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는 은빛 사냥꾼 ‘갈치’
서 있는 은빛 사냥꾼 ‘갈치’
  • 황선도 FIRA 대외협력실장
  • 승인 2016.09.0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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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치.

일본에선 ‘서 있는 물고기’로 불러

2006년 여수에 있는 남해수산 연구소에 근무할 때이다. 한국방송(KBS) 창원 방송총국에서 남해의 대표 어종인 멸치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참여한 적이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촬영한 영상 중에 갈치가 멸치를 잡아먹는 장면이 있는데, 표층에 떠다니는 멸치떼 아래에 갈치가 ‘칼’ 같이 서서 낚아채듯 잡아먹는 것을 보고 참으로 신기했다.(갈치가 늘 이런 자세로 사냥하는 건 아니다.)

일반적인 물고기와 달리 갈치가 옆으로 헤엄치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습성을 묘사하여 일본에서는 ‘서 있는 물고기’라는 의미로 다츠오(立つ魚)라고도 부른다.

갈치는 최대 15세까지 살며 그 길이가 2미터를 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갈치는 보통 1미터 정도까지 성장하며 수컷은 4살, 암컷은 6살까지 사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갈치는 이빨이 매우 강하다. 2010년 배타적 경제수역 승선 자원 조사를 나갔을 대 잡은 전장 133센티미터의 갈치는 금방이라도 손가락을 자를 듯한 기세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 배타적 경제수역 승선자원조사에서 133cm 대형갈치.

은색 가루는 복통 일으킬 수 있어

갓 잡은 멸치를 만지면 비늘 대신 은색 가루가 손에 묻어난다. 이것은 구아닌이라는 유기 염기로, 갈치를 날로 먹을 때 깨끗이 벗겨내지 않으면 복통과 두드러기가 날 수 있다. 그런데 반짝이는 이 은색 가루가 인조 진주의 광택을 내거나 립스틱을 만드는 원료로 쓰이기도 한다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좋고 나쁨이 공존하는 것 같다. 구아닌은 보통 칼로 긁어내지만, 시골에서는 호박잎으로 문질러 벗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갈치 요리는 토막을 내어 약간의 소금에 절였다가 기름에 튀겨 내는 것이 제일이며, 무를 넣고 적당히 양념을 한 조림이 두 번째이다. 그러나 아마도 으뜸은 갈치회일 것이다. 요즘은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신선하게 유통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서울에서도 갈치를 회로 먹을 수 있는 곳이 더러 있다. 하지만 신선도가 떨어지면 갈치에서 묻어 나오는 구아닌 성분이 공기 중 산소에 의해 산화되어 쉽게 변질되고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현지가 아니고서는 신선한 회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여름밤, 약간은 쌀쌀한 제주도 해안가를 걷다 보면 밤바다 수평선 너머에서 야간 야구 경기가 벌어지는 듯한 광경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갈치를 낚는 어선의 불빛이다. 이렇게 밤새 낚은 갈치가 다음날 아침에 수산시장으로 들어오면 그 신선함이 유지된 채로 회를 먹을 수 있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중에서
황선도 지음 / 부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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