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자국이 곧 길이 된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내 발자국이 곧 길이 된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3.05.09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양경찰청 성과평가팀장 박경순 경정
▲ 박경순 해양경찰청 성과평가팀장. ⓒ박종면

대한민국 해양경찰이 창설 60주년을 맞았다. 그 60년 역사 속 첫 여경. 그 주인공은 바로 해양경찰청 성과평가팀장 박경순 경정이다. 1986년 5월 해양경찰청 순경 공채시험에 합격한 뒤 최초의 여성 경위, 경감, 경정 등등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 박 경정. 여느 여성처럼 박 경정 또한 10대를 문학소녀로 지냈다. 그 소녀가 경찰이 됐다. 그것도 바다를 지키는 해양경찰이! 

문학소녀와 경찰?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박 경정이 최근에 발표한 세 번째 시집 『바다에 남겨 놓은 것들』을 보면 이런 의아함 쯤이야 금방 날릴 수 있다.

명멸(明滅)하는 물비늘/차마 쳐다볼 수도 없는 찬란/ 난 그 한 가운데서 외국어선과 대치중이다/ 이 처연한 싸움 보이지 않는 끝 - ‘출항23: 한낮’ 중에서.

박 경정의 시집은 경비함정을 타고 불법 외국어선 단속 등 바다를 지키면서 경험한 해양경찰의 애환과 바다 사랑을 ‘출항’과 ‘입항’이라는 연작시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 경정의 시에서 약한 듯 강하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여경 이미지가 드러난다.

박 경정은 인천해양경찰서 경리계장과 수상레저계장을 거쳐 해양경찰학교 교수, 본청 운영지원과 복지반장, 태안해양경찰서 경비함정(1500t급) 부함장, 동해지방해양경찰청 경무계장을 지냈다. 지금은 해양경찰청 성과평가팀장으로 본청 및 전국 지방경찰청과 경찰서의 성과를 평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여성이 경찰, 그것도 해경이 되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라 바다를 좋아했고 국민에 봉사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경찰 제복도 멋있어 보였다. (웃음)

국내 최초의 여성 해양경찰관으로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 않았나?  

-내가 하는 일이 다 처음이고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경사 진급만 해도 최초의 여성 경사라고 했다. 인천해양경찰서 경리계장을 맡았을 때도 주위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우려도 많이 했지만 업무를 잘 수행했고, 다음에 1박 2일 출장이 잦은 수상레저계장을 맡았을 때도 ‘주부가 가능할까’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때도 아무 탈 없이 업무를 잘 수행하자 그 이후 수상레저계장은 주로 여자 후배들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내가 잘 해야 후배들이 잘 따라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그래서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을 걷는다는 생각으로 이정표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아이들이 어릴 때는 육아와 경찰일 두 가지를 같이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함정 근무 때는 높은 파고와 싸워야 하는 것과 승조원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동료나 부하직원들과의 관계는 어렵지 않았나? 

-나는 인복이 많다. 다들 잘 해주려고 해서 너무 고맙다. 힘든 건 없었다. 태안해경서 경비함정 부함장으로 근무할 때도 ‘부장님이 여자니까 우리가 더 잘 하자’라고 하면서 직원들이 일심 단결했고, 그 직원들과 정도 많이 들었다. 배를 타지 않는 지금도 “부장님 잘 지내세요?” 하면서 연락이 온다(부함장을 부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 박경순 경정은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나 인하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1991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했다. 근무 중 틈틈이 글을 써 「새는 앉아 또 하나의 詩를 쓰고」,「이제 창문 내는 일만 남았다」」,「 바다에 남겨 놓은 것들」 시집을 냈고 한국수필 신인상, 인천예총 예술상, 제24회 인천문학상, 자랑스러운 인하행정대상 등을 수상했다. 인천문인협회, 내항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박종면


말단 순경에서 경정까지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나? 

-남들보다 2배의 노력을 했다. 동해해경서 경무계장직을 맡았을 때도 그랬다. 청사관리는 생소한 업무라 아침 7시 이전에 출근해서 청사 순찰을 하며 지내곤 했다. 남과 똑같이 해서는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항상 2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다.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태안해경서에 근무하던 2010년에 대형 경비함정 해상종합훈련에서 우리 함정이 1위를 했다. 그리고 실제상황에서도 불법조업 중인 중국어선 18척을 나포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뿌듯한 것은 본청 복지반장으로 일할 때 2007년부터 3년 동안 맞벌이 직원을 위해 직장어린이집을 짓자고 제안해 예산을 확보하고 신축, 개원할 수 있도록 했다. 대기자가 줄을 설 정도로 반응이 좋다. 경찰공무원이 육아의 부담 없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하게 생각한다. 당시 참고할 만한 곳곳의 유사 시설 15군데를 찾아다닌다고 힘은 많이 들었지만 내가 제안해서 개원까지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지방청에도 어린이집이 생기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지금 성과평가팀에서 하는 일 또한 해양경찰의 존재이유 즉, 해양주권 수호와 국민의 해양 안전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정년까지 열심히 일해서 더 높은 지휘관이 되고 싶다. 여성이라고 쉽게 무임승차하고 싶지는 않다. 최초의 여경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일 잘하는 멋진 여경이 되고 싶다. 그렇게 열심히 공직을 마무리하면서 수필집을 내고 싶다. 바다와 함께 한 인생을 수필로 남기려고 한다.

<인천 = 박종면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