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밤청년, 가락시장 판매왕이 되다
군밤청년, 가락시장 판매왕이 되다
  • 장은희 기자
  • 승인 2016.04.0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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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씨푸드’ 백남곤 대표 성공스토리 화제


군밤을 팔던 가난한 청년에서 수산물 유통의 일인자로 올라서게 된 의지의 성공 스토리가 작은 감동을 일으키며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사장 박현출)이 지난달 29일 가락몰 업무동 13층 교육장에서 개최한 농수산식품유통포럼에서 소개된 ‘세림씨푸드’ 백남곤 대표의 이야기이다.

출생 당시 가정형편에 따라 ‘금수저’, ‘흙수저’ 등으로 나누는 소위 수저계급론이라는 웃지 못 할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백남곤 대표는 가진 것은 없었으나 어려움 속에서 의미를 찾고 이 꿈을 현실에서 실현해낸 사례를 발표에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백 대표는 ‘무무의 꿈 - 무적(無籍)상인에서 무적(無敵)을 꿈꾸며’ 라는 제목으로 가락시장 판매왕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그의 성공 키워드를 소개했다.

어려서부터 가난과 함께해온 백남곤 대표는 대학 진학을 꿈꿀 수도 없는 어려운 형편 속에 어린 나이부터 가구배달, 막노동, 목수, 식당일 등 생계를 위해 많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을 맞이했다.

백 대표는 “취직을 위해 학원에 다니며 조선대 앞 숙식이 제공되는 당구장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매일 먹던 라면도, 당구대에 이불을 깔고 자야하는 열악한 환경도 아닌 내 나이 또래에 학교를 다니며 꿈을 꿀 수 있는 학생들을 보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대학을 가기로 결심하고 대림대학에 입학하게 되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안양역으로 가는 육교 위에 화덕 두 개를 올려 두고 군밤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움에 입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제대로 장사를 해보자 맘을 먹고 옷까지 갖춰 입은 백 대표는 당시 상황을 활용해 ‘전두환이 사 천억, 군밤이 한 봉다리 천원’ 이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하루 만원도 벌기 어렵던 매출은 15만원까지 늘어났다.

이 경험은 백 대표를 가락시장으로 이끌었다. 대학을 졸업한 백남곤 대표는 중소기업에 입사했으나 가난으로 인한 설움을 풀고 싶어 부자가 되고 싶었던 그에게 64만원의 월급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그에게 떠오른 것이 군밤장사의 기억이었고, 가락시장에서 장사의 꿈을 펼치겠다 마음 먹게 됐다.

백남곤 대표는 “최고의 배달맨이 되는 것이 성공의 첫 단계라 생각했다”며 “‘빨리, 많이, 친절하게’ 라는 나름의 배달 3대 원칙을 세우고 하루에 80여톤의 수산물을 나르고 40km를 달려다녔는데, 이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10년 후에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구매자 중심’의 장사 철학을 가지고 악착같이 수산시장을 뛰어다닌 그는 2012년 판매왕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백 대표의 노력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브랜드인 ‘생선愛’를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다시 대학에서 마케팅 공부를 시작했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나 그의 성공이 아름다운 것은 가난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성공으로 얻은 것들을 다시 ‘0’으로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NGO단체 더 투게더의 운영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백 대표는 가치있게 쓰는 것의 행복을 강조하며 “100억을 벌겠다는 목표보다 모든 것을 나눠주고 0이 되는 것이 더 큰 가치”라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한편 가락시장 도매 유통인과 종사자 대표, 행복마켓 서포터즈 및 시민 약 140여명이 참석한 이날 포럼에서는 2015년 중도매인 판매왕 표창에 이어 백남곤 대표의 유통인 성공 사례 발표, '㈜한서아그리코'의 하석건 대표의 가락시장 발전을 위한 특별 강연 등이 진행됐다.

<영상 제공 =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재편집 = 월간 '현대해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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