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한국해군!
슬프다, 한국해군!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1.01.2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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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존경스러울 수 없는 한국해군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애석함을 넘어 분노감마저 치민다. 그토록 신뢰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 4월 프리깃함인 ‘천안함 침몰사고’에 이어 엊그제 고깃배에 받혀 어이없이 침몰당한 고속정 ‘참수리 295정’과 관련해서다.

  천안함과 관련하여 필자는 본지 6월호 칼럼에서 ‘그 사고는 의심의 여지없이 악의 축- 북한의 소행이 분명하며, 아웅산 테러나 858 KAL기 폭파 때와는 달리 이번만큼은 개과천선하여 순순히 실토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썼다. 특히 천안함 경우는 함체를 인양한 다음 미국을 비롯한 영국과 호주 등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조사단에 의해 북한의 소행으로 판정이 난 만큼 내부적으로도 헛된 추측을 삼가하고 조용히 사태의 결말을 지켜보자고 충고했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금까지 천안함 침몰사고에 대해 굳게 입을 봉하고 있고, 때로는 앞뒤 맞지도 않는 온갖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필자가 한국해군에 대해 유독 신뢰와 애정을 표시하면서 예기치 않은 돌발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은 10여 년 전(2001년) 해군사관학교 56기 생도들이 아시아권 10개국을 순방할 당시의 순항함대와 이듬해 중부 태평양에서 벌어진 2002 림팩훈련함대에 잇달아 편승, 2년에 걸쳐 해군 장병들과 생사를 초월하는 원양항해를 함께한 인연 때문이다. 그 항해에서 필자는 스스로 수병(水兵 ; 병장 계급)을 자청하여 해군본부가 마련해 준 청색 근무복 차림으로 함상훈련을 비롯한 모든 행사에 단 한 번의 결장도 없이 적극적인 복무를 수행한 다음 대한민국해군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으로 본격 해군소설인 <가블린의 바다>를 상재(上梓)하여 해군장병들에게 교범(敎範)의 하나로 헌정했었다. 소설은 필자의 2년에 걸친 해군함대 편승 일지를 바탕으로 씌어졌는데, 줄거리를 요약하면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인 만큼 세계로 나아가는 길목인 바다를 외면할 수 없다. 바다수호야말로 국가보위의 핵심’이라는 전제 하에 ‘한국의 해군력이 대양해군(大洋海軍)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었다(이후 필자는 당시 참모총장이던 문정일 제독으로부터 ‘명예해군’ 칭호를 얻었다). 

  어느 참수리 정장의 경우

  이번 참수리 295정의 치욕스러운 침몰사고와 관련,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다. 현재 해군사관학교 교장인 윤공용(尹孔龍/해사 33기) 해군소장이 대위 계급으로 동형의 참수리 정장(艇長)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1876년, 윤 대위가 지휘하던 참수리 000정은 작전을 마치고 귀항한 상태에서 다른 동형의 고속정과 함께 1함대 부두에 정박하고 있었다. 정박 중이었지만 정장은 기강과 전투태세 확립을 위해 포술장(砲術長)으로 하여금 신병 승조원들을 대상으로 주포(主砲)의 성능과 사격술에 대한 교육을 이행하도록 지시했다. 한창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데, 함교로부터 갑자기 포술장을 호출하는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포술장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나가던 다른 준사관 하나가 주포의 좌대로 올라가서는 장난삼아 ‘사격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마침 주포에는 실탄이 장전되어 있어서 순식간에 21밀리 탄환이 빗발치듯 발사되는 돌발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요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나란히 정박하고 있던 다른 참수리의 주포를 박살낸 게 문제였다.

  곧 해군본부에서 장성급 감찰관이 달려왔고, 당연히 지휘 책임을 물어 정장인 윤 대위가 어떤 형태로는 징계를 당할 판이었다. 그 자리에서 윤 대위는 이렇게 소명(疏明)하였다고 한다.

  “저는 물론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전투를 사명으로 하는 함정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를 손상시킨 데 대해서도 마땅히 배상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평생 지급받을 봉급을 모두 합쳐도 어림도 없는 엄청난 액수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저의 책임이 면탈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못난 저를 그 액수의 천배 만배를 갚을 수 있도록, 또 조국에 충성하여 이 한 목숨 바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사 하는 간청입니다.”

  그 의지의 말을 들은 준엄한 감찰관의 보고서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그 결과 윤 대위는 가벼운 주의만 들은 다음 차근차근 진급의 계단을 밟아 지금은 해군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보직의 하나이자 미래 한국해군을 짊어지고 나갈 간성(干城)을 양성하는 해군사관학교 교장 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해군 체통에 먹칠한 참수리 295정

  바다에도 육지의 도로교통법과 같은 해상충돌예방법규(海上衝突豫防法規)가 있다. 그 규정에 의하면 마주치는 두 선박은 우선적으로 상대선의 현등(舷燈)을 확인하는 것이다. 두 배가 근접하는 경우, 상대선의 홍등을 보는 쪽이 의무선(義務船)이 되면서 즉시 전타(轉舵)를 하거나 감속(減速)함으로써 충돌을 모면하라는 만국통용의 매뉴얼이다. 이럴 때 상호 선박의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사고의 경우 쌍방 발표에 의하면 부산선적 어선 106우양호의 구상형(球狀形) 선수부 하단(Bulbous Stem)이 참수리 295정의 좌현 함수부 흘수선(吃水線) 부분을 들이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그 같은 상황이야말로 참수리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만약 똑같은 충돌이 항공모함에 가해졌다면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양호는 참수리의 좌현 홍등을 보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회피의무는 우양호 쪽에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시 말하면 우양호가 방향을 꺾는 대신 참수리는 지금까지의 침로를 유지하여야 국제규법에 맞다는 뜻이 된다.

  그렇더라도 참수리의 책임이 면탈되는 것은 아니다. 육상에서 차량을 운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권리선에게도 적극적인 방어책 수행의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속정은 한국해군(제 3함대) 소속의 어엿한 군함이다. 군함에게는 국토의 한 부분인 영해(領海)를 지킬 책무가 주어져 있으며, 그에 따라 수상한 물체에 대하여 검문(檢問)을 행사하는 등의 막강한 권리가 주어져 있다. 그럼에도 일개 고깃배에 받히는 수모까지 당하여 침몰했다.

  이 경우 앞서의 윤 대위 경우처럼 똑같은 계급인 295정 정장에게도 정상을 참작할 만한 여지가 있을까. 그건 아니다. 그 위관급(尉官級) 장교야말로 대한민국해군의 체통에 먹칠을 한 책임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필자가 애석함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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