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차례상에 올라오는 8도 수산물
설 차례상에 올라오는 8도 수산물
  • 유승완 기자
  • 승인 2024.02.08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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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보면 지역 정체성이 보여...

[현대해양]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다가왔다. 작년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며 한해를 뒤돌아본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설날이다. 연말이 친구들과의 시간이라면, 설날은 가족과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이 바뀌면 음식도 바뀌기 마련이다. 연말 회식이 입맛을 자극하고 술을 부르는 기름진 메뉴였다면, 설에는 정갈하고 의미 있는 명절 음식을 앞에 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가족 친지끼리 모여 덕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먹는 음식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 
서구적인 식문화 유입 및 확산과 함께 요즘에는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다고들 한다. 제사상에 피자나 햄버거를 올리는 집도 있을 만큼 현대화된 우리 입맛만큼이나 제사상 또한 많은 변화를 거치고 있는 변화무쌍한 시대다. 하지만, 이에 비해 명절 차례상은 아직도 비교적 보수성이 강하고 지역성을 짙게 띠고 있다. 
그래서인지 설 차례상을 준비하는 시간은 내 조상의 뿌리와 출신 지역에 관한 생각을 해보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는 ‘네가 먹는 것이 바로 너를 정의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회가 문화적으로 발전할수록 ‘무엇을 먹는가?’는 무척이나 복잡한 선택 행위의 결과가 되기도 하며, 그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정의할 수 있는 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갑진년 설, 나와 우리를 되돌아보기 위해 ‘명절 차례상 위의 수산물’을 주제로 지역별 설 차례 음식을 살펴봤다.

 

서울·경기
- 통북어, 조기, 가자미
차량이나 열차가 없던 시절, 바다와 거리가 꽤 있었던 내륙 서울·경기 지역에서는 말린 생선을 주로 차례상에 올렸다. 명태를 잡아 말려둔 북어는 대표적인 제수용품이었다. 특히, 내장만을 제거하고 머리와 꼬리의 모양을 온전히 살려 그대로 말린 통북어가 선호됐는데, 지방질이 적어 담백한 맛을 내는 명태는 보관할 때에도 쉽게 변질되거나 상하지 않아 장거리 유통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어는 굿판에서도 자주 사용되며 신성한 생선의 지위를 누렸다. 굴비 또한 비슷한 이유로 서울과 경기권의 차례상에 올려졌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설 명절을 앞두고 제수를 사러 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설 명절을 앞두고 제수를 사러 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강원도
- 가자미, 명태, 대구, 문어

강원도 영동지역은 동해라는 풍요로운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고성, 속초, 강릉, 동해, 삼척 등 대표적인 동해안 지역에서는 저서성 어류인 가자미를 자주 올렸다. 1980년도에 강원도 앞바다에서만 10만 톤 가깝게 잡혔던 명태는 명실상부 강원도의 대표 어종이자 지역 차례상에도 빠짐없이 올려진 재료였다. 기후변화로 인해 명태가 사라져 어획량이 없는 지금도 여전히 명태를 올리던 풍습이 남아있어 러시아 명태를 수입하여 명태전을 부쳐 올리고 있다. 

한 시민이 제수용 동태포를 살펴보고 있다.
제수용 동태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민

충청도
- 우럭, 대구, 민어, 가오리, 서대, 오징어

서해안을 마주한 충청권 해안지역에서는 다채로운 생선이 차례상을 장식하고 있는데, 그 특성은 우럭의 사용에서 드러난다. 서울·경기·강원 지역에서 북어포가 빠지지 않는다면, 충청 서해안 지역에서는 우럭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우럭을 반으로 쪼개서 바닷바람에 말린 반건조 우럭포는 집안 제사나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한 시민이 제수용 병어를 고르고 있다.
한 시민이 수산시장에서  병어를 고르고 있다

전라도 
- 홍어, 병어, 민어, 양태, 조기, 서대, 도미

전라도의 제사상, 차례상, 잔칫상에서 단 한 마리의 생선만 올려야 한다면 그것은 응당 홍어의 자리다. 주인이 어떤 홍어를 올렸냐에 따라 손님들이 그 집의 손님 접대를 평가한다고 할 정도로 홍어는 상징적인 생선이다. 남도 지역에서는 홍어를 찜과 회로 올리며, 내륙지의 비중이 높은 북도 지역에서는 전을 부쳐 올린다. 이 외에도 고흥과 여수 등 남해안 지역에서는 양태를 꼭 올리는데 역시 반건조로 말려두었다가 쪄서 상에 올린다. 

제수용 홍어를 손질하고 있는 상인
제수용 홍어를 손질하고 있는 상인

경상도
- 상어, 문어, 도미, 가자미, 방어, 해삼

경상도의 차례상에서 가장 특징적인 고기라고 하면 돔베기를 꼽아야 할 것이다. 상어를 ‘돔박, 돔박 네모나게 썰었다’는 말에서 유래됐다는 돔베기는 특이하게도 경상도 내륙지에서도 명절상에 올린다. 돔베기는 다른 생선들과는 다르게 통으로 올리거나 말린 어포 형태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네모난 모양이 잘 보이게 꼬지에 꿰어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포항이나 영덕 등 항구에서 고기를 썰어서 염장한 후 등짐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짭조름하다. 경상도에서는 조상을 모실 때 큰 고기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문화가 있는데, 상어는 몸집이 크기 때문에 올린다고 한다. 또한, 포항에서는 개복치로 묵을 만들어 올리고 통영에서는 어전(魚煎)으로 해삼통지짐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 독특하다. 안동에서는 문어가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데, 먹물을 쓰는 모습이 선비를 닮았다고 해서 글월 문(文)자를 이름에 달아준 문어는 ‘선비의 고장’ 안동 차례상에서 빠질 수 없는 수산물이다.

용산구에 위치한 대형 마트에서는 데친 문어 할인 행사를 펼쳤다.
용산구에 위치한 한 대형 마트에서는 데친 문어 할인 행사를 펼쳤다.

제주도
- 옥돔, 전복, 문어, 방어, 소라

제주 남부해역에서 주로 잡힌다는 제주 특산 어종인 옥돔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귀한 취급을 받으며 명절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내리는 생선이다. 주로 반건조된 옥돔을 구워서 올린다. 제주에서는 명절 차례상에 올리는 산적을 ‘적갈’이라고 하는데, 방어를 포를 떠서 꼬지에 꽂기도 하고, 문어나 전복, 소라 등으로 적갈을 만들어 올린다고 한다. 

차례상에 올릴 돔을 고르고 있는 시민
차례상에 올릴 돔을 고르고 있는 시민

 

반면 지역을 불문하고 절대 올려서는 안 되는 생선도 있었다. 메기나 가물치 등 비늘이 없는 생선이나 ‘치’자가 들어가는 꽁치, 갈치, 삼치 등의 생선은 일상식에서는 얼마든지 먹어도 좋지만, 차례나 제사상에 올려서는 안 되는 어종이다. <치>가 낮은 지위의 생선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일상식(日常食)과 특별식은 ‘언제 먹는 음식인가’에 따라 구분된다. “명절 제수 살 때는 흥정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대한 좋은 물건, 부정 타지 않은 물건을 조상에게 대접하기 위해 값을 깎지 않고 제수를 마련해야 한다는 속뜻이 담겨있다. 새해를 맞이하며 조상에게 감사드리는 날, ‘하급 생선’을 차례상에 올리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겼다.

명절은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친지들의 반가운 얼굴을 보고 함께 식사를 나누는 기쁜 시간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과거의 조상을 통해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비일상의 시간이다. 따라서 차례 음식을 대하는 태도도 일상적인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는 달라야 할 것이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찾아 젓가락을 들기보다는 차례상 위의 제수를 찬찬히 하나씩 짚어보면서 그 의미를 곱씹어보는 것도 새해를 의미 있게 대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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