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다시12.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漁歌晩唱」
한국 바다시12.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漁歌晩唱」
  •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 고신대 석좌교수
  • 승인 2024.01.1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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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출처_국립고궁박물관)
대한매일신보(출처_국립고궁박물관)

[현대해양] 1910년 합일합방을 전후해서 대한제국은 풍전등화의 지경이었다.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현실을 보고 많은 우국지사들은 이를 두고 현실을 한탄하기도 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수많은 한말우국경시가(韓末憂國警時歌)를 불렀다. 이 중 《대한매일신보》(1905. 9 30. – 1909. 7. 31.)에 실린 「漁歌晩唱(어가만창)」는 어옹이 노래한 시라는 점에서 최남선이 노래한 「해에게서 소년에게」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은 《대한매일신보》에 「漁歌晩唱」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옹(漁翁이 부른 창랑예가(滄浪兮歌)이다. 어옹의 입에 의탁한 1-9곡으로 구성된 시이다. 원래 창랑(滄浪)은 넓고 큰 바다의 맑고 푸른 물결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은 ‘어부사’를 달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창랑은 양쯔강(揚子江)의 지류인 한수이강(漢水江) 일부분의 명칭이다. 창랑이 어부사로 불리게 된 데는 굴원과 어부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비운의 충신이었던 굴원(屈原)이 있었다. 그는 좌의정에 해당하는 벼슬을 하며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 하였으나 정적(政敵)들의 모함을 받고 조정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뒤 멱라강에 투신하여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굴원은 투신하여 죽기 전 강가에 살고 있었는데 어부사는 이 무렵 지어진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초라한 모습으로 강가를 거닐고 있는 굴원을 본 어부가 물었다. 당신은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십니까.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습니까? 이에 굴원이 한숨을 쉬며 말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쫓겨났소. 그러자 어부가 총명한 사람은 자기 생각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그것에 옳고 그름의 기준을 맞추고 그들과 한편이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취했다면 당신도 그들이 먹다 남은 술지게미를 먹고 그들과 함께 취하면 될 것이지 어째서 고집스러움과 고상한 행동으로 추방을 당하셨습니까? 이에 굴원은 자신의 뜻을 굳히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방금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서 쓰고 방금 목욕을 한 사람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서 입어야 한다했소. 어찌 깨끗한 몸으로 세상의 더러움과 가까이 할 수 있겠소. 나는 차라리 강물에 뛰어들어 물고기 밥이 될지언정 깨끗한 마음을 속세의 먼지로 더럽히지는 않을 것이요. 이에 어부는 이 말에 빙그레 웃고는 배의 노를 두드려 떠나가면서 노래(창랑가)를 불렀다. 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창랑의 물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리), 滄浪之水 濁兮可以濯吾足(창랑의 물 흐르면 내 발 씻으리) 어부가 부른 이 창랑가가 어부사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漁歌晩唱」인 창랑예가(滄浪兮歌)는 1908년도에 발표된 어부사란 점에서 시대적 의미가 각별하게 드러나고 있다. 구한말 나라의 상황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나라를 걱정하며 우국경시가(憂國警時歌)를 불렀다. 그 중의 한 편이 「漁歌晩唱」이다. 그러므로 이 시 속에서는 바다 가운데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로가가 아니며, 어옹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 한자혼용시라 동시대에 발표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처럼 한글 전용이 아니라서 신체시의 맛은 느낄 수 없지만 시대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만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시의 시작이 울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 파도가 헤아리기 힘든 세계의 풍조인 듯 인식하고 있는 현실 인식은 당시의 시대현실을 빗대고 있는 장면이다. 이런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혼자 독야청청할 수 없는 창생(모든 사람)들의 염려를 어찌할 수 없음을 안타까이 노래하고 있다. 먼 바다로부터 외래 풍조가 밀려오니 일시적인 공명을 탐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또한 엽관배(獵官輩)들이 설쳐대어 맑은 물을 흐리게 하고 있으니, 언제 물이 깨끗해질 수 있을까를 한탄하기도 한다. 결국 신공기에 목욕을 함으로써 사상이 물과 같이 청결해 짐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우국경시가를 게재했던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 18일 창간된 대한제국 말기의 대표적인 항일 민족지로 국한문판·한글판, 그리고 영문판의 3종이 발간되었다. 그 규모면에서 당시 최대였을 뿐만 아니라 발행부수도 다른 신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내용에 있어서도 당시 민족진영의 의사를 대변하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우국경시가(憂國警時歌)」 중의 한 편인 「漁歌晩唱」은 바다이미지를 통해 척외적(斥外的)인 시대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개화시기에 보기 드문 바다시 가운데 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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