빙-쇼어라인이 연안 침식 방지를 최우선 목적으로 시작됐다면, K-숨 쉬는 해안뉴딜은 ‘탄소흡수형 해안조성’이라는 새롭고 담대한 도전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10년 후, 새롭게 펼쳐질 대한민국의 숨 쉬는 해안, 그 해안에서 조개를 줍고, 파도를 타며, 해수욕과 낚시를 즐기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2022년 새해 첫 연재에 갈음한다.

현대해양 애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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