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7 - 「윤좌」 속에 남겨진 향파 선생의 흔적 ⑴
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7 - 「윤좌」 속에 남겨진 향파 선생의 흔적 ⑴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1.07.1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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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향파 선생은 그의 생이 마무리될 때까지 「윤좌」와의 인연을 끊지 않았으며 거의 매호마다 글을 발표했다. 「윤좌」 속에 남겨진 향파 선생의 글들을 살펴보는 것은 「윤좌」 의 남겨진 글 속에서 그의 삶과 문학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창간호에는 향파 선생이 「분화구」라는 글을 남기고 있다. 이글은 D선생과 R여사 사이의 사랑의 문제를 화자가 형이라고 설정한 한 대상을 향해 편지 형식으로 구성한 글이다. 향파 선생이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을 소설이나 시의 형식이 아닌 수상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감각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윤좌」 2집에서 선보인 향파 선생의 「해인사 안초」도 해인사에서 지내면서 R여사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편지글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수상집의 모음인 「윤좌」의 특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7월 31일부터 8월 24일까지의 일기식 편지는 향파 선생의 삶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는 글이다. 편지글이 지니고 있는 소통의 진솔성 때문에 누구에게나 공감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윤좌」 3집은 1969년 7월 10일에 나왔다. 이는 2집이 나온 지 4년 만이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난 이유는 역시 출판 여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집에서 특별하게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동인이었던 청마가 세상을 떠나 묻힌 하단 에덴 공원묘소에서 1969년 4월 27일 찍은 사진이 화보로 실려 있다는 점이다. 사진의 주인공들은 최계락, 이종석, 김학, 이주홍, 장호강, 허만하, 정영태 시인이다. 「윤좌」 동인으로는 향파 선생이 유일하다. 이는 문인들의 야유회가 이곳에 있었는데, 사진을 같이 찍은 문인들은 소수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향파 선생이 가지고 있던 사진을 활용하여 「윤좌」에 추모의 정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향파 선생은 「청마의 웃음」이란 제목으로 청마를 회상하고 있다. 여기에서 향파 선생은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이날 부산문협지부의 야유회를 청마가 누워 있는 하단 에덴공원으로 가서 30여 명의 문우들과 함께 야유회를 가지면서 평소에 청마가 보여주었던 호탕한 웃음을 떠올렸다. 그의 무덤 곁에 앉아서 서로 담소를 나누며, 청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마음은 인생살이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청마가 기초한 윤좌 선언문을 떠올리며 동인 중 제일 먼저 떠난 청마의 삶을 떠올리고 있다. <제각기 가진 행로 위에서 앞서 가고 뒤서 가고 하는 중 지극히 우연히 이뤄진 한 무리의 일행인지도 모른다. 거기엔 까다로운 그 무엇도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지금 와선 뭔가 쓸쓸한 기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있다. 이 땅을 먼저 떠난 자의 삶을 통해 아직 이 땅에 남아있는 자들의 삶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나게 하는 글이다.

「윤좌」 4집에서 향파 선생은 「지나간 사람들」을 통해 평소에 정을 나누었던 자들 중에 유명을 달리한 분들에 대한 그립고도 따뜻한 정을 내보이고 있다. 절친한 관계를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먼저 떠나고 나면 남는 것은 그리움과 안타까움이다. 그런 애절함이 남아 있는 조의홍 씨의 인간됨을 회고하고 있으며, 태화인쇄소에서 일하면서, 《문학시대》 출판을 맡았던 박광호 씨를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병마와 가난과 싸웠던 개인사에 대한 기록은 인생사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또 한 사람, 가야산 자락에 해인국민학교를 세운 이동수 선생에 대한 기록이다. 그가 운영하던 여관에 들러 원고 작업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회상하는 삶의 기록들은 사람과 사람과의 인연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윤좌」 5집에서 향파 선생은 「雞肋蕪束」이란 글을 통해 어린 시절 고향에서 만났던 첫 사랑의 대상인 순녜를 대상으로 삶의 본질과 진정성을 그리고 있다. 첫 사랑의 순수성이 짙게 묻어난다. 「윤좌」 5집에는 연각 선생 고희기념란도 마련되었는데, 향파 선생은 「연각의 안과 밖」을 싣고 있는데, 연각 선생의 수필집인 「보리를 밟는 마음」에 부쳤던 서문을 다시 수록하고 있다.

「윤좌」의 일곱 번째 이야기는 1976년에 나왔다. 7집에서 특이한 사항은 이 호가 향파 선생의 고희 기념호이고, 「윤좌」 제호를 한형석 선생이 썼다는 점이다. 향파 선생의 고희 기념을 위해 조순 시인이 향파 선생 인물 사진을 찍어 실었고, 사진에 대한 변을 <초인>이란 제목으로 달았다. 그리고 향파 선생 특집란에는 이용기, 이주호, 김종규, 안춘근, 이원수 작가 등의 글이 실렸다.

이용기 교수는 「향파 선생과 나」에서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일본, 서울, 부산에서 만나게 된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이주호 교수의 「향파 선생을 모시고」에서는 부산에서의 첫 만남과 그 이후의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상하게 소개되고 있다. 김종규 선생은 「향파, 香波」에서 향파의 향기가 널리 퍼지기를 기대하고 있고, 안춘근 님은 「향파 서실 방문기」를 통해 1박 2일 동안의 향파 선생 집 방문기를 인상적으로 펼쳐 놓고 있다. 이원수 작가는 「향파의 문학」에서 예술 전반, 소설, 아동문학 등 향파 선생의 문학에 대한 평가를 의미 있게 정리하고 있다.

「윤좌」의 8번째 이야기는 1977년도에 하서 김종우 박사의 화갑기념호로 출간되었다. 제자는 역시 한형석 선생이 썼으며, 실무 편집은 김영송 교수가 맡았다. 기념 특집 글에는 김동욱, 이주호, 박지홍, 김종우 교수의 자서 등으로 꾸며졌다. 그리고 장을 달리하여 향파 선생이 「하서 박사 분취망청기」를 더했다.

「윤좌」 9집의 특별한 부분은 향파 선생이 「윤좌 10년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호수로 치면 9집이지만 창간한 연도를 치자면, 10년이 훨씬 지났기에 이러한 뒤돌아봄은 필연적인 사항이라고 본다. 특히 10년사에서 박문하 동인이 창간 동인이면서도 창간호에 이름이 빠졌던 이유를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창간호에 투고한 원고가 너무 학생 교육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싣지 못하게 되고, 박문하 동인이 여기에 반발해서 함께하지 못했다는 해명은 「윤좌」 동인이 출발하던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윤좌」의 열 번째 이야기는 1979년에 출간되었는데, 10호는 유명을 달리한 수창 이용기 교수의 추모 특집으로 엮었다. 추모 특집의 분량이 다른 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아 전체 책 분량의 과반을 넘었다. 동인들의 글 꼭지보다 더 많은 무려 14명의 필자들이 추모글에 동참했다. 향파 선생은 「수창을 보내며」에서 수창의 비보를 들었던 과정과 그 소식을 듣고 그의 집에 달려가 그의 주검을 확인하는 장면과 과거 동래중학교에서 함께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영결식 때 사회를 맡아 했던 개식사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상 「윤좌」 몇 권의 글에 나타난 향파 선생의 삶의 모습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향파 선생의 문학적 지향점이 철저하게 사람다운 삶의 구현에 놓여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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