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업계 행정처분의 명암 下 : 그들은 왜 서부 아프리카 어장을 포기해야 했나
원양어업계 행정처분의 명암 下 : 그들은 왜 서부 아프리카 어장을 포기해야 했나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0.08.11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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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선사 구조조정 뒤에 중국어선이 어장 장악

[현대해양] 대한민국 원양산업 역사상 가장 뼈아픈 순간은 언제일까? 많은 이들이 ‘2015년 대서양 트롤업계 구조조정’의 순간을 꼽는다. 왜냐하면 서부아프리카(서아프리카) 어장은 우리나라 원양 트롤의 역사가 시작된 곳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어장을 포기했으며, 우리가 포기한 어장을 중국을 비롯한 후발국 원양선사들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어장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는 전략을 선택했다면 여전히 우리 원양어선은 국민들이 좋아하는 생선을 어획해 국내로 들여오거나 값진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원양어업어장도(서부아프리카). 2019. 5월 현재. 해양수산부 제공

스스로 포기한 어장엔 중국어선이 득실

서부아프리카 어장 철수의 순간은 과도한 행정처분으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카뮬라) 수역에서 특정 자국기업을 조업할 수 없게 만들어 어획 쿼터를 스스로 포기한 사례(현대해양 7월호 '끊이지 않는 카뮬라 논란'기사 참조)보다 더 뼈아픈 순간이었음을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다. 서부아프리카 어장 포기의 순간에도 카뮬라 수역, 즉 남극해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행정력이 강하게 작용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서부아프리카는 누구보다도 먼저 해양수산부가 그 중요성을 인정했던 곳이다. 해수부는 2013년 10월 “서부 아프리카 해역은 연간 6만여 톤의 수산물 생산이 이뤄지는 곳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선호하는 민어, 조기 등이 잡히는 중요한 어장이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은 황다랑어 등 참치류 조업이 시작돼 식량자원 확보 차원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요충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중국은 이곳에 막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지원해 연안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U도 연안국들과의 양자협상을 통해 합법적 조업권을 획득하는 한편, 조업 관리·감독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방법으로 연안국 해양수산자원을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아프리카 서부 연안국들과 해양수산협력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2013년 10월 30일자 해수부 보도자료다. 이 보도자료에서 해수부는 “2013년 9월 30일 문을 연 라스팔마스 ‘한국-스페인 해양수산협력센터’의 본격적인 활동에 맞춰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연안국들과의 해양수산 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2018년 해양수산부(당시 장관 김영춘)가 발간한 원양산업 60년사(‘원양산업 60년 발전사’)에 따르면 서부아프리카 어장은 1966년 5월 한국수산개발공사가 이태리·프랑스 어업차관으로 도입한 제601 강화호를 이용해 라스팔마스 근해에서의 시험 조업을 한 곳이다. 이후, 민간 트롤 어선 7척이 이 어장에 출어함으로써 대서양 트롤어업이 시작됐다. 그리고 불과 3년 후인 1970년에는 국적어선이 95척에 이를 만큼 라스팔마스를 위시한 서부아프리카는 태극기 휘날리는 국적 원양선사들에 의해 대서양 트롤시대가 열렸던 곳이다.

서부아프리카 어장뿐만 아니라 원양어업, 원양산업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은 역대 어느 정부 정권을 떠나 부정된 적이 없었다. 2018년 ‘원양산업 60년 발전사’를 발간한 김영춘 당시 해수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그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김 장관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파독광부나 간호사를 손꼽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선원들이 낯선 대양에 나아가 때로는 혹한에, 때로는 거친 파도에 목숨을 걸었다. 온몸을 뒤덮는 차가운 파도와 싸우며 이들이 키워낸 것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며 원양어업인들을 치켜세웠다.

원양어업은 6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공헌해온 것은 물론이고 연근해어업과 함께 수산업의 양대 축으로서 국민들의 중요한 수산(동물성)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산업기반이 미미했던 1960~1970년대에 외화획득을 통해 경제 발전의 초석을 쌓았던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이처럼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원양어업을 이끌었던 원양선사들이 왜 서부아프리카에서 쫓겨나다시피 철수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다.

서아프리카감척어선
서아프리카 감척어선

근본 원인제거?

서부아프리카 어장에서 생산된 주요 어종은 내수에 중요한 조기, 서대, 민어 등으로 생산량은 6만 톤에 달했다. 그 중 4만5,000톤 가량이 국내로 반입됐다. 우리나라는 2015년 구조조정 전까지 78척의 원양어선이 앙골라, 가봉, 기니, 기니비사우, 시에라리온 등의 서아프리카 연안에서 조업을 하며 매년 원양어업 총생산량의 23.5%(10만 톤)를 이 지역에서 확보해 국내로 반입하고 있었다.

홍현표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글로벌수산연구실장은 2012년 한 수산전문지 기고문에서 “국민들의 수산물 내수소비 물량 상당 부분 연근해 어획물과 국내양식 생산물에 의존하고 있으나 어종별로 국내 수급이 불안정할 때는 아프리카가 매우 유용한 수산물 공급처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아프리카는 우리 국민의 식량 공급을 위한 또 하나의 예비적 어장이 되고 있다. 더구나 국내 수산물 공급이 한계에 도달하고 태평양 연안국의 자원 자국화 추세가 강화되면서 아프리카 어장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고 그 중요성을 알린 바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연안국들과 해양수산 양해각서(MOU) 체결을 추진하는 등 전반에 걸친 협력체계 구축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던 당시 해수부 측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해수부는 약속 이행은커녕 반대로 원양선사를 옥죄는 구조조정과 어장 철수를 강요했던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IUU(Illegal, Unreported and Unregulated; 불법·비보고·비규제)어업 때문이었다고 해수부 관계자는 설명한다. 우리나라는 서부아프리카 일대에서 이뤄진 IUU어업으로 2013년 EU(유럽연합), 미국 등으로부터 예비IUU어업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해수부가 원양선사들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던 것. 이는 EU의 압력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어장에서 조업하는 유럽 국가들의 견제가 심했던 것. 우리나라의 트롤어선들은 아프리카 연근해 12해리 구역까지 들어가 조기, 민어 등을 잡았는데 이것이 EU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이다.

환경정의재단(EJF) 등 국제환경단체와 EU측에서는 이를 IUU어업으로 적시하면서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EU측에서는 서부아프리카 어장의 불법어업을 문제삼아 IUU어업국에 지정하겠다고 압력을 넣었다.

우리 정부는 EU로부터 지적받은 모든 사항들을 검토해 우리 원양어선의 IUU어업을 통제하기 위한 정책적·기술적 수단을 갖추기 시작했고, 결국 원양산업발전법을 개정해 IUU어업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FMC(조업감시센터)를 통한 국내 원양어선의 모니터링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를 토대로 2015년 4월 21일 예비IUU어업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서부아프리카 트롤 선박 구조조정은 그 이후 실시됐다.

 

IUU지정 해지 이후 구조조정 강행

감척원양어선
서아프리카 감척 원양어선

해수부는 2015년 기니, 기니비사우 및 시에라리온 등 서부아프리카 수역에서 조업하고 있는 원양어선을 대상으로 ‘서아프리카 원양어선 감척사업’을 추진했다. 이 때 해수부 방침은 서부아프리카 수역에서 조업하는 원양어선 ‘모두 철수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때 99억원의 예산이 투입됐으며, 2015년 1차(3월16~20일), 2차(10월6일~13일)에 걸친 사업을 통해 감척을 완료했다. 감척 직전인 2014년말 기준 서아프리카 원양어선 선사는 총 18개사 45척이 있었으나 신청 선박 중 17척이 감척대상에 선정돼 구조조정되고 나머지사는 폐선, 폐업 등의 절차를 거쳐 결국 2개사 3척만 남게 됐다. 이마저도 불법어업과 관련 없다고 끝까지 항변한 2개사만 남을 수 있었던 것.

그러나 그나마도 최근 1개사가 열악한 환경에 조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휴업 상태에 있어 1개사 1척만 서부아프리카 어장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65년 어장 개척 이후 1975년 최대 112척까지 증가했던 서부아프리카 트롤어선수는 35년 만에 1척까지 줄어 사실상 전멸상태가 된 것이다. 서부아프리카 어장 철수로 인해 한 때 850척이었던 원양어선이 지금은 전체 통틀어 250여 척으로 줄어드는 등 원양산업은 크게 위축돼 활력을 잃고 존립기반 마저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어렵게 개척한 해외어장을 왜 상실하게 됐을까? 원양업계 한 관계자는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돼 서부아프리카 배를 모두 철수시켜야 한다고 해서 감척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선사들의 불만이 많았지만 원양선사들이 불법을 저지르는 원흉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있었기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정부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015년 당시 구조조정 방침을 설명하기 위해 원양산업협회를 찾았던 해수부 원양산업과 담당자에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되어도 어쩔 수 없다. 감척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더 강하게 따지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그 때 깊게 관여했던 해수부 고위 관료는 “당시 분위기로서는 감척 밖에 없었다” 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대신 보상해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당시 원양산업과에서 감척해야 된다고 예산을 받아달라고 해 청와대 경제수석실까지 가서 사정해서 예산을 배정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설명도 업계와 차이가 있다. 원양산업협회 관계자는 “당시 해수부에서 감척을 강행하려고 해 보상이라도 제대로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감척예산으로 240억원 책정을 요청했는데 99억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도 늦게 나와 예산이 집행되기도 전에 회사가 도산하거나 까다로운 감척대상 선정조건 때문에 보상대상에 들어가지 못한 선박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 해본 결과 당시 원양업계 원로가 국회의원 인맥을 동원해 감척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수부 발간 ‘원양발전 60년사’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당시 업계의 감척사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감척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선박들은 향후 조정관세를 폐지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감척사업 건의가 받아들여지고 예산을 확보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대부분의 선사들은 변변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원양산업협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감척 예산으로 240억원을 책정했지만 기재부에서 한 푼도 반영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원양산업협회가 국회를 통한 예산 반영 노력을 기울인 끝에 99억원이라도 책정될 수 있었다”라고.

또 ‘원양산업발전 60년사’ 기록에 따르면 이 때 어선 한 척당 감척 지원금은 5~7억원 정도였는데 사실상 고철 비용을 주는 셈이었지만 그것만이라도 지원받기 위해서는 선박 국적을 말소시켜야 하고 담보가 잡힌 게 없어야만 했다. 그런데 담보금이 지원금보다 큰 경우 감척 보상금을 받을 수가 없었다. 충분한 예산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국 EU의 예비IUU어업국 지정 해제 이후 아프리카 주변 어장과 인도네시아 어장 조업선 등 70여 척이 감척됐다. 이로 인한 연간 7만톤에 이르는 생산 감소는 물론 대부분 회사가 도산 또는 폐업처리됐다. 결국 대서양 서부아프리카 트롤어선은 2개사 3척만 남았다. 남은 선사는 끝까지 구조조정에 반발했던 선사였다. 반발했던 한 선사 관계자는 “당시 해수부 직원이 강하게 어장 철수를 요구했는데 ‘불법어업을 하지도 않는데 왜 배를 없애야 하느냐’고 끝까지 따져 버틸 수 있었다. 많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서부아프리카 어장 철수를 강하게 밀어부친 건 누구였을까? 당시 해수부 원양산업과장은 “이번 서아프리카 원양어선 감척사업은 그간 정부가 추진해 왔던 IUU어업 근절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 서아프리카 수역 불법어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공공연하게 구조조정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원양산업발전법을 개정해 IUU어업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FMC(조업감시센터)를 통한 국내 원양어선의 모니터링체계를 구축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2015년 4월 21일 예비IUU어업국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서부아프리카 트롤어선 구조조정 이후 지금까지 두고두고 말이 많다. 한 원양업계 관계자는 “원양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경제성장기에 원양업계가 외화벌이와 국민들의 안정적인 수산식량 확보에 기여했던 공로를 잊고 잠재적 범죄인 취급을 했다”고 정부를 원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불법어업 자체는 잘못이지만 트롤선사들이 당초 대서양으로 이동하게 된 것도 새로운 어장을 개척하라는 정부의 권고에 따른 것인데 이제 와서 ‘나라망신을 시켰다’며 모든 것이 원양업계만의 잘못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며 “나라가 어려울 때 기여했던 원양업계의 공로를 생각해서라도 대서양 트롤선사들의 준법조업과 이를 위한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서아프리카 원양어선 허가 및 조업 현황(2014년, 구조조정 직전)
서아프리카 원양어선 허가 및 조업 현황(2014년, 구조조정 직전)

 

“모두 철수하라”

당시 감척을 감행해야 했던 한 선주는 “해수부 공무원 두 명이 구조조정 설명을 하기 위해 라마팔마스에 왔는데 감척에 참여하지 않는 선박은 향후 개별입어를 불허하고 2016년부터 민어조정관세를 폐지한다며 감척을 해야만 하는 분위기로 몰아갔다”고 회고했다. 그는 “별 방법이 없었다. 정부에서 자꾸 압박을 해오고 입어환경은 나빠지고, 대안 없이 철수만 하라고 하는데 당시로서는 어디 호소할 때도 없었다”고 애통해 했다.

무엇보다 IUU어업 차단을 이유로 우리 원양어선이 철수한 서부아프리카 어장에 중국 원양어선들이 수백 척 들어와 조업하고 있는데 대한 비판은 거세다. ‘우리는 안 되고 중국은 되느냐’는 것이다. 중국이 어업을 할 수 있으면 우리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이에 대해 장경남 전 원양산업협회 회장은 2017년 현대해양과의 인터뷰에서 “한 마디로 비애를 느낀다. 결국 중국과의 국력의 차이로 우리나라 원양선사들이 희생양이 되고 말았던 셈 아니냐! 우리 정부와 업계가 좀 더 기민하게 대처를 잘 했더라면 어땠을까? 서부아프리카 연안국들과 입어협정이라도 맺었으면 어땠을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고 술회했다. 그는 “IUU어업을 정당화 할 수는 없지만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 정부가 EU측과 IUU어업 규제 협상때 문제가 됐던 서부아프리카 어장 철수로 한정짓지 않고 IUU어업 우려가 없는 전체 원양어선을 대상으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는 점”이라고 매우 아쉬워 했다.

애당초 EU가 우리나라 원양어선들을 겨냥해 IUU어업 규제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주요 조업국 중 하나인 스페인이 우리나라 원양어선들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IUU어업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우리 업계는 보고 있다. 거기에 원천적으로 원인을 제거하겠다는 정부와 담당자 코드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업계는 해석하는 분위기다.

이런 사실에 대해 원양업계 한 관계자는 “원양선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고 갔다. 한 번 실수했으니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감금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 불법조업하지 않고 준법조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 게 정부가 할 일 아닌가?” 하고 어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구더기 무서우니 장을 담그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원양업계를 잘 아는 한 교수는 “서아프리카에서 트롤이 철수한 게 뼈아프다. 원양어업의 가장 큰 뿌리인데 앞뒤를 보고 정리를 했어야 했다. 구조조정할 때 개별적으로 하고 있는 트롤을 그룹핑(Grouping)해서 생산, 가공 등 역할을 분담해 산업화 하는 등 여러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배를 그냥 너무 쉽게 없애버렸다”고 꼬집었다.

 

일본과 대조적

그럼 해외의 사례는 어떨까. 우리나라와 달리 2008년 9월 EU의 IUU 통제법 채택 이후 일본을 비롯한 국제정서 변화에 심각성을 인식한 여러 국가들은 현장 교육과 홍보 등 산업계 종사자들의 IUU 어업예방에 대한 인식수준을 높일 수 있는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등 예방조치를 서둘러 자국 어업인 보호와 국제규범 준수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일본의 경우 EU가 IUU어업규칙을 발표하자 그 이듬해인 2009년에 이에 대비하는 조치를 즉각 취했다. 도도부현(都道部縣)까지 EU의 IUU어업규칙 담당 부(部)·국(局) 연락처를 작성하고 EU의 IUU 어업규칙의 개요 및 실시에 대한 교육 및 홍보자료를 제작했으며, EU의 조치에 대한 각종 정보를 수산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관련 종사자들에게 제공했다.

반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대응조치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평가다. 특히 산업 현장 종사자와 어업인들에 대한 교육 홍보와 같은 조치는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2014년에서야 처음으로 업계 간담회를 열었다. 일본은 이미 2009년에 즉각적인 조치들을 실시했다. 우리나라는 EU의 IUU통제법 채택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비하는 주변국 및 국제흐름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경남 전 원양산업협회장은 2018년 회장 퇴임 직후 낸 책에서 “사전에 우리도 정부가 이렇게 신속한 대응체제를 마련하고 국제적인 환경변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제공했었더라면 IUU어업으로 인한 사태가 서부아프리카 어장 상실과 전체 업계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이어진 비극적인 결말은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애석해했다.

해수부 관계자도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담당자에게 왜 그랬냐고(왜 무리하게 철수시켰냐고) 물으려고 하다가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해야 하니 물어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원양업계 관계자는 “불법어업을 근본적으로 퇴출한다는 취지로 감행한 서부아프리카 트롤어선 감척과 어장 포기는 대한민국 원양산업을 후퇴시킨 역사상 가장 뼈아픈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서양 트롤어선
대서양 트롤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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