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71. 성산일출봉, 아침 해를 맞는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71. 성산일출봉, 아침 해를 맞는다
  • 김준 박사
  • 승인 2024.01.1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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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포
광치기 해변에서 본 일출
광치기 해변에서 본 일출

[현대해양] 새해가 되니 마음이 설렌다. 일상과 다른 공간에서 새해를 맞고 싶다. 지난해 다녀온 곳에서 찾는다면 단연코 성산일출봉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제주공항이나 제주항에서 성산포로 가는 길은 큰 길이 대신 1100도로가 좋다. 가사리에 들러보기 위해서다. 어느 교통편을 이용하든 당일 성산일출봉에 오르는 것은 버겁다. 그래서 가사리에서 성산으로 올라오는 아침을 맞기 위해서다. 더 그리운 것은 억새너머 물영아리, 민오름, 머체오름 등 여러 오름의 검은 실루엣이다. 불청객처럼 솟은 풍력발전기가 거슬리지만 ‘  름정원’에 올라 보면 좋다. 그렇게 오름에 빠져 있을 무렵 풍력발전기 사이로 해가 오른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에너지를 얻는 대신에 예전에 기억한 가사리의 아침은 잃었다. 그나마 한라산과 오름의 경관이 그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저 경관도 비행장이 만들어진다면 무사할지 알 수 없다. 내일 아침은 성산일출봉에서 맞는다. 대신에 가사리 설오름에 올라도 좋다.

성산일출봉에서 아침해를 맞는 사람들
성산일출봉에서 아침해를 맞는 사람들

우리나라 제1호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은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있는 응회구다. 응회구와 회구는 어떻게 다를까. 바다에서 분출한 수성화산의 높이가 50m 이상이고, 경사가 25° 이상인 화산체를 말한다. 화구는 화산이 폭발한 뒤 마그마가 흘러나와 분화구 가장자리에 담처럼 굳어져 만들어진다. 화구에 물이 차면 화구호가 된다. 성산은 성 같은 모양을 한 산이라 주민들은 ‘성산오롬’이라 했다. 성산의 옛 이름은 ‘잣메’다.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 중기홍적세 때 조간대의 얕은 바닷속에서 불기둥이 솟구쳐 올라 물 밖으로 약 180m의 화산 성채를 만들어 냈다. 매일 아침 가장 먼저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는 아흔아홉 봉우리다. 외벽은 바다로 이어지는 해식애가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어 수성화산체의 단면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다. 직경 약 600m의 분화구 안에는 멸종위기 풍란 등 15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한다. 그리고 해안에는 약 120여 종의 해조류가 자생하고 있다. 최근 분화구는 대나무가 급증하고, 해안은 기후변화로 파래가 급증해 위협하고 있다.

용암이 흘러 켜켜이 쌓인 퇴적암이 부서져 검은 모래가 쌓여서 성산리와 고성리를 이어지면서 자연제방을 만들었다. 전형적인 육계도다. 덕분에 물이 들어올 때는 섬이 되었던 성산은 뭍이 되었다. 일출봉은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420호)이며, 일출봉 서쪽 기슭 수마포 해안에는 일제강점기 만든 18개의 일제동굴진지(등록문화재 제311호)가 있다. 성산일출봉 천연보호구역은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의 이름으로 한라산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3개 천연기념물 등과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세계지질공원이기도 하다.

제주도에는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천연보호구역, 문섬 및 범섬 천연보호구역, 차귀도 천연보호구역, 마라도 천연보호구역 등이 있다. 천연보호구역은 보호할 만한 천연기념물이 풍부하거나, 다양한 지질학적 과정 및 문화적 역사적 경관적 특성을 가진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대표하는 일정한 구역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다. 홍도, 설악산, 독도, 우포늪 등 우리나라에 11개의 천연기념물보호구역 중 제주도에 5개가 있다.

광치기 해변
광치기 해변

광치기의 시난고난한 섬살이

성산리와 고성리 사이의 해변을 광치기 해변이라 한다. 광치기는 떠오르는 아침 해가 많이 비추는 해변, 물이 빠지는 너른 평야처럼 펼쳐지는 모습 등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 통나무로 만든 테우(제주 전통배)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파도나 풍랑으로 목숨을 잃고 나무와 시신이 조류를 따라 밀려오는 해변이라 광치기라 했다고도 한다. 가족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성산포나 이근 마을 주민들은 이곳 해안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제주올레 1코스와 2코스 사이에 있다.

성산일출봉과 광치기 해변이 선물한 바다는 물질하기 좋은 어장이 되고, 문어가 서식하기 좋은 바다를 만들었다. 성산일출봉 주변은 최고의 마을 어장이다. 인근의 오조리나 고성리도 그 음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파도나 바람이나 모래를 막고 역시 마을 어장을 선물해 주었다. 여행객에 즐겨 찾는 제주 올레길이기도 하다. 새벽에 해변에서 본 바다는 하늘과 경계가 또렷하다. 하늘은 발그레, 바다는 짙은 하늘빛이다. 해안으로 밀려온 바다는 그 색이 옅어지다 광치기해변은 다시 검은 먹빛이다. 모래도 검은 모래다. 5천 년 동안 아침 해를 맞았으니 검게 탔을 것이다. 아니 숱한 아픔을 지켜봤으니 속이 검게 탔을지도 모른다. 주변에 밝고 맑은 조수 웅덩이가 대조적이다. 성산일출봉을 잘 보려면 광치기 해변에 들러야 한다. 땅의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곳이다. 나무에 나이테처럼 광치기에는 제주도의 시간을 살필 수 있다.

해녀들이 탈의장으로 이용했던 동굴진지
해녀들이 탈의장으로 이용했던 동굴진지

눈을 돌려 성산일출봉을 보면 해안에 검은 동굴이 있다. ‘제주 일출봉 해안 일제 동굴진지’라 는 곳으로, 1943년 전남의 광산 노동자를 동원하여 만든 곳이다. 그 시설물은 일(一)자형 동굴진지 15곳, 벙커형 동굴지지 2곳, 왕(王)자형 동굴진지 1곳이다. 그곳 해안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일자형 동굴진지는 길이가 30㎝로 연합군 함대를 향해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하여 만든 잠수정, 어뢰정, 모터 선박 등 특공 병기를 보관하던 곳이다. 제주도에는 이러한 특공 기지는 일출봉 외에 수우봉, 수월봉, 송악산, 삼매봉 등 5곳이다. 이곳 동굴진지는 성산포 해녀들이 물질할 때 이곳을 탈의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광치기해변의 우뭇개 일대는 또 4.3항쟁 당시 많은 민간인들이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뭇개는 해녀들의 목숨줄 같았던 우뭇가사리가 잘 자랐던 바위 해안이다. 서귀포 일대의 해녀들은 우뭇가사리 등 해조류를 싼값에 수탈하려는 것에서 대항해 해녀항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① 성산리와 한라산 ② 광치해변에서 만난 왕눈이물떼새③ 이생진 시인과 성산포 ④ 가시리에서 본 일출
① 성산리와 한라산 ② 광치해변에서 만난 왕눈이물떼새③ 이생진 시인과 성산포 ④ 가시리에서 본 일출

그곳에서 귀한 손님을 만났다. 그냥 지나칠뻔했다. 물새라면 저어새, 알락꼬리마도요 정도만 구분하는 ‘조맹(鳥盲)’이라 지인에게 동정을 요청하니 왕눈이물떼새란다. 캄차카 등지의 고위도 지역에서 번식하고 동남 남반구까지 날아가 월동하는 새다. 이동하는 거리가 너무 길어서 중간 쉼터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도 보충해야 한다. 그곳이 한국의 갯벌이다. 오조리나 종달리 갯벌도 그중에 하나다. 부리가 짧아 갯벌표층에 서식하는 갯지렁이들을 즐겨 먹는다. 광치기해변에는 물이 빠지면 조수웅덩이가 곳곳에 만들어진다. 제주도의 조수웅덩이는 바다의 끝이자 육지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성산리 해녀의 탈의장
성산리 해녀의 탈의장

성산일출봉에 오르다

동쪽바다가 더 붉어지자 광치기의 모래밭의 어둠은 더 짙어진다. 마음이 급하다. 급히 일출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급경사라 마음처럼 쉬 오를 수 없다. 일출봉으로 찾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많은 것에 놀랐다. 사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세계유산이 아니던가. 유럽여행을 갔을 때 찾았던 곳을 생각하면 대부분 세계유산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 세계자연유산은 ‘제주도 화산섬과 화산동굴’과 ‘한국의 갯벌’ 두 곳뿐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성산일출봉에 오르는 길은 두 길이다. 완만하게 돌아가는 길과 급경사지만 지름길이 있다. 체력에 맞게 시간에 맞게 선택하면 좋다. 이곳은 제주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응회암, 현무암, 송이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곳이다. 붉은색을 띤 작은 돌인 송이석은 오름의 내부를 채우고 있다. 바닷가에 용암이 흘러 굳은 검은 색 돌은 현무암이다. 그리고 응회암은 화산재가 쌓여 굳은 돌이다. 성산일출봉은 응회암 덩어리라 할만하다.

해가 뜨는 시간은 잠깐이다. 모두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일출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고개를 돌려 오조리와 성산리를 내려보았다. 평화롭다. 근현대사의 아픔을 알기에 이 시간이 더 소중하다. 성산일출봉 기슭에서 우도를 보아야 한다. 이 둘은 바다에서 솟은 다른 모양을 한 자매와 같다. 우도는 섬이 되었고, 성산일출봉은 제주 본섬과 연결되어 뭍이 되었다. 성산포 시인 이생진의 시비가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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