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의 공적자금과 오이디푸스 왕
수협의 공적자금과 오이디푸스 왕
  • 정만화 수협중앙회 상무
  • 승인 2020.12.0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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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인 수협은 독특한 구조로 공적자금을 받았다. 공적자금의 투입원인은 IMF 이후 일반기업의 지급보증이나 대출의 부실여파였지 수산자금의 영향은 미미했다. 계획조선 등 수산관련자금의 부실은 정부로부터 보전을 받았다. 주식회사가 아닌 수협중앙회는 주식소각이 아닌 상환을 전제로 한 수혈이었다.

이후 사업구조 개편으로 수협은행의 공적자금 상환의무가 수협중앙회로 넘어가고 중앙회 자체자금 9,000억 원과 예보 기금 1조 1,581억 원을 자본으로 2016년 12월 1일자로 수협은행이 설립됨에 따라 수협중앙회는 수협은행의 배당금을 재원으로 2028년까지 매년 800억 원 정도 공적자금을 상환하고, 나머지 금액은 중앙회가 상환하는 계획을 수립하여 2017년부터 상환하고 있다.

올해 수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는 어민을 위한 수협의 역할에 방점을 둔 감사였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서는 다섯 분의 의원이 질의에 나섰다. 김영진 의원은 공적자금 상환계획을, 이만희 의원은 공적자금 조기상환 촉구를, 서삼석 의원은 명칭 사용료 문제를, 홍문표 의원은 은행 수익금이 있어도 공적자금에 발 묶여 어민에게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를, 최인호 의원은 공적자금 상환 미진의 우려성을 제기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의 양경숙 의원은 공적자금 52조 원 회수 시 향후 국채발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회수방안 수립을 요구했다. 윤후덕 위원장은 공적자금 투입기관 중 회수 가능한 기관에 대해서는 해당 기관에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회수를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공적자금 조기상환이라는 하나의 문제를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농해수위에서는 어민인 국민의 관점에서, 기재위에서는 부채 관리 의무라는 국가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농해수위에서는 어민의 어려움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수협의 안타까운 현실을,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국가채무의 감소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이렇게 국회 내 2개 상임위원회에서 동시에 수협 공적자금의 조기상환에 대한 질의는 처음이다.

 

공적자금에 묶인 협동조합 자율성

협동조합의 자율성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항이다. 수협법 제141조의 4에 의하면 중앙회는 어업인과 조합에 필요한 금융을 제공함으로써 어업인과 조합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그 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촉진하기 위하여 신용사업을 분리하여 그 사업을 하는 법인으로서 수협은행을 설립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수협은행은 조합 및 중앙회의 사업수행에 필요한 자금을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수산물의 생산 유통 가공 판매를 위하여 어업인이 필요로 하는 자금과 조합 및 중앙회의 경제사업 활성화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주 업무이다. 즉 수협은행은 일반 상업은행이 아닌 어업인과 회원조합에 대한 수산금융의 원활한 지원을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 은행인 만큼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적자금을 받은 수협은 각종 규제로 자율성을 상실했다. 이는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공적자금과 맞바꾼 탓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원활한 공적자금의 상환이지만, 수협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2017년 말 1.73%에서 현재 1.38%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수협은행은 NIM이 유지되었더라면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4,000억 원대의 수익이 아닌 2,000억 원대의 수익을 창출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NIM 구조 하에서는 2021년 초 중앙회가 2,000억을 추가로 출자하더라도 세전이익은 2,776억 원, 배당액은 534억 원에 불과하고(보통주 자본비율 10.50% 및 NIM 1.38% 가정) 중앙회의 조달비용은 연간 30~40억 원 정도 증가하게 되는 셈인 것이다.

중앙회의 조달비용 보전을 위해 상환합의서를 개정한다하더라도 은행배당금을 이자비용에 충당하게 되어 이자비용만큼 상환액이 줄어들어 도리어 상환기간이 길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일시 조기상환 금액, 고유목적사업비 인정돼야

수협중앙회가 수협은행의 배당금을 재원으로 공적자금을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협은행의 원활한 사업과 자본비율 유지를 위해서는 수협중앙회가 채권을 발행하여 지속적으로 출자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수협은행의 NIM 수준에서는 수협중앙회의 지속적인 출자는 중앙회의 부담을 매년 가중시키게 되며, 자칫 수협은행의 수익창출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중앙회의 출자금 조달비용 지급과 공적자금 상환이 동시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인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대주주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협의 본질을 논의하는 건 어민을 위한 의사결정의 신속성에 있다고 본다. 당장 공적자금의 굴레를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려운 문제를 놀라운 발상을 통해 단번에 해결하는 프로노이아를 발휘하여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 수 있는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공적자금의 현재가치 할인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공적자금 상환관련금액을 세법 상 고유목적사업비로 인정받아야 한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 상 중앙회가 공적자금 상환에 사용하는 수협은행 배당금으로 고유목적사업비로 인정하여 법인세가 감면되는 것이 아닌 일시 조기상환 금액도 고유목적사업비 인정 대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수협중앙회와 수협은행이 동시에 어려움에 봉착하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는 어민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부디 어민과 격리되고 수협은행 설립목적과 동떨어진 공적자금이 제발 오이디푸스 왕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수문수답’이다. 수산의 문제는 수협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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