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해양주권과 이어도의 미래
한국의 해양주권과 이어도의 미래
  • 이준성 제주대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 승인 2024.01.0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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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성 제주대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이준성 제주대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현대해양] 지난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었다. 비록 법정 기념일은 아니지만, 그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한국 국제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이한기 박사는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명명백백히 우리 영토인 독도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 외쳐야 당당히 지킬 수 있다는 소리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는 한국산악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국토 구명 학술조사 사업을 하며 수십 년간 빼앗겼던 국토 탐사에 일찍이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이어도를 답사했고 울릉도와 독도를 측량할 수 있었다. 우리 정부는 1952년에 ‘대한민국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평화선)’으로 독도와 이어도를 우리 해역에 포함했다.
하지만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기시다 내각은 독도 문제에 있어서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8월 미 국방부는 동해를 일본해로 단일 표기하겠다고 결정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정부의 결단력 있는 외교와 더 큰 국민적 관심이 절실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된 반도로서 삼면이 바다로 열린 천혜의 지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육로나 해로 모두 온전하지 않다. 남북분단으로 막힌 한반도 이북의 육로는 남북관계 경화로 복원이 요원한 상황이다. 한반도 주변 해역은 그 어느 곳도 해양 경계가 획정되지 않아서 주변국과의 마찰로 잠잠할 때가 없다.
제주 남방의 보이지 않는 수중 암초인 이어도 주변 해역은 더 현저하다. 이어도 해역에는 연일 중국어선으로 붐비고, 이어도 상공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는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열강의 군용기가 수시로 진입하며 긴장을 조성한다. 한 언론 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중국은 70여 회, 러시아 10회 미만, 일본 490여 회가량 KADIZ에 통보 없이 무단으로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도 해역 관할권 확보’ 필요해
마라도에서 서남쪽 149km에 있는 이어도는 과거 제주인의 마음속 안식처였다. 우리 정부는 2001년에 이어도를 처음 해도에 표기했고 그로부터 2년 후 해저를 쇠기둥(Pile)으로 뚫어서 그 위에 이어도해양과학기지를 설치했다. 망망대해에 자리한 과학기지로 인해 이제 우리는 언제든지 이어도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이어도의 가치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어도는 우리 역사·문화의 일부로서 과거 제주도민의 심신을 달래주던 상상 속 섬이자 영원한 이상향이다. 제주 사람들은 험한 바다를 밭 삼아 물질이나 조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런 제주인의 삶에서 이어도는 험난한 환경을 극복하는 모험심의 상징이자 낙원으로서 중요한 표상(表象)이었다. 지금도 제주 곳곳에서 이어도란 글귀를 쉽게 볼 수 있으며 서귀포에는 중문에서부터 법환동까지 이어지는 ‘이어도로(路)’도 있다.

둘째, 이어도에 세워진 이어도해양과학기지는 높아진 우리 해양과학 기술과 경제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어도 과학기지는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해양과학기지로 총공사비는 212억 원이 투입됐다. 그곳에서 수집하고 생산한 자료는 이제 전 세계로 전송돼 활용된다. 특히 2018년에 유엔 산하 대양관측망 네트워크(OceanSITES)에 이어 2019년 전 지구 해양산성화 관측망(GOA-ON)에 등록돼 국제적인 해양관측 기지로 자리매김했다. 이어도해양과학기지는 오늘날 우리 과학기술의 미래이자 경제를 비추는 거울이라 말할 수 있다.
셋째, 이어도 해역은 우리 해양주권과 국가안보 보장을 위한 해양 생명선이라 할 수 있다. 해양주권 일국의 영토주권과 달리 엄밀한 법적 개념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일국의 관할 해역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의 해양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이어도 해역의 관할권 확보는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의 국제교역은 거의 전적으로 해양을 통하며 선박 대부분이 이어도 해역을 통과한다. 중국은 이어도 해역의 관할권을 주장하며, 인근 해역에서 공세적인 행동을 보인다. 우리는 이처럼 계속되는 안보 위협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첫걸음은 이어도를 지나는 해상교통로를 수호하는 것이다.

‘이어도의 날’ 지정해야 
이어도에 조회가 깊은 제주에선 일찍이 이어도 문화 계승과 해양주권 수호를 위해 지방정부, 언론 및 민간 등 지역사회가 단합해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 지방정부는 이어도 주변 해역의 해양주권을 공고히 하고자 1999년 바다의 날에 ‘제주인의 이상향 이어도는 제주 땅’이라 쓰인 수중 표석을 이어도 수중에 가라앉혔다. 또한, 2017년부터 매년 이어도 문화의 날 기념식 개최를 지원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소속 의원들은 매년 9월 10일을 ‘이어도의 날’로 지정하자는 지방 조례를 두 차례나 발의했으나 실패했다. 9월 10일은 1951년 우리 해군이 이어도를 발견해 ‘대한민국령’이라는 동판을 수중에 설치한 날이다. 2016년에는 제주 내 여성 지도자 100여 명이 제주도민 5,374명의 서명을 받아서 ‘이어도 문화의 날’ 제정을 위한 주민청구 조례를 발의했다. 하지만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에 관한 우려로 결국 본회의에도 상정되지 못했다.
이어도연구회라는 비영리민간단체는 10여 년간 이어도 해양아카데미를 통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어도와 해양의 중요성을 알리고 교육해왔다. 이와 더불어 지역사회 내 중고등학생으로 이뤄진 ‘청소년 이어도 지킴이’, 청년들이 결성한 ‘이어도청년지킴이’, 성인 중심의 ‘이어도해양아카데미 원우회’와 ‘이어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사모)’ 등 각계각층의 제주도민이 자발적으로 이어도를 홍보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어도의 미래는 곧 이러한 가치를 인식하고 지키려는 노력에 달려있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해양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이 앞장서서 해양주권을 수호하고 해양의 의미를 되새기며 해양의 가치가 범국가적으로 확산돼야 한다. 명명백백한 우리의 바다도 주장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외쳐본다. “이어도는 우리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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