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수라상에 올랐던 오사리굴비 참조기 양식으로 재현에 성공
임금 수라상에 올랐던 오사리굴비 참조기 양식으로 재현에 성공
  • 현대해양
  • 승인 2010.09.0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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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수산기술사업소 영광지소 양광희 지소장


△ 양광희 지소장

 고려 17대 왕 인종의 수라상에 올랐던 오사리굴비가 복원됐다. 오사리굴비란 영광에서 최고로 치는 ‘굴비중의 굴비’로, 양력 4월 20일경 곡우를 전후해 전남 영광군 법성포 앞 칠산 바다에는 알을 낳으려고 북상하는 참조기로 만든 굴비다.

 오래전에 자취를 감춰버린 오사리굴비 복원은 전라남도수산기술사업소 영광지소 양광희 지소장과 5명의 직원들이 이뤄낸 성과다.

 양 지소장은 “한때 법성포부터 함평에 이르기까지 파시를 이룰 정도로 참조기의 양이 많았지만, 남획으로 인한 자원고갈과 참조기가 칠산 바다까지 오기 전에 동중국해나 제주도 해역에서 미리 어획해 버리기 때문에 오사리굴비 또한 사라지게 됐다”면서 오사리굴비를 복원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오사리굴비 복원이라는 성과를 논하려면 우선 영광지소에서 그동안 수행해 온 참조기 양식의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지난 2004년 영광지소(당시 영광수산사무소)는 국립수산과학원과 공동으로 KMI 자금을 지원받아 참조기 양식을 위한 종묘생산에 성공했다. 이후 2008년 3월 양 지소장이 영광지소로 발령받아 근무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참조기 양식 사업이 시작됐다. 참조기 양식에 성공 해야겠다는 목표에 승부를 걸었다는 양 지소장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2008년 9~10월 달에 영광 백수 앞바다에 개막이 시설을 한 뒤 전 직원이 새벽 2~6시 사이 물때에 맞춰 참조기 어미를 채포하러 다녔다”면서 “참조기는 성질이 급해 육지로 올리면 수분 내에 죽어버리기 때문에 트랙터를 개조해 물칸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발휘, 2,000마리의 어미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총 2,000마리의 어미를 확보했지만 이 중 10%(200마리)만이 생존했으며, 이들의 인공산란을 통해 50~70만 마리의 치어를 생산해 내며 참조기 완전양식에 성공했다. 하지만 부레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많은 수의 치어가 탈락하는 감모현상을 거쳐 최종적으로 30만 마리가 생산됐고, 현재 생존중인 1세대 참조기는 약 2만~2만 5,000마리로 18~23cm까지 성장했다.

 “내년에는 최대 50~100만 마리의 치어를 생산해 참조기 자원회복을 위한 방류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참조기 양식센터를 건립해 우리나라 참조기 양식산업과 굴비 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목표를 전하는 양 지소장은 “굴비 산업화가 이뤄지면 국민들도 수년 내에 오사리굴비를 실제로 맛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능성 굴비 또한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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