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⑥ 누드비치 탐방기
[하동현의 양망일기] ⑥ 누드비치 탐방기
  • 하동현 작가
  • 승인 2018.08.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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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1 물놀이가 생각나는 찌는 듯한 여름 날씨다. 배 탈때 들렀던 ‘누드 비치(Nude beach)’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바다와 인문학’ 강의, 가뭄에 콩 나듯이 바다를 알리는 그런 자리에 초빙되었을 때 요긴하게 써먹는다. 특히 젊은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때 집중도를 높이는데 영양가 만점이다.

사족부터 하나 달고 시작해야 된다. 몇 년 전에 멋모르고 ‘다단계 회사’에서 떠들어 댄 적이 있었다. 오메가3, 스쿠알렌, 초록홍합 추출물, 이런 건강식품들을 판매하는 회사였다. ‘영혼이 깃든’ 상품 설명을 위해 직원들이 ‘바다’에 대한 기초상식부터 습득해야한다는 교육담당 이사님의 섭외에 감동(?)을 받았다. 그분들도 나름대로 치열한 생을 살기에 단지 ‘바다’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디든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극지방에서 냉장고를 팔고 스님에게 빗을 팔아야한다는 영업사원들의 기개는 대단했다. 자신들의 각오를 다지는 응원가 같은 노래 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진돗개 영업’,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구호들이 새겨진 회의실에서 마주한 이사님으로부터 되레 삼십 분 정도 대표상품에 대한 강의를 내가 먼저 경청해야 했다. “스쿠알렌은 체내에서 합성이 이루어지고, 오메가3는 불포화지방산으로 합성이 되지 않으며, 전자는 상어에서, 후자는 등 푸른 생선에서 추출한다”는 장황한 설명들. 꿋꿋하게 버티며 상품구매는 하지 않았다. ‘남자나이 사십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일반적인 강사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격투기 도장 관장 같은 꼬락서니에, 경상도 사투리로 ‘전쟁에 나설 때는 기도를 한 번 하고, 바다에 나설 때는 기도를 두번 하라’는 러시아 속담으로 포문을 연다.

강사인 내가 중요한 전화는 반드시 받으라 허락을 했으니 모두 강의시간 내내 대놓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그것도 상관없다. 강의보다 더 가치가 있는 혹, 주문요청 같은 긴급한 전화는 그분들 입장에서는 열 일 제치고 받아야하는 게맞고, 한 쪽 귀로 흘려듣건 메모를 하며 경청을 하건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몫이니까.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분위기가 영 산만하다 싶을 때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억지로 끌려와 앉아있건 어쨌건 기억에 남을 한 대목이라도 들려줘야 할 것 아닌가.

 

1984년, 바로 그해가 내 뱃놈이력이 시작되는 해였고 첫 번째로 승선한 트롤어선 DW호는 스페인령 라스팔마스에 정박 중이었다. 새로운 어장 뉴질랜드로 배를 회항하는 게 우리의 첫 임무였다. 휴일도 없이 연일 계속되는 수리와 출항준비에 지쳤던 선원들에게 딱 하루 휴식이 주어졌다. 쥐나 해충을 없애기 위한 선내소독(Fumigation) 날에 야유회를 한 번 가기로 한 것이다.

현지 대리점에서 추천한 투어의 테마는 다양했다. 지중해 와 대서양이 맞닿은 북아프리카의 유명 관광지 섬이었다. 대항해시대의 역사가 깔린 문화유산을 섭렵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들이었으나, 대리점 직원의 입에서 얼핏 튀어 나온 ‘나체해수욕장’에 모조리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야말로 만장일치에 기립박수까지 뒤따랐다.

상세한 지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전 주의사항도 별것 없었다. 카메라 반입금지는 기본이고, 입장객 모두가 다 벗어야한다는 강제조항은 없으니 옷 입은 채로 들어가도 무방하다는 것, ‘불쾌감을 주는 언행을 삼가라’ 같은 애매모호한 경고와, 구석 어디쯤에 골수 나체주의자들이 모인 자체구역이 노란리본으로 표시되어 있으니 그 곳으로는 접근 하지 말라는 정도였다.

입들이 귀에 걸렸다. 무지렁이 가난뱅이들이 나중에 귀국해서 술자리에 친구들을 모아놓고, ‘마도로스’의 주유천하 일대기랍시고 자랑할 이야기 거리가 하나 추가되는 설렘을 가졌으리라. 전세관광버스는 시내를 빠져나와 야자수가 늘어선 해안도로를 신나게 내달렸다. 출발하자마자 바로 캔 맥주 박스가 뜯기며 노래자랑이 벌어졌다.

날은 화창했다. 해수욕장 입구 야산어귀에 칼국수 면발 굵기의 야생고사리와 선인장이 널려있었다. 주차장에 버스를 세웠다. 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손뼉치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뽑던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 막상 도착하니 모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헛기침을 하고 쭈뼛거리면서 담배만 죽여 댔다.

천금같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수 없기에 서로를 독려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입구로 들어섰다. 나름 차려입었다고는 하지만 죄다 검은 색 아니면 회색 빛깔의 우중충한 단체복장이 해변에 입성했다. 멋쩍게 눈치를 살피며 들어서는 동양인 무리에 나체상태의 아담과 이브들이 먼저 놀란 듯 했다.

거기서는 옷을 입은 자들이 되레 눈길을 끈다는 말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들은 우리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여자목욕탕에 들어선 꼬마처럼 호기심과 불안에 찬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며, 사열하듯 줄지어 전진하는 우리를 보고 그들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몇몇은 잔잔한 평안을 깨며 들어선 우리의 진 행방향을 피해 황급히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심호흡을 하고 아랫배에 힘을 주며 안쪽으로 진입했다. 눈치는 귀신들이라 우르르 떼거리로 몰려다닌다면 오히려 구경거리가 될 것 같으니, 점심시간에 맞춰 입구에서 다시 만날 시간 약속을 하고 뿔뿔이 흩어지기로 했다. 그제야 말리는 빨래처럼 드러누운 나신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아빛이 도는 피부색의 팔등신 금발 여인, 운동깨나 했을법한 잘 다져진 몸매에 다리가 긴 서양남성들, 흥겹게 소리 지르며 축구나 배구게임을 하는 아이들, 파라솔 그늘아래 책을 펼친 부부로 보이는 노인들. 백인들의 파라다이스인지 흑인과 동양인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진땀을 흘리며 걷던 젊은 선원하나가 옷을 훨훨 벗어부쳤다. 잠시 망설이다 그래도 주저되는지 팬티 한 장은 걸친 채로 물에 뛰어들었다. 분위기가 반전 되며 오지랖 넓은 몇몇은 젊은 나체족 남녀들이 벌이는 배구 시합에 너스레를 떨며 끼어들었고, 너도나도 위통을 자연스레 벗고 해변을 어슬렁거렸다, 갑판장을 위시한 나이든 선원들은 그래도 어색한지 멀찌감치 떨어져 모래사장에 쭈그리고 앉았다.

부드러운 모래가 햇살을 튕겨내며 반짝거리는 해수욕장에서 우리는 눈이 빠지도록, 사방 천지에 널브러진 금발 여인들의 나체를 여한도 없이 감상했다. ‘신천지’가 따로 없었다. 한 친구가 말했다. “낮술이라도 한 잔 했으면 나도 확 다 벗을 수 있을 것 같은 데…….”

그런데 이상도하지 딱 거기 까지였다. 한 시간 정도 ‘에덴동산’을 배회하고 나니 이제 별 감흥이 없었다. 누군가가 불평을 늘어놓았는데 감상 대상인 여자들을 두고 그 여자들이 그 여자들이라 재미가 덜하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상품회전율(?)이 저조해 새로운 여인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본전은 벌써 다 뽑았다는 말이었다. 모두 시들해져서 다시 입구로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접하는생경함이 그제야 익숙해졌지만 더 이상 볼 것도 할 짓도 없어진 것이다.

갑판장 영감은 해 가리개 신문을 덮어쓰고 백사장에 드러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조리장이 선원 몇몇을 데리고 야생 고사리를 따기 위해 반대편 야산어귀로 향했다. 멍청히 백사장에 앉아있으려니 하품이 나오고 무료하기가 그지없었다. 어쩌다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나쁜 짓을 하다 들켜버린 어린 아이처럼 괜히 움찔하며 겸연쩍었다. 누군가가 아침도 설쳤는지라 나체고 나발이고 슬슬 배가 고프다는 말을 꺼냈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혼자 버스에 남아 우리를 기다리던 현지인 기사는 지금이라도 팁을 더 준다면 다른 관광지로 안내할 수 있다며 비굴한 웃음을 흘렸다.

입구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워대며 ‘신세계’를 현장 답사한 감상평들이 쏟아졌다. 그날 신기하고도 거북한(?) 경험을 가졌던 개똥철학자들의 멘트 중에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보면 대충 이런 것들이 있다. 첫째, 나체촌이라 해서 모두가 벗는 것은 아니더라. 제 딴에 몸매에 자신 있는 젊은 청춘 남녀들만이 당당하게 벗고 있었다. 문신이나 흉터를 가리는 것처럼, 배불뚝이 같이 몸매에 자신이 없거나 젊음의 건강미를 잃은 대개의 노인들은 대충이라도 약점을 가린 차림새였다.

둘째,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뜨끔하니 다음에 다시 들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글라스를 반드시 지참하리라. 너무 검은 렌즈는 오히려 감상에 방해가 될 터이니 내 시선은 감추면서도 관람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적당히 옅은 갈색으로. 셋째는 풍수지리학이든 뭐든 예상가능 한 모든 여건들을 고려하고, 망라해 그곳에 누드비치를 출범시킨 선각자들의 깊은 식견에 대한 찬사였다. 이곳은 따뜻한 기온에 모래는 잘고 부드러우며 파도는 잔잔했다. 눈보라치는 빙판이거나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곳도 아니고, 지나치는 누군가가 쉽게 엿볼 수도 없는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였던 것. 분명 인공인 듯 자연스러운(?) 얕은 성곽처럼 쌓아 올린 입구의 시선 차단용 모래언덕을 보고 떠오른 내 생각이다.

배고픈 자들의 식욕 앞에서는 모든 유혹들이 무력해진다. 나체고 뭐고 간에 길게 붙들고 있을 테마는 되지못했고, 모든 것은 잊혀지고 지나가며 마지막에 남는 것은 오로지 먹는 것뿐. 이것저것 다 집어 치우고 시내로 돌아와 서둘러 예약한 뷔페에서, 굶주린 마적단 무리 같은 식사로 그 집을 초토화 시킨 것이 그날의 오후 일정이었다.

지난해인가, 한국에서도 동호회 형식으로 운영되던 숲속의 ‘누드팬션’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내친 김에 살펴보니 우리나라에도 의외로 이런 방면에 선각자들이 많았는지, 십여년 전에 전남 장흥에 개장한 ‘누드 삼림욕장’이 주민들의 정서에 배치되어 바로 문을 닫았고, 강원도와 제주도의 한적한 해변에 나체촌을 출범시킬 계획까지 나왔으나 백지화 되었다는 기록도 찾을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체면과 도덕을 중시하는 점잖은 동양권의 정서가 충돌하는 우리에게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 국가들도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상업주의적 개념이 깔린 누드비치 개장으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일조량이 적은 독일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억압받던 정정(正丁)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연과의 동화’를 기치로 내세워 옷을 벗어던지고 일광욕을 즐기기 위해 나체주의(裸體主義-Nudism)가 태동했다 한다. 아담과 이브가 알몸으로 세상에 왔다는 근거에 빗대, 삶에서 인위적이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단순함을 추구하는 자연주의(自然主義-Naturalism) 사조에 은근히 기대려는 시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외설’이나 ‘노출증’, ‘관음증’같이 성적인 일탈로 곡해되는 것에 분개하며, 오히려 성적으로는 더 보수적이고 정상적이라 항변한다. 기존의 통념과 질서를 거부하고 왜곡된 자유분방을 추구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히피(Hippie)문화와 비교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하기도 한단다.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 뱃놈 신분으로 이런저런 나라밖 신기한 지구촌 풍경들과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촌닭처럼 어리둥절했었다. 누드비치에서 마주친 그들은 거칠 것 없이 떳떳하고 당당했으며 티 없이 맑은 표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문물을 접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내로라하는 관광지를 마다하고, 다분히 불손한(?)의도를 가지고 떼거지로 몰려 들어가 그들의 한적한 평안을 깨트렸던 게 삼십 년 지나서도 괜히 미안해진다.

 

Profile 하동현 작가

부경대학교(구, 부산수산대학) 어업학과를 졸업하고 원양어선선장, 운반선 감독관을 역임하며 전세계 망망대해를 누볐다. ‘2016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중편소설)’을 수상했고 한국해양문학가 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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