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치유산업 육성, 어디에 와있나
해양치유산업 육성, 어디에 와있나
  • 정해원 기자
  • 승인 2019.06.1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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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의·과학적 규명이 중요

[현대해양] 대한민국은 2017년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20년에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노인성질환과 만성질환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 부담이 날로 증가하는 가운데 힐링(Healing), 웰빙(Well-being), 웰니스(Wellness) 등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사회적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2014년에 제2차 해양관광진흥기본계획(2014년∼2023년)의 전략과제로 ‘휴식과 회복이 있는 행복한 바다관광’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세부 추진과제로 ‘해양치유관광 육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제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단어 ‘힐링’을 우리말로 옮기면 ‘치유’이다. 숲치유, 산림치유는 누구나 한두 번 들어봤을 법하지만 해양치유는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해양치유 개념을 국내에서 처음 공론화한 것은 2013년으로 알려져있다. 김영록 국회의원(현 전라남도 도지사)이 ‘해양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주최했고, 이 때 우리나라에 풍부한 해양 자원을 이용해 치료 목적의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완도군 해양치유산업과 이송현 과장은 “당시 완도는 인구 과소화와 고령화가 심해 지자체 소멸위기가 회자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해양헬스케어 산업을 군정시책으로 제안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국내 최초로 완도에서 해양치유산업 전담 조직이 생겼다. 지금도 ‘해양치유’란 말이 생소하지만 당시에는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많이 참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제2차 해양관광진흥기본계획’ 세부 추진 과제였던 ‘해양치유관광 육성’은 현재는 ‘해양치유산업 육성’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해양수산부 해양레저관광과 담당자는 “해양레저관광 활성화를 위한 4대 전략, 13개 추진과제 중 하나가 바로 해양치유산업 육성이다. 현재는 해양치유산업의 체계적인 육성을 위해 ‘해양치유자원의 관리 및 활용에 관한 법률’과 ‘해양레저관광 발전법' 제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해양치유산업, 왜 육성하는가?

그럼 해양치유산업 육성을 위한 법률 제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지난해 10월 국회 농해수위 황주홍 위원장(민주평화당, 전남 고흥군·보성군·장흥군·강진군)은 ‘해양치유자원의 관리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이 법률안에서 ‘해양치유’는 ‘「연안관리법」제2조 제1호에 따른 연안과 「해양수산발전 기본법」제3조 제1호에 따른 해양에서 이루어지는 체질 개선, 면역력 향상, 항노화 등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으로 정의하고 법률안 1조에서는 ‘이 법은 해양치유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에게 해양치유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는 등 국민의 건강증진과 복지 향상 및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해양치유산업 육성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 법률안은 올해 하반기 국회 통과를 목표로 관계자들이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양치유산업은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세부과제로 선정되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총 51억 원 규모의 해양치유 R&D(해양산업 활성화를 위한 해양치유 가능 자원 발굴 및 실용화 기반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연구 과제는 크게 두 가지로 해양치유 효과의 과학적 검증과 산업화 기반조성이다.

해양치유 효과의 과학적 검증과 관련해서는 고려대 의과대학 통합의학센터 이성재 교수가 단장을 맡은 해양치유산업연구단에서 진행 중이다.

한편, 산업화 기반 조성을 위한 정책, 법제화와 관련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서 진행하던 것을 올해는 농어촌공사가 한국해양대학교 산학협력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진행 중이다.

해수부 자료에 따르면, ‘해양치유’가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과 해양 강국은 자국 국민의 복지를 위한 방편으로 이미 100년 전부터 해양 자원을 이용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일은 북해 연안의 섬을 중심으로 해양치유시설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으며 시장 규모는 연간 45조, 고용인력만 4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까운 나라 일본도 해양치유산업이 크게 활성화되어 있으며, 프랑스와 독일 등 일부 국가는 보험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치유와 결합한 해양자원, 고부가가치 창출

해양치유산업이 가장 활성화된 독일의 경우 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리조트가 전국 350여 개 이상이나 된다.

심장질환, 신장요로질환, 근골격계질환, 호흡기질환, 피부질환 등 각각의 질환에 특화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리조트를 이용하는 ‘리조트 세라피(ResortTherapie)’가 보험급여 대상이 되어 국민들이 손쉽게 해양치유를 이용하고 있다.

의사는 △급성기 질환이나 중증질환자가 아닌 만성질환자로서 일정기간 휴양을 통한 치유가 필요한 자 △수술 후 퇴원해 귀가 전까지 일정 기간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회복을 요하는 자 △급성기 치료 후 일정 기간 재활이 필요한 자 등을 대상으로 ‘리조트 세라피’를 처방할 수 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 3주간 해양치유시설에 머무르며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프랑스 역시 해양요법을 대중적인 치료법으로 활용하며 사회보험으로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 내 해양요법시설은 83개 이상으로, 해양요법 전문기관 연합체인 ‘프랑스 탈라소(France Thalasso)’가 인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해양심층수를 활용한 탈라소 테라피가 발전했다. 일본 전역에 걸쳐 30여 개의 탈라소 테라피 시설이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되며 그중에서도 해양치유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역은 기후가 온난하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오키나와와 규슈 지역이다. 오키나와는 지역 대학과 민간 사업체가 중심이 되어 해양치유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도 인터넷 중독 예방 모델로서 해양헬스케어를 운영 중이며, 이스라엘은 요르단 접경지의 사해를 브랜드화 해 복합의료단지를 조성하고 해니(머드)와 소금을 수출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완도 해양치유산업 원년 선포식(좌), 해양치유 시범 프로그램 중 하나인 해수찜(우)
완도 해양치유산업 원년 선포식(좌), 해양치유 시범 프로그램 중 하나인 해수찜(우)

 

국내, 과학적 검증과 산업화 기반 조성 단계

국내 해양치유산업은 어느 단계에 와 있을까?

앞서 언급했다시피 국내 해양치유산업은 육성 초기 단계로 정책과 법률 정비 과정에 있다.

고려대 해양치유산업연구단 이성재 단장은 국내 해양치유산업을 육성을 위해서는 해양 자원의 치료 효과에 대한 의·과학적 규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독일의 경우 임상시험을 통한 해양 자원의 치료 효과 증명과 의료인에 의한 임상학적·위생학적 평가 등의 인증조건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해양치유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일종의 특수목적 의료기관인 해양치유리조트가 적정한 인증기준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김충곤 연구원 역시 “치유 효과를 확실히 규명하고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산업적 측면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치료 효과에 대한 충분한 규명 없이 사업을 추진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해양치유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해수부는 2017년 10월에 해양치유자원의 발굴과 해양치유산업 육성을 위한 동·서·남해안 4개 협력 지자체(경남 고성군, 경북 울진군, 전남 완도군, 충남 태안군)를 선정했다.

이 중 완도는 2016년부터 해양치유 전담팀을 설치하고 전략적으로 준비해왔다.

완도는 2017년 8월에 해양치유산업 기본계획을 확정해, 내년부터 총 320억 원이 투입되는 해양치유센터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전남대, 조선대, 고려대 3개 대학이 신지면 명사십리해수욕장 일원에 해양치유전문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준비 중인 걸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완도 해양치유 블루존 조성사업’으로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지역발전투자협약사업에 선정돼 약 180억 원의 재원을 확보한 바 있다. 지난 5월 3일에는 해양치유산업 원년을 선포하며 선도 지자체로서 입지를 굳히겠다는 입장이다. 신우철 완도군수는 “해양치유산업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어촌 경제를 활성화하는 한국의 미래 신성장 동력 산업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해양치유 블루존 조성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해양치유산업을 지자체 소멸 위기를 극복할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완도군은 국제해조류박람회를 3개년에 한번씩 개최하고, 선진 해양치유산업 정보를 얻기 위해 해양치유섬으로 유명한 독일의 노르더나이(Norderney)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아직 해양치유센터가 건립되기 전이지만 노르딕워킹(Nordic walking), 해변요가, 해수찜 등 해양치유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해양치유산업 주민 설명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한편, 태안군도 국도비 포함 34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남면 양잠리 일원에 ‘태안 해양치유시범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등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태안의 소금·염지하수·갯벌·해송·해변길 등 다양한 해양 치유자원을 활용해 해양, 휴양, 치유, 의학을 연계한 ‘해양헬스케어복합단지’를 조성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태안군은 해양수산부와의 적극적인 협업체계를 구축해 2020년 시범사업 착수를 목표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토지확보 등 행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나 재원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태안군청 전략사업단 송숙현 과장은 “2017년 협력지자체 공모에 선정됐지만 당초 예상만큼 원활하게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우선 법률 제정이 신속히 처리되어야 하고 최소한 내년부터라도 4개 협력 지자체가 동시에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정부의 재정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사업 진행의 어려움과 절실함을 토로했다.

경북 울진군과 경남 고성군 역시 해양치유산업 선도 협력 지자체로서 재원 확보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부, 선도 지자체에 확실한 지원 필요

해양치유산업과 관련해 기재부는 “선도 지자체의 사례를 신중히 살펴보고 사업의 지속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양치유산업과 관련한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는 해양치유산업에 거는 기대가 크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내어놓고 있다.

해양바이오연구기업이 국내에 거의 없는 상황에서 단지를 먼저 조성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관계자의 견해도 나왔다. 많은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더 신중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해양치유산업과 관련한 사업 제안과 문의가 계속 들어오지만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실정이다. 지자체 내에서도 산학연이 협력해 자생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역과 산업에 대한 장기적 안목의 고민도 없이 단기적이고 천편일률적으로 사업을 계획·추진할 경우 차별화를 이루지 못해 공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해양치유산업은 이제 진입단계에 와 있다. 선도 지자체가 성공적인 사례를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해양 자원을 가진 지자체 모두가 해양치유산업을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지, 자생력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인프라 구축 등 해양치유산업 기반조성을 위한 중앙 정부의 노력과 맞물려, 지자체가 산업에 대한 자생력을 갖출 때이다.

 

태안 해양치유시범센터 조감도(좌), 해양치유 시범 프로그램 중 노르딕워킹(우)
태안 해양치유시범센터 조감도(좌), 해양치유 시범 프로그램 중 노르딕워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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