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보길도’
자연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보길도’
  • 양이진 기자
  • 승인 2010.03.04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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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지나니 바람의 기세도 그만큼 누그러졌다. 나뭇가지마다 눈에 보일듯 말듯 새 생명이 움트고 거친 땅에서는 푸른 기운이 솟아난다. 다시 찾아온 봄기운에 절로 흥이 난다. 섬 여행을 나서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단순한 ‘눈요기’식의 여행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고 음악과 문학, 역사의 발자취를 좇아 고산 윤선도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 완도 보길도로 향했다.

 

 
  윤고산의 발걸음을 따라

 

 완도 화흥포항에서 뱃길로 30여분 만에 노화도 동천항에 도착. 지난 2008년 노화-보길도를 연결해 주는 보길대교가 완공돼 보길도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 졌다.  보길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32㎞떨어진 섬으로 그 생김새가 쟁기에 끼우는 보습 형상을 닮아 보습의 어원인 ‘보고래 섬’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노화도에서 두 개의 다리로 된 보길대교를 지나자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지명을 이정표 곳곳에서 안내하고 있는 것을 보니 역사가 되살아 난 듯 마음이 바빠진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조선 인조 때 13년 동안 살았던 섬으로 아름다운 경관만큼이나 윤선도의 유적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고산 윤선도는 정치적 다툼으로 수차례 유배생활을 겪어야 했다. 이후 병자호란 소식을 듣게 되고 강화도에 이르렀으나 인조(仁祖)는 이미 남한산성으로 옮겨 대항 후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해 세상을 등지고 제주로 가는 길에 보길도의 산세의 수려함에 반해 보길도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윤선도는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겨 국문학에 큰 획을 긋기도 한다.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의 3대 시가인으로 불린 윤선도의 발길을 따라 세연정과 동천석실, 낙서재 등의 부용동을 거닐며 400여년의 역사를 거슬러 오른다.


  고산의 풍류가 담긴 부용동

 고산 윤선도가 85세로 낙서재에서 삶을 마치기까지 섬 여기저기에 세연정, 무민당, 곡수당, 정성암 등의 건

물을 짓고 바위 등 자연의 경승에 대(臺)의 명칭을 붙였는데, 이 정자와 대가 모두 25여 개소에 이른다고 한다. 고산은 이곳을 자신의 낙원으로 부용동(섬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지음) 정원을 가꿨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우가, 산중신곡 등 많은 가사를 남겼다. 특히, 자연을 소재로 지은 시조 짓기에 뛰어난 윤선도의 글은 ‘어부사시사’에 잘 드러나 있다.

 

 부용동정원은 크게 세 곳으로 살림집인 낙서재와 산 중턱의 휴식공간인 동천석실, 부용동 입구에 있는 세연정이 바로 그곳이다. 자연미와 인공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세연정은 원림의 백미로 손꼽히는 곳이다. 세연(洗然)이란 주변의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해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라는 의미로 윤선도는 세연정을 중심으로 양옆에 자리한 연못 세연지에서 배를 띄워놓고 시를 읊기도 하고 무희들의 춤사위를 감상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세연정에 들어서서 주변을 걷노라니 어부사시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400여년 전 그 풍류가 오늘날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하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낙서재와 동천석실이 위치해 있어 어렵지 않게 둘러볼 수 있다.

 
  각기 다른 멋 지닌 해변

 보길도에서 윤선도의 발길을 따라 문학여행을 즐겼다면 공룡알, 깻돌, 모래 등 각기 다른 멋을 지닌 해변을 둘러보는 것도 꼭 챙겨야 한다. 사람 얼굴만한 큰 자갈들로 이뤄진 ‘공룡알 해변’과 검고 납작한 돌들과 상록수림이 펼쳐진 ‘예송리 해변’, 은빛 고운 모래가 인상적인 ‘중리해변’과 ‘통리해변’ 등이 그 주인공.

 부용동에서 월송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예송리 해변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상록수림과 검은 해변이 곱게 펼쳐져 있는 예송리 해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날씨가 맑은 날은 전망대에서 추자도, 제주도까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보길도의 또 다른 볼거리라면 송시열의 ‘글씐바위’를 비롯해 고산 문학체험공원, 보죽산(뾰족산이라고도 불림), 망끝전망대, 정동리 동백숲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눈길 닿는 곳마다 펼쳐진 전복 양식장들도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의 하나이다.
 완도 인근 앞바다에서부터 노화도, 보길도에 이르기까지 전복양식장이 가득 들어차 있고 지나는 마을마다 육상양식장은 물론 길가에서도 양식을 위한 가두리 시설이나 쉘타 등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다. 전복의 주 고장임을 실감케 한다.

 전복양식이 이리 흔하니 해변마을 곳곳에서는 미역과 다시마를 말리는 풍경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예송리해변에서 만난 노부부도 막 바다에서 작업을 끝내고 들어와 배에서 미역을 내리고 있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미역을 끄는 할머니의 손이 무거운지 “힘들다, 힘들어”를 연신 반복하고 할아버지는 애꿎은 미역만 바라보며 일면식도 없는 기자에게 성큼 미역한 줄기를 잘라 내민다. 그 인심에 망설이지 않고 크게 한입 베어 문다. 바닷내음이 그대로 전해 온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보길도는 연간 5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만큼 구석구석 천혜의 경관은 물론 역사적 명소에 이르기까지 즐거움과 배움의 현장으로 손색이 없다. 이름만 들어도 가고 싶은 동경의 섬. 고산 문학의 산실을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 보길도의 문학기행에 동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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