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73. 제주다움은 조곤조곤 들려오는 마을 이야기에 있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73. 제주다움은 조곤조곤 들려오는 마을 이야기에 있다
  • 김준
  • 승인 2024.03.2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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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오조리 2
광치기해변과 성산일출봉. 사진촬영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광치기해변과 성산일출봉. 사진촬영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해양] 제주도는 벼농사가 귀한 지역이다. 벼농사를 짓는 지역이 제주 경지면적의 1%도 되지 않는다. 화산섬인 탓에 물을 가두기 어려워서다. 지금과 달리 오직 쌀에 의존해야 했던 시절에 벼농사를 지을 논을 개척하거나 쌀을 대신할 식량을 찾는 것이 제주도의 역사였고, 문화였다. 조선 시대부터 성산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조리의 족지물 인근도 벼농사했던 곳이다. 용천수가 좋고, 토질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을포제를 지낼 때 쌀을 이용해 ‘허벅술’을 담아 제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허벅술은 물을 담아 나르는 허벅에 술을 빚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유교식 포제에 사용하기 위한 술이었다.


마을에서 탐조대회를 개최하다

지난해 늦가을 오조리 마을회와 물새알이 주최한 탐조대회가 마을 주변 습지에서 개최되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약 50여 명이 참석해 마을회관에서 교육을 받고 그룹별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오조리 습지와 마을 주변 새들을 관찰했다. 오조리에는 양어장, 마을어장, 저류지, 포구 등 다양한 연안습지가 있다. 이날 관찰된 새들만 해도 저어새, 중백로, 논병아리, 물수리, 제비, 동박새, 붉은발도요, 쇠백로, 가마우지, 왜가리, 알락해오라기, 덩불해오라기, 맷비둘기, 바다직박구리, 민물도요, 물닭, 천둥오리, 딱새, 쇠물닭, 원앙, 흰죽지, 괭이갈매기, 방울새, 청다리도요 등 30여 종이었다. 오조리 연안습지는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개리, 노랑부리저어새, 수리 등 법정보호종이 찾는 곳이다. 또 황근, 갈대, 거머리말 등이 서식하기도 한다.

전문가나 행정이 아닌 시민들 스스로 모니터링한다는 점, 마을공동체의 참여 속에 탐조대회가 이루어졌다는 점, 지역주민들이 참여했다는 점, 특정한 마을 어장을 중심으로 탐조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마을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지 느낄 수 있다. 또 시민모니터링으로 쌓인 데이터는 이후 마을발전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무분별한 개발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오조리처럼 보호지역을 요청한 마을은 주민들의 환경의식 증진과 마을 밖에 시민들의 관심도 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참석한 초등학생은 후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저는 사라져가는 새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새들은 사라져가지만 만약 사람들의 관심이 생긴다면 우리 인간이 새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될 테고, 이러한 관심들은 새들을 보호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마을 상징, 폭낭
마을 상징, 폭낭

제주도 최초 현대적 양어장을 만들다

식산봉과 마을 사이에 1963년 ‘오조리 양어장’이 만들어졌다. 5.16 군사혁명 직후 시작된 재건 국민운동의 일환으로 마을 청년회가 나섰다. 여기에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박정희) 후원 20만 원과 농어촌진흥자금 30만 원(무이자 2년 거치 5년 분할 상환) 등 모두 50만 원과 자체부담 30만 원을 더해 마을주민들의 노력으로 완공되었다.

양어장을 만들기 위해 연 2,500명의 마을주민이 동원되어 식산봉의 돌과 흙을 옮겨와 석축을 쌓고 성토하였다. 양어장의 제방 길이가 182m, 높이가 4.5m, 수문 2개소를 갖추었다. 그 규모가 26만㎡로 착공 4년 후인 1967년 완공됐다. 오조리 양어장은 자립마을을 만들겠다는 주민들의 강한 의지와 국가재건위원회의 지원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공동어장이나 마을어업을 허가받게 되면 어촌계의 공유자원이 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국가자산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제주일보(2014.10.20)에 따르면, 착공시기가 1963년이고, 보리흉작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67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제주 최초의 양어장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곧바로 어류양식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 성산읍의 고성리와 성산리를 잇는 육계사주와 오조리와 식산봉으로 둘러싸인 내만이지만 바닷물이 들고 나는 것을 통제할 만큼 완성된 양어장이 아니었다. 그 결과 1968년, 1979년, 1998년 각각 적지 않은 국비와 지방비 등을 투입했고, 1998년 8월에 준공하였다. 구체적으로 초기에 숭어와 우럭과 자연산 뱀장어 등을 키웠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다만 수문을 열어 양어장 안으로 들어오는 숭어의 습성을 이용해 가두어 길러 잡기도 했지만, 지금은 방치된 상태다. 양어장과 마을 사이에 있는 수전물, 주군디물, 족지물 등 용천수가 있었다. 그리고 연안 습지에 황새, 고니, 물수리,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원앙 등 희귀조류와 가마우지, 백로, 물닭, 갈매기 등이 많이 찾는다.

① 족지할망당 내부② 황근자생지 주변 연안습지에 설치된 데크를 따라 걷는 탐조객③ 제주올레2코스 이정표④ 마을 안 쉼터이자 식당인 ‘돌담쉼팡’⑤ 식산봉 입구에서 본 성산일출봉⑥ 드라마 ‘공항가는 길’에 나온 건물
① 족지할망당 내부② 황근자생지 주변 연안습지에 설치된 데크를 따라 걷는 탐조객③ 제주올레2코스 이정표④ 마을 안 쉼터이자 식당인 ‘돌담쉼팡’⑤ 식산봉 입구에서 본 성산일출봉⑥ 드라마 ‘공항가는 길’에 나온 건물

성산일출봉을 보며 걷는 오조리 둘레길, ‘제주올레 2코스’

오조리는 제주올레 2코스의 중심이다. 이 길은 ‘성산·오조 지질트레일’ 코스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제주올레 2코스는 오조리갯벌 형성에 큰 역할을 한 광치기해변이 시작점이다. 광치기는 뱃사람들 애환과 아픈 제주 근현대사를 품은 곳이다.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으로 변을 당한 사람들이 조류에 밀려오는 곳이었다고 한다. 성산일출봉이 해풍과 파도에 씻겨 검은 흙과 돌이 쌓여 만들어진 곳이다. 올레길은 내수면둑방길을 지나 식산봉으로 이어진다. 오조리 습지를 찾는 물새들을 볼 수 있는 길이다. 조심스럽게, 새들이 놀라지 않는 옷차림으로 걷는 것이 좋다. 걷는 길에 만나는 오조리 포구는 기념 촬영하기 좋은 곳이다. 성산일출봉과 오조리갯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조리포구는 ‘웰컴투 삼달리’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과거 ‘공항가는 길’에 나온 건물도 포구 옆에서 만날 수 있다. 이어 오조리 양어장 둑방을 따라 걷다 보면 식산봉으로 이어진다. 식산봉에 올라서도 성산일출봉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좌)올레길을 따라 걷다 고개를 돌리면 마주치는 성산일출봉(우)마을회와 물새알이 개최한 탐조대회
(좌)올레길을 따라 걷다 고개를 돌리면 마주치는 성산일출봉(우)마을회와 물새알이 개최한 탐조대회
물새들이 쉬기 좋은 오조리 연안습지
물새들이 쉬기 좋은 오조리 연안습지

 

식산봉은 연안습지와 갯벌로 둘러싸여 있다. 그곳은 해안도로와 개발 등으로 사라진 제주도 동부 저지대 식생이 남아 있는 곳이다. 특히 중요한 종으로 칠면박나무, 참식나무, 까마귀쪽나무, 돈나무, 송악, 자금우, 광나무, 마삭줄 등 11종을 꼽는다. 염습지에는 황근 20여 그루가 자라는 곳으로 가장 큰 집단서식지이다. 인근에 족지물 등 용천수가 흘러 하구습지를 연상케 한다.

식산봉에서 마을로 가는 길에 오른쪽에 할망당이 있다. 족지물에 이르기 전이다. 수산1리 본향당(울뤠모르하로산당)에서 비롯된 가지당으로 알려진 ‘족지할망당’이다. 할망당은 원래는 ‘족지물’ 주변에 있었으나, 땅이 개인 소유로 2004년에 새로 당집을 지어 옮겨 모셔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벽돌로 지어진 당집에는 치마와 색동저고리 등이 신체로 삼고 있다. 족지할망당을 잘 모시면 족지 앞바다에 빠져 죽는 아이가 없고, 아픈 아이(특히 부스럼 등 피부병)가 잘 낫는 영험담이 있다.

족지물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 또 보말칼국수, 멸치국수, 고기국수, 돼지꼬치구이, 문어꼬치구이, 쑥전 등 주민이 만들어 주는 제주맛을 볼 수 있어 좋다. 그곳이 ‘돌담쉼팡’이다. 마을회관 옆에 폭낭(팽나무) 두 그루 아래서 마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도 좋다. 이어지는 올레2코스는 대수산봉으로 거쳐 제주 ‘삼성신화’에 고, 양, 부 삼신인이 벽량국에서 찾아온 세 공주와 혼례식을 치렀다는 연못 혼인지를 지나 온평포구로 이어진다. 오조리 마을 이야기의 속내를 알고 걸으면 작은 돌 하나도, 나무 한 그루에도 예사롭지 않다. 진정한 제주다움이 마을과 주민들의 삶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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