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기업의 유동성 위기 해소에 신속히 나서야
해운기업의 유동성 위기 해소에 신속히 나서야
  • 김우호 KMI 해운·물류연구본부장
  • 승인 2013.03.1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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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의 비우량 회사채 기피현상 심화로 해운회사 자금조달 고초

대형 해운사 유동성 확보 비상

대한해운과 STX팬오션이 시장에 매물로 나와 새 주인을 기다리는 상황에 우리나라 최대 해운기업인 한진해운, 현대상선도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언론 발표에 따르면, 양사 모두 2012년도 실적이 2년 연속 큰 폭의 적자로 나타났다. 한진해운은 비록 전년도(8,239억 원) 보다는 줄었으나 여전히 6,38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현대상선은 오히려 전년(5,343억 원)보다 늘어난 9,989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영업 손실이 계속되고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이들 기업은 금년 상반기에 상환해야 할 자금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분기에는 한진해운, 현대상선, STX팬오션이 각각 약 2,000억 원의 회사채가 만기도래하고 2분기에는 한진해운이 3,600억 원, 현대상선이 2,000억 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문제는 2010년 말 3조 원에 달했던 이들 3사의 현금성자산이 작년 9월 기준으로는 1조 7천억 원으로 크게 줄어 자금 확보가 매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3사를 포함한 국내 증시 상장 6개 해운사의 현금성자산이 빚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7년 말에는 현금성자산이 단기성차입금의 300% 수준이었지만 작년 6월에는 44%로 떨어졌다. 대략 3개월 내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을 모두 합쳐 봐야 빚을 갚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지난 해 9월 웅진홀딩스 법정관리 이후 금융시장에서 A등급 회사채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고 금년 들어서도 신용등급이 낮거나 위험이 큰 업종의 회사채 기피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4년 5개월간의 장기 해운시황 침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아 해운기업의 회사채가 시장에서 쉽게 소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년 들어 컨테이너선과 건화물선 시장에 대한 전망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연초부터 운임이 오른 컨테이너선 시장의 경우 계선과 감속운항 등 선사들의 전략적 노력으로 수급 상황은 호전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건화물선 시장의 경우는 BDI 기준으로 지난 해 12월 초 1000 포인트 이하로 떨어진 후 아직까지 회복되지 못하고 최근에는 750 포인트 수준을 횡보하고 있다. 하반기부터 선박의 신규공급이 줄어들면서 시황하락은 멈추고 저점을 다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운임회복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건화물선 부문에서 큰 폭의 영업이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003년 150 달러수준의 연료유가격이 최근 600달러 수준까지 인상돼 선사의 비용부담이 4배나 늘어나 영업이익을 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나마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컨테이너 부문 매출액이 60~70%에 달해 컨테이너선 시황 개선 효과가 크게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어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해운시황이 회복되어 산업위험이 해소되는 시점까지는 경색된 회사채 투자 분위기를 해소할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하반기에도 3개 해운사의 회사채 만기가 각각 2~3,000억 원씩 총 7,000억 원의 상환요구가 예정돼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의 냉랭한 회사채 투자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면 정상적인 기업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공적 금융기관이 나서서 해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해운시장의 경기변동성을 고려할 때, 현재와 같은 장기 침체의 막바지에 투자하여 비용 경쟁력을 높여 시황회복 시에 수익을 극대화 해나가는 전략이 해운경영의 기본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 해운기업은 이러한 기초적인 상식조차 이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즉 새로운 투자는커녕 기업을 연명하기도 힘든 형편이다. 한국해운이 위기이후 변화된 세계해운 패러다임에 적응하고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성장하기 위한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운영자금(working capital) 부족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금융시장조차 양극화된 상황에서는 공적 금융기관이 나서서 긴급 수혈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해운기업은 서비스 기업으로서 고객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이것은 이미 우리 해운기업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호황기에 보다 나은 수익을 쫒아 화주와의 약속을 저버려 불황기에 고객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업계의 지속적 노력으로 외형적으로는 해소된 것으로 보이지만 무너진 신뢰를 내면까지 온전히 회복하는 데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대표기업이 위기 상황에 처한다면 한국 해운산업의 브랜드 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 있으며 이 틈을 이용해 글로벌 경쟁기업이 점유율을 높여갈 경우 지금과 같은 한국해운의 명성을 다시 회복하는 데는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정책적 관심이 요구될 것이다. 위기 이후 글로벌 해운시장의 판도변화까지 짚어보는 보다 긴 시간의 스펙트럼에서 정책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적 금융기관이 현재의 해운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는데 신속히 나서야 한다. 전반적인 금융시장 상황과 기업의 여건에 따라 다양한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첫째, 사업 및 수익 구조에 문제가 없음에도 일시적인 금융경색으로 자금조달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회사채 신속인수제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2001년 하이닉스 유동성 지원을 위해 1년간 한시적으로 도입한 경험이 있다. 기업이 사모사채를 발행하면 산업은행이 이를 신속히 사들여 채무상환에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인수한 채권의 70%를 담보로 해서 프라이머리 CBO나 대출채권담보부증권 형태로 채권형 펀드에 팔아 유동화 했고, 나머지 20%는 채권은행들에게 인수시켜 10%만 보유함으로써 리스크를 분산시켰다1). 지원 대상기업 조건과 기준을 설정하여 추진하는 경우 해운기업 지원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로 인식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정부는 소규모 지원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둘째, 담보부사채 발행을 검토해 볼 수 있다. 담보부사채신탁법에 의거하여 사채발행을 추진하는 것이며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시장에서는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다시 발행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기업신용도보다 높은 신용으로 사채를 발행할 수 있어 조달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3년 이상 5~7년의 장기채권 발행이 가능하여 장기 자금조달이 가능케 된다. 다만 물적 담보물에 대한 제한이 매우 엄격하고, 현재 해운사의 여건상 담보물 제공이 쉽지 않을 것이므로 실현가능한 기업은 제한적이다.

셋째, 하이일드펀드에 세제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현재 전반적으로 산업위험도가 높은 해운기업의 비우량 채권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즉, 비우량 채권을 일정 수준(예10%) 이상 편입한 펀드가입자에 분리과세 등 혜택을 지원하게 되면 해운기업 회사채 발행에 관심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채권담보부증권(프라이머리 CBO) 발행을 지원하는 방안이 있다. 실제로 대형 및 중소 해운기업이 P-CBO를 추진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고 발행에 실패했다. 이는 같은 해운기업 간 공동체 의식이 필요한 방안이다.

해운보증기금을 조속히 설치해야 한다.

해운보증기금이 새 정부 인수위원회가 제안한 140개 국정과제에 포함돼 신속히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입법과 운영조직이 필요한 만큼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가능한 한 서둘러 추진하여 위기에 처한 기업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는 해운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금융시장에 긍정적 신호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해운업에 특화한 해운보증기금의 경우 기업들이 함께 책임과 부담을 가져야 원활한 정부지원이 가능하다. 정부의 일방적 지원 보다는 정부와 업계가 공동의 책임과 노력으로 함께해야 추진속도가 붙고 효과도 커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미 법안이 계류 중인 한국선박금융공사의 경우에도 해운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매우 중요한 인프라가 될 것이다. 다만, 선박금융공사는 조선소를 위한 제작금융에 자금과 관심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고 또한 업종이 확대될 가능성도 커 자칫 해운회사 대상 금융지원이 소외될 우려가 있다. 또한 유사기능을 맡고 있는 기존 금융기관과의 역할 분담이 보다 분명하게 결정돼야 할 것이며, 해운금융시장에서 민간을 위축시키는 구축효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세계일류 한국해운을 목표로 시스템을 재정비할 때 이다.

위기 이후 세계해운의 경쟁 목표가 수익확대에서 비용절감으로 바뀌었다. 저성장 세계해운 시대가 구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수익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지 않은 해운사는 버티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해운산업 전체가 고효율 저비용 구조로 혁신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견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해운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먼저 고용친화적인 해사클러스터를 조성해야 한다. 기술발전으로 선박 규모가 커지는 만큼 선박 운항인력이 비례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해운업 성장을 일자리 창출로 연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우선은 서비스업의 특성을 살려 선박관리업과 관련 서비스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률, 보험, 금융, 해운중개업, 교육 등 비즈니스서비스업을 클러스터로 조성하여 관련 일자리를 보존하고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육상 일자리가 확대되면 해기사의 해상근무 후 취업 가능성이 높아져 해기인력의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전문지식이 축적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면 선박투자와 운항에서 리스크 관리 역량이 축적되고 해운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선대 확충은 또한 육상 및 해상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는 고용친화적 선순환 사이클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아시아 역내시장에서 경쟁력이 강한 중소 및 중견해운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해운업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업무 영역 중첩이 상대적으로 작아 네트워크를 상호 활용하여 동반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이러한 중소 중견기업은 최근 고금리, 고유가, 고선가의 3고에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들 기업에게는 단편적인 지원보다는 성장 애로요인과 걸림돌을 조사 분석하여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해운경기의 순환변동성을 체득하지 않으면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에 현혹되기 쉬운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노하우를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업을 이어 해운투자를 하고 있는 그리스 선주와 같이 오랜 기간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비용 산업구조를 만들어 가기 위한 산업구조적 혁신 노력이 필요하다. 선박의 투자와 운항을 분리하여 각각 전문화 해 나감으로써 합리적 의사결정의 가능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해운회사는 자산투자와 영업을 위한 의사 결정의 전문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변동에 민감한 해운업에서 자산투자는 타이밍이 중요하고 영업은 고객과의 신뢰가 중요하다. 화주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선박을 매각했다면 이는 단기적으로는 합리적인 것 같으나 영속기업이라면 반드시 합리적 의사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러한 의사결정이 덫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객과의 신뢰를 유지하며 투자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기업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역할이 구분된 2부류의 기업이 각각의 전문성을 축적해 간다면 보다 효율적인 산업구조가 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투자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김우호 해운·물류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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