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법 교육 맥 끊기나
해상법 교육 맥 끊기나
  • 지승현 기자
  • 승인 2024.03.1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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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사법원·해사중재원 설치 등 해사 법률 인프라 강화

[현대해양] 서울에서 해상법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수도권 내에서 유일하게 해상법 과정을 운영해 왔던 김인현 고려대 교수의 정년을 한 학기 앞두고 후임 교수 채용 소식이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미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경희대 등에서 해상법을 강의했던 교수들의 정년퇴임 후 학교에서 후임 교수를 채용하지 않아 해상법 강좌가 사라졌다”며, “로스쿨 체재로 전환되면서 해상법이 더 이상 변호사 시험에서 출제되지 않는 것”을 이유로 지적했다.


해상법은 국가 생존과 함께 가야

한국에서 해상법이 푸대접 받아야 할 이유가 있나? 한국은 남북 분단의 삼면이 바다로 ‘섬나라’와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자원 또한 제한적이다. 따라서 국가 간 무역은 한국의 생존과 연관돼 있다. 2023년 국내 28개 무역항 수출입 물동량은 13억 2,013만 톤. 이들 물동량 중 99.7%는 선박으로 운송된다. 이런 배경은 △보유 선박 척수 기준 세계 7위, △컨테이너항만 교통량 기준 세계 4위, △부산항 항만규모 기준 세계 6위 △선박 건조 수 기준 세계 1위 등 해운·항만·조선 산업을 세계적으로 수위(首位) 수준으로 이끌었다.

해상법을 전공한 모 박사는 “국가 내 전반의 산업은 관련 법률에 의거 운영되는데 이들 법률이 적기에 제정되거나 개정되지 않는다면 그 산업의 종멸은 시간문제일 뿐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또 “만약 최고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이나 로스쿨에서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 또는 변호사 시험에 비 출제 과목이라는 이유로 해상법 전공 교수를 채용하지 않거나 해당 과목을 폐지한다면 우리나라 대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해양산업 전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해상법은 해양산업 성장에 버팀목이자 윤활제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지난 1월 <현대해양>과의 인터뷰에서 “해상법이 분쟁해결수단뿐 아니라 해상거래 및 해양산업 촉진역할도 한다”고 해상법을 설명했다. 해운회사와 관련된 회사법·상거래법·경쟁법·도산법 등과 선박에 관한 해상보험법, 선박건조법, 선박금융법·선박법, 선박안전법, 해양교통법 등 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에서 소관 하는 100여 개의 공법들. 이뿐 아니라 무역, 해운, 선박 등의 국제성(國際性)에 따른 국제사법, 각종 국제해사협약 등도 해상법 범주에 포함된다. 이렇게 넓은 해상법 분야를 몇 개 대학이 몇 명의 교수진으로 단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반면 중국은 2010년에 이미 일본을 앞서 세계 2위 경제 규모가 됐고 무역규모도 세계 1위다. 국내에서 해상법을 공부하고 있는 한 중국 유학생은 “중국 전체 해상법 교수가 몇 명인지를 알 수는 없지만 대련해사대학 및 상해해사대학에서 해상 관련 법률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교수·강사만 하더라도 50여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해사법원 설치되려나?

한편 해상법 전공 박사과정에 있는 A씨는 “해상법 전문가(학자) 수요가 많지 않아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희망은 가지고 있다”며 “해사법원과 같은 물적 인프라가 국내에 구축되고, 국내 해상법이 준거법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지면 해상법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 희망적 시나리오가 펼쳐지지 않을 경우에는 국내에서 해상법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부연했다.

현재 해사법원 설치와 관련해 7개 법안이 국회 계류 상태다. 오는 4월 총선이 있는 만큼 이번 21대 국회에서 이들 법안 통과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해사법원 설치는 「법원조직법」에 의거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은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데, 윤상현 의원(2020.6.3), 안병길 의원(2020.6.12), 배준영 의원(2020.12.9), 이수진 의원(2021.2.16), 장동혁 의원(2022.11.25), 박재호 의원(2023.5.17.), 박찬대 의원(2023.10.18.) 등 총 7명 의원이 이 법률의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법률·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20대 국회 때는 해사법원 설립이 논의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이 설립에 동의하지 않아 관련 법안들이 폐기됐지만,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해사법원 설립을 공약한 바 있고, 현 사법부도 해사법원 설치에 동의하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실무자 중심 교육과정 도입

서울에서 실무자들의 해상법 공부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매년 김 교수 제자로 석·박사 대학원과정 지원자가 수 명에 달하고, 김 교수가 운영하는 다양한 해상법 세미나·포럼 등의 참석자 수는 다른 모임과 비교해 월등하기에.

국내 S 대학에서 법학박사 과정을 수료한 L씨는 “이전(사법시험)과 같이 해상법이 변호사 시험출재 과목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로스쿨 제도 하에서는 대학 내 해상법 과정 유치가 어렵다고 보며, 종국으로는 해상법 학습은 실무자 중심의 교육 과정만 남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그는 “이 또한 해상법 학습에 대한 니즈가 있는 실무자가 존재할 때만 가능한 얘기라며, 해사법원뿐만 아니라 해사중재원 설치, 준거법의 국내법화, 재판관할의 국내화 등을 법률 및 산업계가 함께 추진해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묘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 BIMCO, Lloyd’s Maritime Institute, Singapore College of Insurance 등 유수 기관에서 해사 관련 법률 및 보험 온/오프 강좌·세미나·워크숍 등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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