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병대를 말한다
한국해병대를 말한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1.02.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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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은 국민의 격려에 보답한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군대는 국민적 사기(士氣)로 먹고사는 조직이다. 그것은 전진침투를 주(主) 개념으로 공수특전단이나 해병대에 적합한 말이다. 특히 적진상륙을 전문으로 한다면 필경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될 공산이 커서다.

해병대는 300년도 더 전, 영국 해군의 보병대가 그 효시다. 그 부대를 본떠 1755년 미 해병대가 창설된 이래, 에스파냐와의 전쟁을 거쳐 카리브 해 여러 국가에 대한 ‘포함외교(砲艦外交) 사절’로 기능하였고, 태평양전쟁에서는 일본군에 대한 반격의 선봉으로 남태평양 여러 섬들을 상륙전으로 회복(回復)하면서 세계최강의 군대로 거듭났다.

한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해군 출신 300여 명으로 창설된 이래 여수?순천과 제주도에서 암약하던 좌익분자들의 반란을 토벌한 데 이어, 6·25전쟁 중에는 김일성 및 도솔산고지에서 인민군을 격멸한 다음 미 해병대와 짝을 이루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 중앙청 돔에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자유 대한민국을 수복(收復)해낸 혁혁한 전과(戰果)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뒤 베트남에도 사상 최초로 1개 여단병력(청룡부대)을 파병, 자유와 평화수호의 천하무적(天下無敵)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귀신 잡는 해병’은 투입된 전투마다 패(敗)함이라곤 없이 연전연승(連戰連勝)함을 본 세계최강 미해병대가 붙여준 별칭이다.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은 한 번 해병된 자는 그 영광을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는 무한한 자긍심(自矜心)의 발로 그 자체다.

담금질로 연마된 무쇠덩이 해병

해병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통상의 인간을 억센 훈련으로 개조시킨 최정예 군인이며, 4개월간의 혹독한 연마와 담금질을 거쳐 전혀 새로운 사나이로 탈바꿈한 인간병기(人間兵器)다.

1962년 4월, 대학을 휴학하고 진해 경화동의 해병 신병훈련소에 입소한 필자가 맨 먼저 전율(戰慄)한 것은 김일성고지 전투에 참가한 병조장 계급의 교관이 담담하게 그의 실전담을 피력하는 순간이었다.

“……두만강 턱밑 중강진까지 진격한 미군마저 작전상 후퇴를 하고 있을 때, 우리 해병 소대는 한 치의 땅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고지를 사수했다. 밤새 얼마나 총을 쏴댔던지, 날이 희붐할 무렵 바로 눈앞의 수백 년 묵은 소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넘어지고 있는 거야! 소총탄 한 발 한 발이 관통하면서 서너 아름이나 되는 고목의 허리께를 톱질한 거였어.”

소나무의 전복을 보면서 화랑담배를 나누어 피운 전우는 자신을 포함한 서너 명에 불과했고, 반면 구릉에 널브러진 적의 시체는 1개 대대병력을 훨씬 넘었다던가. 숱한 전장(戰場)을 헤매는 동안 몇 개나 되는 총상을 훈장(勳章)처럼 남기고 있던 그 노병은 해병정신의 진수를 전수하기 위해 인민군과의 실전을 마치 옛이야기처럼 회고하고 있었으나 갓 입소한 우리들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 순간부터 나도 해병이라는 자긍심을 갖기에 혼신의 힘을 다했었고, 드디어 ‘나 역시 적과 맞서면 한 치의 퇴각도 없이 일당백(一當百)의 기개로 무찌르고 말겠다’는 적개심을 북돋우려 이를 악물었던 것이다.


해병일병 계급장을 달기까지의 담금질은 참으로 강도 높은 것이었다. 매일 야밤중이면 ‘훈련병 전원 막사 떠나!’를 자장가로 삼았는데, 그러면 아직도 살을 에는 해풍에 노출된 채 수십 바퀴씩 연병장을 돌거나 바다로 뛰어들기 예사였고, 그것도 모자라 덕산(德山)까지의 왕복 삼십릿길에다 군화발자국을 찍어내곤 했었다. 또 완전무장으로 해발 300미터 천자봉 고지에의 험준한 행군은 어떠하였던가. 그럴 적마다 목청껏 ‘나가자 해병대’를 비롯한 해병대가(海兵隊歌)로 박자를 삼았는데, 필경 야밤중의 소란이 분명한데도 인근 주민들은 안면을 방해받았다는 식의 트집 잡는 일이라곤 결단코 없었다. 해병 신병들의 그 우렁찬 기합(氣合)이야말로 국가안보가 튼실하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라는 무언의 격려였던 것이다.

4개월의 훈련을 거치는 동안 처음 지급받은 미제 훈련복과 군화는 다 헤어져 넝마가 되어 있었고, 그제야 양 어깻죽지로 겨우 ‘작대기 하나’의 고귀한 계급장이 부착되는 눈물의 수료식이 거행되는 것이었다. 아, 바로 그 순간에 나를 포함한 동기생 320명의 천하무적 해병전사가 탄생한 것이었다.

천하무적 해병의 손을 옭아맨 자 그 누구인가

동족상잔의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 한반도는 여전히 전운(戰雲) 감도는 일촉즉발의 위기 속이다. 그 증거의 하나가 곧 백주에 북괴군이 10여km 거리인 옹진반도 개머리에서 연평도를 향해 무차별 해안포를 발사하여 민간인을 포함한 아까운 해병대원을 둘이나 전사케 한 일이다.

그 비보를 듣고 당장 달려가 악마의 하수구인 북괴군 진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싶어 한 사람이 어디 나 혼자뿐이었을까. 과연 포성이 들린 지 불과 두어 시간 후 ‘해병대전우회’가 떨리는 목소리로 세상에 대고 경고의 일성(一聲)을 발하였으니, 그 첫째가 ‘전우의 죽음에 분통을 참을 수 없다’였고, 이어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와 ‘국내에 산재한 친북좌파 세력을 몽땅 쓸어내자’는 것이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세계최강 미해병대의 승전가(勝戰歌)는 ‘몬테주마 지옥에서 트리폴리 해안까지……’로 시작되고 있지만, 우리 해병은 ‘하늘의 우레소리, 땅 위의 아우성……’으로 이어지는 도솔산가(兜率山歌)를 소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악을 써 부르짖으며 승전태세를 가다듬었었다. 그럴 때면 이 한 목숨 안중에 없고, 오로지 무찔러야 할 적들만 눈에 선하였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보국(報國)하겠다는 충직한 해병의 기를 꺾은 자 누구인가. 곧 해병전우회가 지목한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친북좌파 분자들’ 아닌가. 따라서 도발을 자행한 북괴집단을 응징하기에 앞서 내부청소가 필요하다는 해병의 외침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야만 철천지원수놈들의 야만적 도발로 비명에 간 두 해병용사들의 억울함을 100분의 1이나마(1當百이니까) 탕감할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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