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미역 그리고 성게 알
김, 미역 그리고 성게 알
  • 김인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전 선장)
  • 승인 2019.03.1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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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전 선장)
▲ 김인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전 선장)

[현대해양] 동해안의 어촌에서 어민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선을 소유하는 선주들은 바다의 고기를 잡아 수입을 올린다. 그 선박에 승선하는 선원들은 근로의 대가로 봉급을 받는다. 오징어 건조와 같이 건조작업을 통하여 수입을 얻기도 한다.

이외에도 고기가 아닌 바다에서 산출되는 다른 해초류 등으로 고정된 수입을 얻는 방법도 있다. 김과 미역 그리고 성게 알의 상품화가 그 좋은 예이다.

겨울이 되면 동네 아낙들은 바닷가 바위로 나간다. 바위에 가면 검은 색 김이 자라나있다. 이것을 철로 된 도구로 긁어 낸다. 몇 시간이 걸려 이 바위 저 바위를 이동하면서 상당한 량의 김을 모은다. 집에 와서 물위에 놓은 발위에 김을 담그고 돌을 걸러낸다. 그런 다음 발위에 사각형 상자를 두고 김을 가늘게 펴서 놓는다. 이렇게 몇 일이 지나면 상품으로 유통되는 김이 만들어진다.

김은 파래와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래를 넣게 되면 김의 상품성이 떨어지게 된다. 1970년대 당시 김은 고급식품으로서 소금을 친 김과 이밥(쌀밥)을 먹을 수 있다면 호강하는 식사가 됐다.

지난 2017년 우리나라는 김수출 5억 달러를 달성하였다. 물론 양식김이 가능해지면서부터 이와 같은 김 수출이 가능 해졌다. 전통적인 돌김 생산이 그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미역은 동해안 영덕 지방의 특산품 중의 하나이다. 고향의 어머니는 5월이 되면 돌미역 한오리를 꼭 우리 집으로 보내주신다. 생일 국을 끓여 먹으라고 하면서.

돌미역은 마음대로 채취를 하지 못한다. 어촌계가 짬이라는 것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는데, 해마다 입찰을 하여 사업자가 짬을 임대하게 되면 그 사람만이 바위에 붙은 미역을 채취할 권리를 가진다. 짬에 있는 미역은 따뜻한 봄날인 4월에 채취하게 된다. 채취권자가 사람을 동원해서 물아래 바위에 자란 미역을 따서 작은 배에 가득 싣고 오게 된다.

동네 아낙들은 발에 미역을 말리는 작업에 동원된다. 대나무로 만든 발에 1미터 길이에 폭 40센티미터 크기의 미역 오리를 만든다. 몇일 지나면 완전히 건조되어 상품화된다. 돌미역은 산모의 산후조리에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높은 파도가 치게 되면 미역이 자연스럽게 바위에서 떨어져 모래사장에 밀려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무주물이므로 먼저 보는 자가 임자가 된다. 그래서 바닷가에서는 새벽같이 일어나 모래사장에 뭔가 떠내려 온 것이 없는지 살피는 아낙네들도 상당하다.

이런 자연산 돌미역에 양식미역이 도전장을 내 민지도 오래되었다. 사람에 따라서 양식미역을 좋아하는 이도 있고 돌미역을 좋아하는 이도 있다. 동해안의 경우 돌미역이 선호되어 양식미역보다 더 비싸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집에 가면 해녀가 잡아온 성게를 칼로 중간을 잘라서 노란 알을 꺼내는 작업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어디서 성게를 그렇게 많이 잡아오는지 큰 통에 가득 채운다. 다음 과정에서는 술 냄새가 났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오랜 기간 보관을 위하여 약품처리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몇일 뒤 가보면 큰 통이 보이지 않는데 일본으로 보냈다고 했다. 친구네 집이 성게알을 상품화하여 일본에 수출하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워낙 고가의 귀한 것이라서 한점 얻어 먹기도 어려웠다. 한번씩 바닷가에서 성게를 잡아 먹게 되면 달큰한 것이 참 맛있었다. 성년이 돼 일식당에 가면 식사에 조금 나오는 성게를 먹을 때 마다 그 친구네가  생각나곤 했다.

그런데, 몇 년 전 고향 집에 갔더니 성게가 많이 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출이 안되어 해녀들이 잡아온 성게를 직접까서 작은 통에 넣어 판매 한다는 것이었다. 해녀들이 성게 작업을 하는 장소를 찾아가보았다. 성게 알이 가득한 작은 통이  2만원밖에 하지 않는다. 성인 밥그릇으로 두 개를 가득 채울 분량이다. 한통을 사서 집에 와서 미역국에 넣어서 먹기도 하고, 밥에 비벼먹기도 했다. 참 맛이 있었다. 우리 국내 소비자들이 식탁에서 쉽게 성게 알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성게 알 수출이 부진하게 된 점은 아쉽기도 하다. 이제는 여름에 고향에 가서 성게 알을 몇 통씩 집으로 사오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가면 나이가 들고 가족이나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후배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렇지만, 동해 바닷가에서는 김, 미역 그리고 성게 알이 세월의 흐름에 상관없이 여전히 산출되어 주민들에게는 수확의 기쁨을, 국민들에게는 영양을 제공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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