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선주사 육성, 어디까지 왔나?
한국형 선주사 육성, 어디까지 왔나?
  • 김엘진 기자
  • 승인 2021.07.14 0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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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공 시범사업에 ‘지속가능성 의문’
그리스 컨테이너 선박
그리스 컨테이너 선박

[현대해양] 지난 5월 24일 「한국형 선주사업 설명회」에서 한국해운협회 김영무 상근부회장은 “한국형 선주사업이 민간형 선주사업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길 희망한다”고 발언했다. 한국형 선주사(Tonnage Provider, 대선업)는 운송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선박을 소유만하고 용선을 주는 회사를 말한다. 선주사와 운항사를 겸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선주업이 발전한 일본과 그리스, 중국 등에서는 활성화 되어있다.

해운업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러한 선주사 육성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으나, 국내에서 성공한 선주사를 찾는 일은 아무래도 당분간은 요원하게 느껴진다.

 

해외 우량 선주사 모델

지난 2월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와 선박건조금융법 연구회에는 ‘한국형 선주사 육성을 위한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대표 집필자는 김인현 교수와 강병태 한국해양대 겸임교수이자 전 무역보험공사 부사장이다.

이 보고서는 국내의 선주사와 일본·그리스·중국 등의 선주사 모델의 차이점을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선사는 소유하고 있는 선박을 운항에 사용하기도 하고, 배를 빌려서 용선자로서 운항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외국 선주사들은 선박을 소유하고 임대하지만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일본·그리스의 경우 민간형 선주사가 대부분이며, 중국 선주사는 금융회사가 자회사로 리스사를 세워 선주사 업무를 처리하는 금융형 선주사 모델을 지녔다.

김 교수는 “현재 일본에는 약 3,500척의 선박이 등록돼 있는데, 이 중 1,100척은 일본 선주사 소유다. 선박이 필요한 운항사가 선주사에게 선박을 건조해서 대여해 줄 것을 의뢰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리스의 경우, 대부분의 선주사가 대대로 가업을 승계하는 가족경영 형태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거대자본 및 대규모 조직이 필요한 컨테이너 부문보다는 벌크선, 탱커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에 가족경영의 장점을 바탕으로 효율적 선박관리·운영이 가능하다. 아울러,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어 금융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를 통해 효율적인 선박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그리스 해운업계의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경우, 2007년 ‘금융리스회사관리방법’ 제정 이후 상업은행들이 금융리스회사를 설립해 선박금융 업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중국의 선박금융 리스 회사의 자산은 선박 뿐 아니라 항공기, 차량 등 운송설비와 발전소나 공장 등 생산설비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선박리스의 60% 정도는 해외선사에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의 선박금융리스회사는 세제혜택을 통해 중소선사가 선박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 규모가 작고 신용도가 낮은 중소선사들의 유일한 선박금융 조달 수준으로 기능한다. 또한, 전통적인 BBCHP(Bare Boat Charter Hire Purchase,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 방식의 리스 상품 외에도 정기용선 기반의 이익공유형 리스, 장기화물운송계약 기반의 리스 등 해운사의 특성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리스제를 도입해 국내외 우량 선주사들을 유인하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한국형 선주사업의 본격 시행에 앞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한국형 선주사업의 본격 시행에 앞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선주사와 운항사 구별 필요”

선주사는 민간형 선주사, 금융형 선주사, 정기용선자로 나눠볼 수 있다. 민간형 선주사는 TC(Time Chater Agreement, 정기용선) 계약을 맺어 정기용선자에게 선박을 임대하는데, 이때는 선박에 대한 관리도 선주사가 도맡는다. 금융형 선주사는 BBC(Bareboat Charter Agreement, 나용선) 계약을 맺는데, 선박이 선박으로서의 기능을 하게하는 준비를 모두 나용선자가 한다는 점에서 정기용선 계약과 구별된다.

BBCHP 계약도 있다. BBC가 선주가 자기의 선박을 해운사에 임대하고 나용선료를 받는 선박임대차 계약을 의미한다면, BBCHP는 해운사가 해외에 설립한 SPC(Special Purpose Company, 특수목적법인)와의 BBC 계약에 따라 용선료를 지급완료한 뒤 소유권을 취득하는 구조다.

선주사의 형태가 민간형인지 금융형인지, 그리고 정기용선형인지 나용선형인지 등에 따라서 법적 책임에도 큰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선주협회의 2019년 해사통계에 따르면 2018년말 기준으로 993척의 외항상선 중 516척의 선박(약 40%)이 BBCHP 방식의 소유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김 교수는 “BBCHP의 경우 시장에서 형성된 선박사용 대가로서의 용선료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선가 전체를 할부로 나누어 지급하게 되기 때문에, 용선료보다 할부금이 고액”이라며 “때문에 경기가 좋지 않은 시기엔 수입은 줄어들고 갚아야 할 비용은 늘어나 변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선주업도 일본이나 그리스 선주업처럼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주사와 운항사가 분명히 구별될 필요가 있고, 그렇기에 민간형 선주사 육성이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진공, ‘한국형 선주사’ 시범사업 추진

지난 4월 한국해양진흥공사(사장 황호선, 이하 해진공)는 한국형 선주사업의 본격 시행에 앞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해진공은 한국형 선주사업이 △선사 유동성 확보 △운항 경쟁력 제고 △재무비율 개선 △선사의 선대경쟁력 확충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해진공은 사업 추진 타당성 확인 및 구체적 지원방안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행하고 있다. 이번 시범사업은 용역추진과 병행해 사업 방향성 등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선박펀드 구조를 활용해 해운사가 보유한 선박을 매입 후 해운사에 BBC 형태로 임대 공급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종훈 해진공 해운금융1부 팀장은 “이번 사업의 쟁점은 위험부담을 누가 지느냐에 대한 것인데, 선박 매입 부담이나 선박 자산 가치 변동에 대한 위험을 해진공이 안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3개 선사의 선정을 완료해 구체적인 협의를 거치고 있으며, 7~8월 중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 본격적으로 사업을 개시할 예정이다”라며 “시범사업은 사업에 어떤 문제점이 있고, 어떤 결과를 도출해야 할 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니 시행 결과에 따라 이후 진행 방향도 정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해운협회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5월 24일 여의도 해운빌딩 10층 대회의실에서 「한국형 선주사업 설명회」를 공동개최하고 사업 추진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한국해운협회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5월 24일 여의도 해운빌딩 10층 대회의실에서 「한국형 선주사업 설명회」를 공동개최하고 사업 추진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시범사업 지속가능성 의문

윤민현 전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orea P&I Club) 초대이사이자 한국해사포럼 대표는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의 선주사는 민간기업으로, 금융·해운 등의 투자 전문가들로 이뤄졌다”며 “그래서 해진공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선주사업에 의구심이 든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 기관에서 민간 전문가들처럼 사력을 다해 사업을 추진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학구적인 논리와 현실 시장에서의 논리는 다르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윤희성 한국해양대 교수는 “전통적으로 선주사의 역할은 민간이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어떤 사업이 다른 사업에 경쟁력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으며, 모든 사업에는 확실한 수익구조가 있어야 한다”며 “선주업 역시 민간에서든 공공기관에서든 이익을 기대하지 않고 지속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해운사이클은 보통 7~10년에 걸친 장기전인데 공공기관 사장임기는 3년이다. 민간기업에서도 하기 어려운 선택을 공공기관장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저점 판단은 그리스 전문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인데, 우리나라 정부 기관에서 저점에 투자하는 ‘확정적 단기손실, 잠정적 미래이익’을 선택할 수 있을까?”라고 물음표를 띄웠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직 확실한 사업추진 계획이 알려지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특정산업 지원을 위한 산업 역할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필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선주사 육성,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국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데 있어 해운업과 물류업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3차 산업이다. 해운업 안에 포함된 선주업 역시 마찬가지다.

윤 교수는 “민간형 선주사라는 것은 해운업의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다. 해운업의 균형적·장기적 육성 과정에서 해운업의 한 분야인 선주업을 육성하는 것은 필수적 과제”라며 선주업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정부차원에서 육성을 하겠다고 바로 결과가 나타나는 일은 아니고, 선주사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하기에 더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은 아직 시작하는 단계고 혼란기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마지막으로 “그리스 선주업을 우리가 뛰어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조선업도 시작은 미미했지만, 결국 세계 1위 자리에 오르지 않았는가”라고 덧붙였다.

윤민현 대표는 “지금 논의되고 있는 한국형 선주사란 소유한 선박을 운행하지는 않고 임대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데, 우리나라에는 외국처럼 비즈니스 모델이 다양하거나 경쟁력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선주사의 성장은 필수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선주사에 세제 혜택 등 지원이 필요하고, 운항사가 선주사가 되는 경우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신장현 해진공 사업기획팀장은 “민간형 선주사가 성장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우리가 전체적인 해운업을 커버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아직 민간 선주사 육성에 대한 본격적 연구나 지원 등에 대해서는 준비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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