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 실정 감안한 어선검사제도로 개선돼야”
“어업 실정 감안한 어선검사제도로 개선돼야”
  • 최정훈 기자
  • 승인 2020.08.0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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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없는 엔진개방 중단 요구
- 어선검사제도 고도화 현장

[현대해양] 현행 어선검사제도에 대한 어업인들의 불만이 비등점에 달했다. 분초를 다투는 조업 실정에 맞는 검사제도로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통영 수산현장의 어업인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검사 기다리다 ‘녹다운’ 되는 경우도

이른 아침부터 온종일 비가 내리던 지난달 23일 통영 동호항 철공단지를 방문했다. 그라인딩 소리가 들려오는 한 업체 정비공장에서 정비사 A씨가 암초, 통나무 등 수중 장애물에 부딛쳐 휘고 데미지를 입은 프로펠라를 정비하고 있었다. A씨는 “정비를 마친 프로펠라를 언제 어선에 장착하고 다시 조업을 나가 수 있느냐는 얼마나 빨리 제때 검사를 받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어선의 엔진, 보조기관, 축 등 기관설비들은 주기적으로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검사원들의 입회 하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 어업인들은 조업 중 사고로 기관을 정비하게 된 경우 추후 다시 검사하는 부담을 덜고자 이번 기회에 검사를 받으하려고 하는데, 휴일이기 때문에 검사가 지연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A씨는 “어선 일정은 주말 연휴도 없이 운영되는데 검사도 어선 일정에 맞추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철공단지 내 한 엔진정비업체에서 만난 B씨는 “기관검사가 신속히 진행되면 선주들도 좋고 우리업체들도 다른 일들의 공정을 앞당겨서 진행할 수 있게 돼 좋은데 불가피하게 금요일 오후에 검사를 받아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경우 기껏해야 20~30분 정도 소요되는 검사를 위해 기관을 개방한 채로 월요일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하루 이틀 정도 지연되는 경우는 검사를 진행하다보면 흔히 있는 일일법하게 보일 수 있지만 재차 여러모로 수고를 감내해야는 어업인들의 사정을 들으면 그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동호항 멸치권현망수협에서 만난 선주 C씨는 “통상 성수기에 사고들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우리 선대의 경우 척당 10명의 선원 경비 등의 비용을 검사 때문에 계속 지출할 수밖에 없다”며, “달린 식구가 훨씬 많은 어선 일정에 검사원이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해상에 쳐 놓은 그물 때문에 주말 내내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 어업인들은 하는 수 없이 검사를 받지 않고 바다로 나가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수의 불편은 안중에도 없는 검사제도라며 선박검사원들에게 따가운 시선이 모이지만 검사원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통영지사 13명의 검사원이 매년 관할 내 어선만 6,500여척을 검사해야 하고 뿐만아니라 여객선, 수상레저보트 등 수백척들도 도맡아 검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수요·공급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민간 정비·수리소들을 활용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수협 수산경제연구원은 ‘어선검사제도 개선방향 연구보고서’를 통해 현재 어선검사시 검사원의 인력한계로 어선검사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입거 또는 상가 가능한 지역별 어선수리소에서 어선종합검사 및 중간검사 등을 가능토록 해 어업인의 시간·경제적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봤다. 이와 관련해 이진정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통영지사장은 “허위증빙 요소만 해소 된다면 업체 계측치에 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한 정비인증을 시행하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이 없지 않다”고 했다.

검사 당국도 대책 마련을 고심하며 어선검사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은 지난 2월 어선안전체계 구축 및 연구를 위한 전문가 기술자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어선검사 체계를 개편해 ‘전문업체 정비인정’ 및 ‘소형어선 자율검사제 도입’ 등을 통해 어선소유자들의 자체 안전관리 능력을 배양토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프로펠라 정비 공장
프로펠라 정비 공장

“멀쩡한 엔진 분해 중단해야”

철공단지 주변 동호항에는 비가 와서인지 조업을 나가지 않고 그물을 손질하거나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어업인들이 더러 보였다. 소규모 어선을 운영하는 어업인들이 모인 한 선박중개업체 사무실에서 현행 어선개방검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99톤 연안통발어선으로 사량도 근해에서 주로 조업을 한다는 D씨는 “우리와 같은 소규모 선박의 엔진개방검사를 당장 그만 둬야 한다”며, “개방하지 않으면 20년 이상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멀쩡한 엔진을 뜯는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상에서 기관의 잠재적인 고장요인을 사전에 예방할 목적으로 현행법상 모든 어선은 어선법령에 따라 엔진 요소 요소를 전부 해체하여 교환하거나 소재하는 기관개방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난 1987년 어선에 비싼 해상용 엔진 대용으로 트럭, 버스 등에 장착되는 육상용 엔진을 장착할 수 있도록 인정했는데 잇따라 엔진사고가 속출하자 5년 주기로(2004년까지) 엔진개방검사를 강제화했다. 이후 점차 엔진제작기술의 발전 수준을 고려해 현재 총톤수 10톤 미만 어선은 10년, 10톤 이상은 8년마다 개방검사를 받도록 규정돼 있다.

어업인들이 개방검사를 축소내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최근 대부분 소규모 어선에는 신뢰 높은 고속엔진이 탑재돼 굳이 의무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D씨는 “10년 내 사고로 불가피하게 엔진을 개방해야 될 경우가 20% 정도이고 나머지 80% 어선들은 그간 엔진을 한번도 개방하지 않는다”며, “본선은 360마력의 고속엔진을 탑재했는데 통상 RPM을 낮게 해서 운항하므로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호언했다. 그는 정박된 어선으로 가 시동을 걸고 계기판에 나오는 엔진사용시간을 보여줬다. 거의 매일 조업에 나서는 어업인들은 연료소모량이 기존보다 많거나, 부하가 차는 등 이상신호를 사전에 감지하고 자체적으로 검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게다가 정밀한 기술로 제작사에서 만든 엔진을 정비소가 개방해 엔진에 이상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어업인 E씨는 “실린더 블록까지 풀고 다시 붙이면 0.001mm 라도 틀어져 거기에서 오일 배기가스가 빠져 나갈 수 있다”며, “또한, 부품자체의 하자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우려했다. 그는 유사한 자동차 종합검사에서도 엔진기관의 전면개방은 없다고 강조했다.

수협 수산경제연구원의 ‘어선검사제도 개선방향 연구보고서’에서 최근 어선 기술의 발달로 기관 손상률이 매우 낮으므로 현행 개방검사를 지양하고 선체 안전검사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선박사고 조사에 따르면 기관손상의 경우 2017년 557건, 2018년 588건, 2019년 541건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근해어선이 100여척, 연안어선 300여척, 기타어선 100여척 비율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어선 중 연안어선이 80% 정도 인 점을 감안한다면 연안어선의 기관사고가 매우 저조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 엔진개방검사를 위해 600~ 1,000만원에 달하는 정비 검사비용을 부담 해야하는 점도 어업인들의 불만을 그치지 않게 한다. 경남도, 제주도 등 지자체별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런 혜택이 없는 영세한 연안어업인들은 대출을 해서 검사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엔진을 육상으로 양하하여 진행하는 10일 내외의 개방검사기간 동안은 속절없이 조업을 포기해야 한다.

엔진개방검사에 대한 싸늘한 어업인들의 시선을 방관할 수 없었던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은 기관개방검사 축소에 방점을 찍고 어선의 안전성과 편익을 동시에 잡을 수 있도록 팔을 걷어 부쳤다.

소규모 어선을 운영하는 어업인들
소규모 어선을 운영하는 어업인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은 2018년부터 어선기관개방검사 적합성 검토협의회를 운영해 현 제도에 대한 적합성검토, 기관성능 및 어업현실 등을 고려한 합리적인 기관개방검사 기준 마련을 위해 지속 경주하고 있다. 공단은 수차례 회의를 거듭하여 최근 5톤 미만의 어선에 대한 비개방정밀검사 제도(안)에 대한 큰 줄기를 잡았다. 구체적으로 어선의 기관에 대해 실린더 내 압력계측, 내시경을 통한 연소실 검사 등을 활용할 계획이며, 이상없을시 일정기간 개방검사를 유예시켜줄 방침이다.

어선 실정에 맞는 안전하고 실효성있는 어선검사의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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