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태안 황도 붕기 풍어제를 가다
[르포] 태안 황도 붕기 풍어제를 가다
  • 유승완 기자
  • 승인 2024.02.19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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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의 꿈 문화로 풀어내는 풍어제
만선의 꿈을 휘날리는 어선
만선의 꿈을 휘날리고 있는 어선

[현대해양]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이다. 이는 조선의 중심 사상을 차지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 반면 어촌과 수산은 상대적으로 등한시됐으며 이에 따라 그 문화 또한 오랫동안 조명받지 못했다. 근래에 들어서야 그 중요성이 인식돼, 2015년 국가중요어업유산 1호로 제주해녀어업이 지정되기 시작해 24년 현재까지 총 13개의 어업유산이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어촌은 전통 어로 기술과 도구를 비롯하여 상징물·음식·공동체 문화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문화자원의 보고다. 갑진년 설을 맞이해 정월 초이튿날, 황도 붕기 풍어제 현장을 다녀왔다. 

豊漁祭, 문자 그대로 풀어본다면 '고기가 많이 나길 기원하는 제의'이다. 농촌에서 풍농을 비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어촌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부의 밭이 풍요로워야 한 해를 잘 날 수 있듯이 어촌에서는 어부의 그물이 가득 차야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다. 특히, 논농사가 어려운 섬 지역에서는 쌀 구경이 어려워서 예전에는 [쌀 서말 먹어보고 시집간 처녀 없다]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고구마나 보리만으로 끼니를 잇지 않기 위해서는 시장에 내다 팔 고기를 많이 잡아야 했다.

당집 앞에 꽂혀있는 붕기. 붕기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은 만선의 배에 다는 깃발'을 의미한다.
당집 앞에 꽂혀있는 붕기.
붕기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은 만선의 배에 다는 깃발'을 의미한다.

바다는 인간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육지와는 달라서 수많은 변수에 노출된다. 조류나 바람이 좋지 않아 고기를 잡지 못해 빈 배로 돌아오거나, 사나운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심한 풍랑에 수사(水死)를 당하거나,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망망대해에서 해적을 만나 모든 재산을 강탈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러한 위험에서 보호받기 위해 어촌에서는 해신을 모시는 신앙이 오랫동안 성행해왔다. 

황도리 당집 내부
황도리 당집 내부

우리 바다는 강한 성격의 무신들이 지키고 있다. 연평도·위도 등 서해안 일대에서 모시는 임경업 장군, 어청도·외연도·녹도 등 남쪽에는 전횡 장군, 추자도 등 제주 일대에서는 최영 장군을 모시며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고 어선과 어부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기가 강하고 힘이 센 장군신들에게 예와 정성을 갖추어 제의를 드려 보호를 받고 풍어와 만선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다. 즉, 풍어제는 우리 어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우리의 민속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바다는 GPS와 어군탐지기로 실시간 해역탐지가 가능하고, 그 안전은 수협 어선안전조업국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수염이 수북히 난 장군신에게 풍어와 안녕을 의존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어제는 우리 어촌 곳곳에 존속되고 있다. [현대해양]은 지난 11일 개최된 황도 붕기 풍어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세경돌기: 마을을 한바퀴 돌며 집집마다 풍어와 가정의 안녕을 기원한다
세경돌기: 마을을 한바퀴 돌며 집집마다 풍어와 가정의 안녕을 기원한다

매년 정월 초이틀에서 초사흘에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 마을에서 개최되는 황도 붕기 풍어제는 1991년 충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안개 자욱한 밤에 어부들이 항로를 잃고 표류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당집이 있는 당산 쪽에서 불빛이 발했다. 어부들은 이것이 육지로 안내하는 불빛이라 믿었고, 과연 그 불빛을 따라가 보니 무사히 황도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당산을 신성시 여기며, 당집을 짓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니, 이것이 황도 붕기 풍어제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한 편의 전설을 떠올리게 하는 풍어제의 유래에 비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기원한 풍어제의 내용은 무척이나 현실적이었다. 첫째로는 태안의 주 어획물인 굴과 바지락, 대하, 꽃게 등이 많이 잡히기를 기원했고, 둘째로는 바다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마을 주민들 간의 신뢰가 깨지지 않고 오래오래 화목함을 유지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주로 희망의 메시지였다. <본굿> 제의식에서 만신은 “계묘년에는 바지락 조황이 좋지 않았다. 껍데기뿐인 바지락이 많았고 품질이 균일하지 않았다. 하지만 갑진년에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고, 풍어의 해가 될 것”이라고 전하며 마을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마을 구성원들이 풍어를 함께 기원하고 있다
마을 구성원들이 풍어를 함께 기원하고 있다

“조개가 작년보다 낫다고 하니까 맘이라도 좋아”

풍어제를 지켜보던 마을 주민이 혼잣말 하는 것을 들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말 한마디로 사람 마음에 시퍼런 멍을 새기기도 하고 한 해를 버틸 희망을 품게 하기도 한다. 

기자가 현장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화합’과 ‘화목’이었다. 고기가 아무리 많이 잡힌다고 하더라도, 사람들 간의 화합이 없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풍어다. 아니, 오히려 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마을에 불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안 잡느니만 못한 것이 된다. 마을은 공동체고, 어촌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고기보다는 사람이 항상 앞선다. 

마을 일원이 어우러져 풍어제를 즐기고 있다
마을 일원이 어우러져 풍어제를 즐기고 있다

김혜경 만신은 이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화려한 복장을 한 만신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고, 이장, 어촌계장, 선주협회 회장 등 마을과 어촌계 구성원들을 한 명씩 호명하며 굿판에 불러냈다. 갑진년의 황도 붕기 풍어제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어우러져 한해의 묵은 갈등과 차마 그간 말하지 못했던 서운함을 한 데 푸는 화합의 시공간이었다. 문화인류학자로써 제의와 축제성을 연구한 빅터 터너(Victor Turner, 1920-1983)는 이 같은 신성한 순간 발생하는 분리의 특성을 리미널리티(liminality)라 규정하고 설명한 바 있다. 손목시계는 여느 때와 같이 똑바로 가고 있더라도, 사람들이 모여 특별한 시간을 가질 때 그곳에 참여하고 있는 구성원들은 일상적인 시공간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신성한 순간의 마법은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서 오는 것이 아닌, 마을 사람들에게서 온다는 것이다.

어촌의 화합 뿐만 아니라 걱정도 있었다. 김혜경 만신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언 30년 넘게 굴과 바지락을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 수출하여 엔화와 달러화를 많이 벌게 해달라는 축원을 빌었는데, 이제는 수출이 예전만큼 잘 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어촌 인구가 줄어서 수산물을 잡으러 나갈 배를 부리는 사람이 없다”며 걱정했다.

“황도리 어촌마을의 안녕과 기원을 평생 빌어드렸는데, 요즈음엔 마을 어르신들이 한해가 다르게 돌아가시는 것이 다반사다. 계묘년에도 7분이 돌아가셨다. 어촌에 젊은 사람이 없고, 배를 부리는 사람이 없으니 어촌이 비어간다”며 어촌 소멸 문제에 대해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김혜경 만신
김혜경 만신

또한 우리바다가 직면한 해양오염이나 남획,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도 제의식에서 폭넓게 거론됐다. 어촌계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있는 <본굿>에서는 “잔고기는 놔주고 큰고기만 잡자”, “어촌계도 해양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갖자” 는 내용을 거듭 언급하며, 미세플라스틱 문제와 폐어구로 인한 유령어업 문제까지 거론하며 지속가능한 어업에 대한 강조를 수차례 했다. 수산의 위기를 앞둔 현 세태에서 황도리 마을이 존속하고 번창하기 위해서는 주민 스스로부터 바다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경각심을 다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월 초이틀날의 다짐으로 손색이 없었다.

[현대해양]이 만난 황도 붕기 풍어제는 종교 제의가 아닌 황도리 마을과 어민들의 마을 축제이자 화합의 장이었다. 그것은 우리 어촌문화의 얼과 뿌리였다. 황도리 마을도 어촌인구 소멸, 기후변화, 해양오염 등 여느 어촌이나 겪고 있는 문제들을 안고 있었지만 그러한 위기 속에서 마을 사람들간의 화합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빛나고 있었다. 

풍어제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 늦은 밤까지 함께 어우러져 화합을 도모했다
풍어제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 늦은 밤까지 함께 어우러져 화합을 도모했다

풍어제는 단순히 고기를 많이 잡기 위한 제의가 아니다. 풍어제는 어촌의 축제이며, 그 목적은 어촌 마을사람들의 안녕을 빌고 해묵은 갈등과 오해를 풀고 어촌의 화합을 이루는 것에 있다. 
우리 어촌 문화를 잘 살펴보면 중국의 용선 축제나 태국의 송끄란 축제, 인도네시아의 피니시 기술문화 못잖은, 어쩌면 더 훌륭한 구슬들이 많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러한 우리 어촌문화를 우리 수산인이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아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더 큰 축제, 더 큰 화합의 장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그 구슬들을 꿰어야 한다. 수산의 위기는 고기를 못 잡는 것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합심하여 우리의 어촌 문화들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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