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극지연구소장 “ 임기 3년이 아닌, 그 이후의 미래를 위해 ”
신형철 극지연구소장 “ 임기 3년이 아닌, 그 이후의 미래를 위해 ”
  • 김엘진 기자
  • 승인 2024.02.0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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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탐색 넘어 프레임 깨는 연구로

[현대해양] 신형철 극지연구소장은 지난해 12월 14일 제8대 극지연구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해양학과 석사, 호주 태즈매니아 대학교에서 해양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2년 세종기지 월동연구대원으로 남극과 인연을 맺은 뒤 2002년 극지연구소에 입소했다. 이후 극지생물해양연구부장,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 국제협력실장, 정책협력부장, 부소장 등을 역임한 해양생물 전문가다. 2023년 5월에는 한국해양학회 제30대 회장으로도 선출돼 지난 1월 임기를 시작한 그는 활발한 과학 외교 활동으로 대한민국 극지 활동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해왔다.

신 소장은 “내·외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이 자리에 선 만큼 큰 책임감을 느끼고 질적 발전을 이루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며, “우수한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우리나라의 과학외교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힘쓰겠다”라고 전했다.
 

그간 활발한 과학 외교 활동을 해왔다고…

연구를 포함 남극에서 진행되는 모든 활동은 국제적 협력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연구소의 정책협력부장과 부소장으로 있는 동안, 북극연구 운영자 포럼 부의장, 남극 프로그램 운영자위원회 부의장, 한국북극컨소시엄 사무총장 등 여러 자리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와 극지연구소가 포함한 국제 협력체계를 만들기 위해 힘써왔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중앙 북극해 비규제 어업 방지 협정(CAOFA:Agreement to Prevent Unregulated High Seas Fisheries in the Central Arctic Ocean)이라는 중요한 국제협약의 창립 당사국총회와 2차 총회가 2년간 연속으로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데 역할을 하기도 했죠.

CAOFA는 중앙 북극해 공해역에서 무분별한 어업 행위와 남획을 미리 방지하고 지속가능한 어업을 보장하기 위한 협약입니다. 유럽연합(EU), 북극 연안 5개국, 일본, 중국, 아이슬란드 등이 주도한 이 회의에 연구소와 정부 대표단으로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는 비 북극권 국가임에도 원초서명국으로 다른 국가들과 북극의 주요 의제를 다루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2022년 2월 남극 동물플랑크톤 연구현장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있는 연구원들과 신형철 당시 해양연구본부 책임연구원
2022년 2월 남극 동물플랑크톤 연구현장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있는 연구원들과 신형철 당시 해양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임기 동안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지?

“위기를 연구의 수준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한 리더였다”라는 평을 기대합니다. 연구소는 오는 4월 16일 개소 20주년을 맞습니다. 그리고 현재 여러가지 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남극 해빙이 녹으며 보급 차질을 겪고 있고, 물가 상승과 연료비 상승, 그리고 외부 환경변화에 따른 재정상의 어려움까지… 연구소 살림은 말 그대로 빠듯합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정면으로 맞아들일 때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의 극지연구가 ‘1.0’이었다면, 극지연구 ‘2.0’을 선포하려 합니다.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을, 정해진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왜’를 고민하고 끊임없이 해답을 찾는 과정을, 지금 우리 사회의 요구를 이해하고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관성적이고 폐쇄적인 연구보다는 작아도 의미 있는 연구들을 지원하고, 분야 간 협업이나 자율적 임무 수행이 가능한 단순하고 효율적인 형태로 조직을 개선하며, 국내외 극지 인프라 활용에 대한 요구를 수용해 진정한 의미에서 외부와 협업·공유하고자 합니다.

다음 중요 과제인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와 ‘남극 내륙기지 건설’은 이번 제 임기 후의 일이지만 더 멀리 뛰기 위해 한 발을 뒤로 내딛는 마음으로, 연착륙의 시간이 되도록 하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알겠습니다.


극지연구소를 운영하며 어떤 부분에 가장 집중하려 하나?

극지연구 초기엔 남극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취였습니다. 무언가를 발견하면 바로 논문이 되기도 했죠. 그러나 지금은 남극 전역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시간상으로는 과거 100만 년 전부터 미래 100년까지 내다봅니다. 연구 시료를 얻는 것도 처음엔 기지 주변에서 쉽게 수집했지만, 지금은 위성, 원격 관측 자료, 모델링 연구 결괏값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얻고 있습니다. 많은 발전이 있었죠.

앞으로의 연구는 또 한 번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프레임의 전환을 불러올 만한 새로운 기준을 제공하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특히, 사회적인 효용이 있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 과학자들이 처음 남극에서 오존을 연구했을 땐 그 가치를 몰랐지만, 이는 결국 CFC(할론, 트라이클로로에테인 및 기타 오존층 파괴 물질 포함)의 사용을 중지시켰습니다. 연구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규범을 만든 것이죠. 특히 지금까지 극지연구가 ‘탐색’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탐색의 결과로 ‘개발’하거나 민간 회사 등에 ‘제공’해 ‘실생활’에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전의 수집이나 탐색도 중요하고 모두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질적인 도약을 꾀해야 할 시기입니다.
 

2023.12.18. 취임식에서 소감을 전하고 있는 신형철 극지연구소장
2023.12.18. 취임식에서 소감을 전하고 있는 신형철 극지연구소장

예산이 준 것으로 아는데…

현재 가장 큰 현안이 예산 사용의 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극지 연구는 속성상 경직성 고정 비용이 매우 크고, 이러한 바탕이 있어야만 연구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위기를 효율성을 높이고, 내적 성장을 꾀할 기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연구선이나 과학기지 운영 비용은 줄이는 데 한계가 있어, 현재는 인프라 비용을 최대한 보전하고, 연구비 축소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는 저희의 최우선 과제인데 이 공정도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남극 내륙의 연구 속도도 조금 더뎌질 것 같습니다. 그게 가장 우려스럽죠. 내년도 예산 편성을 위해서는 우선 현재 고정 비용 등에 대해 이해를 구하며 설득도 하고 새로운 연구 사업도 제안할 계획입니다.


남극 내륙 제3기지 건설은 왜 필요한가?

세 남극기지는 상호보완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빠른 속도로 따뜻해지고 있는 남극 가장자리 해안가에 있는 세종기지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를 연구하기에 최적지이며, 훨씬 고위도에 있는 장보고 기지는 빙상의 붕괴 등을 연구하기에 좋고 남극내륙연구의 관문이 됩니다. 내륙의 제3 기지는 심부빙하연구, 고층대기와 천문 연구 등 남극 내륙에서만 가능한 중요한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합니다.

남극기지를 짓기 위해선 우선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에서 계획을 발표하고 그 가치와 환경친화성을 인정받아 당사국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2027년 ATCM 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는데, 그때 환경영향평가 결과와 함께 승인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이후 2030년까지 기지 건설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는 기지의 대략적인 위치와 경로를 개척한 상황으로 환경영향평가에 조만간 착수할 계획이며, 가능한 내륙연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최남단은 마라도가 아닌 세종기지이고 장보고기지이다”라고 말해왔습니다. 이젠 장보고기지로부터 남쪽으로 1,512km 내려온 남극 내륙기지 후보지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K-루트 탐사팀이 지난 1월 2일 남극 내륙기지 후보지에 도착했습니다. 끊임없는 눈보라와 위험한 크레바스들을 수도 없이 넘어 도착한 그곳에 전 세계 6번째로 우리나라의 남극 내륙기지가 설 것입니다.

우리나라 극지연구의 역사가 매초 새롭게 쓰일 극지가 우리나라의 최남단이 아닐까요?


계획 대부분이 임기 내에 이뤄지는 계획이 아니다. 성과 욕심은 없나?

성과를 바로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을 위해 현재 상황에서 가장 최적의 목표 시기를 무리하게 당기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큰 성과를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정성과 영혼이 담긴 준비 과정이 필요하고, 그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저는 평소 공을 세우고자 일하지 말고 덕을 쌓는 마음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저도 당연히 뭔가 남기려고 노력하겠지만, 저의 눈은 당장 3년 후가 아닌 그 뒤의 미래를 향해 있을 것이고 제가 퇴직한 후 여기에서 일할 사람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기후위기의 시대, 극지연구소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오늘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책임 있는 행동은 없다”라는 어느 선각자의 말처럼, 미래를 위해 오늘 어려움을 미리 견뎌내는 것은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극지연구소 소장으로 제게 허락된 약 2만 6,000시간 동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작은 시도라도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과학외교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우수 연구성과 창출에 진력하겠습니다. 또한, 극지연구소 백서 2030을 만들어 극지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대한민국의 미래 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시작된 기후위기의 시대, 쉬운 길 대신 어려움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 마음가짐으로 쇄신에 힘쓰겠습니다.

2024년 1월 남극특별보호구역에서 현장 연구활동을 점검하고 있는 연구원들과 신형철 소장
2024년 1월 남극특별보호구역에서 현장 연구활동을 점검하고 있는 연구원들과 신형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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