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10. 보험자 면책요건인 감항능력 결여
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10. 보험자 면책요건인 감항능력 결여
  •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 승인 2024.01.11 1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현대해양] 1. 당사자

부산고등법원 2019. 12. 19. 선고 2017나55346 판결
원고/상고인 A사
피소/피상고인 B사, C조합
 

2. 사실관계

원고는 예선업을 영위하는 회사로서 2013. 10. 7. 피고 B보험회사와 일정한 보험기간 동안 이 사건 선박에 발생하는 손해를 보상하기로 하는 선박보험계약('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또 원고는 2013. 10. 10. 공제사업자 피고 C조합과 일정 공제기간 동안 이 사건 선박에 발생하는 손해를 보상하기로 하는 선박공제계약('이 사건 공제계약')을 체결하였다. 한편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에는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이 포함되어 있는데, 위 약관은 '이 보험은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른다고 규정한다.

이 사건 선박은 2013. 12. 12. 부선 3척을 예인하여 중국 상해항을 출항하여 탄자니아 탕가항을 향해 항해하던 중('이 사건 항해') 2013. 12. 29. 말레이시아 쿠칭항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였다('이 사건 사고').
 

3. 법원의 판단

가. 감항능력 결여로 보험자가 면책되기 위한 요건

영국해상보험법 제39조 제4항은 "어느 선박이 부보된 해상사업에서 통상 일어날 수 있는 해상위험을 견디어낼 수 있을 만큼 모든 점에서 상당히 적합할 때에는 감항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규정하고, 제39조 제5항은 "기간보험에서는 해상사업의 어떤 단계에서이든 선박이 감항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묵시적 담보가 없다. 그러나 피보험자가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하였다면 보험자는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하여 발생한 일체의 손해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항해보험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감항능력 불비로 인한 보험자의 면책을 인정하지만, 기간보험의 경우에는 그러한 묵시적 담보가 인정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피보험자가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한 경우에 한하여 보험자가 면책될 수 있다.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과 같은 선박 기간보험에서 감항능력 결여로 인하여 보험자가 면책되기 위해서는 손해가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어야 하고, 피보험자가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감항능력의 결여와 보험사고 사이에 인과관계, 즉 손해의 일부나 전부가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되, 이러한 요건에 대한 증명책임은 보험자가 부담한다.

나. 감항능력 결여와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

1) 관련 법리

영국해상보험법 제39조 제5항 후문은 피보험자가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하였다면 보험자는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하여 발생한 일체의 손해에 대해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요구한다. 위 규정이 인과관계에 관하여 사용하는 '인하여’라는 표현은 근인관계를 의미하는 'proximately caused by'보다 그 범위가 넓어서 감항능력 결여와 손해 발생 사이에 근인관계가 없더라도 감항능력 결여가 손해 발생의 먼 원인(遠因, remote cause) 내지 조건이 되거나, 여러 원인(原因) 중 하나가 되는 경우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2) 판단

이 사건 선박은 겨울철에 원양항로를 예인운항하면서 항로와 계절별 특성에 적합하지 않은 예인 방법을 사용하였고, 기상악화로 인하여 예인줄 간의 잦은 간섭현상이 발생하여 부선의 예인줄이 끊어지자 무리한 연결을 시도하다가 부선들과의 충돌이 야기되어 발생한 파공 부위로 해수가 유입되어 결국 침몰하기에 이르렀다. 예인 방식의 부적절함에 따른 이 사건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는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이거나, 적어도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원인(遠因) 내지 조건이 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 사건 사고 발생과 사이에 영국해상보험법 제39조 제5항 후문에서 요구하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다. 감항능력 결여에 대한 원고의 악의(privity)가 인정되는지

1) 관련 법리

선박기간보험에 있어 감항능력 결여로 인한 보험자의 면책요건으로서 영국해상보험법 제39조 제5항 후문에서 정한 피보험자의 악의(privity)는 영미법상의 개념으로서 피보험자가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의 원인이 된 사실뿐 아니라, 그 원인된 사실로 인하여 해당 선박이 통상적인 해상위험을 견디어낼 수 없게 된 사실, 즉 감항능력이 결여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감항능력이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아는 것(positive knowledge of unseaworthiness)뿐 아니라, 감항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갖추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turning the blind eyes to unseaworthiness)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2) 판단

원고는 이 사건 항해의 개시 당시 이 사건 선박이 겨울에 상해에서 탄자니아까지 원양항로를 통하여 3척의 부선을 예인 운항할 만한 감항능력을 갖추지 못하였음을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감항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갖추기 위한 조치를 회피한 채 그대로 발항하도록 하였다.

라. 소결론

이 사건 사고는 피보험자인 원고가 선박의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들은 그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보상할 책임이 없다.
 

4. 본 판결의 시사점

영국해상보험법 제39조 제4항 및 동조 제5항 후문 등에 제시되어 있는 감항능력 결여로 인한 보험자의 면책 요건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인과관계와 악의의 의미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인과관계는 여러 원인 중 하나에 해당하더라도 적용된다고 판시하며 광의의 인과관계도 포함시켰고, 악의에 대하여는 감항능력 결여의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조치하지 않는 소극적 악의까지 포함시킴으로써 적용 범위를 넓혔다.

보험자의 입장에서 선박의 감항능력에 대한 기준이 모호할뿐더러 매 항해에 따라 그 기준은 달라지고, 보험자가 보험 대상인 모든 선박의 감항능력을 검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감항능력 부족으로 인한 면책이 보다 실효성 있게 적용되기 위하여 그 요건을 너무 제한적으로 해석하여서는 안 되며, 이에 부합하는 법원의 판단은 타당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