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70 와온의 노을에 빠지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70 와온의 노을에 빠지다
  • 김준 박사
  • 승인 2023.12.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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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시 와온포구
와온에서 본 노을
와온에서 본 노을

[현대해양] 노을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겨우살이를 위해 노랗고 붉은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나, 노을에 물든 갯벌은 잘 어울린다. 여기에 갈대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여자만 갯벌이 가을에 더 아름다운 이유다. 세인들에게 순천만이 널리 알려졌지만, 여자만의 일부이다. 무진기행의 무대도 여자만이다. 
여자만은 순천만, 벌교갯벌, 고흥갯벌, 여수갯벌 등을 아우른다. 행정구역으로는 순천시, 여수시, 고흥군, 보성군 등으로 둘러싸인 내만이다. 이중 순천만갯벌과 보성벌교갯벌은 2021년 세계자연유산 ‘한국의 갯벌’에 포함된 유산구역이다. 이보다 앞서 순천만갯벌은 습지보호지역, 람사르습지, 명승 등으로 널리 알려졌고, 벌교갯벌은 꼬막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와온해변 혹은 와온갯벌은 여자만 고흥반도로 지는 해를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지명처럼 따뜻한 곳이다. 가을이 익어가는 10월 말 와온해변에서 노을을 보았다. 좀 늦게 도착한 탓에 해가 진 뒤 갯벌에 남은 잔영을 오랫동안 살필 수 있었다. 노을은 해가 질 때보다 해가 지고 나서 더 아름답다. 맞은편 화포에 저녁을 준비하는 불이 하나둘 켜지고, 멀리 벌교포구에도 불이 켜졌다. 바다에도 저녁 조업을 하는지 불이 켜졌다.

와온포구 상징 조형물
와온포구 상징 조형물

따뜻한 포구, 와온
와온은 ‘눈데미’ 또는 ‘누운데미’로 풀이한다. ‘눕다’에서 누운과 ‘불에 데다’는 데미라는 말을 가져와 만들어진 지명이 한자로 ‘와온’이 되었다는 해석이다. 더 나아가 소가 누워 있는 지형으로 똥섬, 소코봉 등 지명들도 생겨났다. 한자지명으로 지역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엉뚱한 해석이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마을을 뒤로하고 소코봉에 올랐다. 높지 않지만 여자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봉우리다. 여자만 한 가운데는 여수시 화정면에 속하는 여자도가 자리를 잡고, 오른쪽으로는 꼬막섬으로 알려진 보성군 벌교읍 장도가 있다. 그 뒤로 벌교갯벌과 고흥반도가 자리를 잡았다. 와온포구 맞은편 봉화산 아래가 순천시 별량면 화포다. 두 포구를 이어 북쪽갯벌이 흔히 순천만이라 부르는 곳이다. 여자만에 속하는 바다이자 갯벌이다. 벌교갯벌과 함께 지난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이사천과 동천으로 이어지는 국가정원이 자리한 곳이다. 화포가 일출의 명소라면 와온은 노을이 아름다운 포구다. 두 어촌마을은 순천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내만 갯벌 중에서도 특히 펄갯벌이 발달해 짱뚱어, 망둑어, 칠게, 가리맛조개, 꼬막 등이 많이 서식한다. 

갯벌에서 서식하는 생물들
갯벌에서 서식하는 생물들

따뜻한 가정식 밥상을 내놓는 곳
와온이 더 특별한 것은 좋은 밥집이 있어서다. 거문도가 고향인 그녀는 여수에서 생활하다 와온에 터를 잡고 혼자서 운영하는 작은 식당을 열었다. 음식 만드는 일을 좋아하고, 와온에 이렇다 할 식당이 없던 시절에 지나던 사람들이 들어와 밥을 청하면 기꺼이 밥을 내놓았다. 혼자 밥 짓고 반찬을 만들고 손님에게도 응해야 하니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라 예약 손님만 받는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들어오는 손님을 냉정하게 쫓을 만큼 모질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집에서 먹는 것처럼 가정식백반을 메뉴로 올렸다. 그날그날 여수 중앙시장에서 해산물이 들어오면 메뉴가 결정된다. 번에는 겨울로 가는 길목에 제철인 삼치가 올랐다. 
그녀는 직접 장을 담가 먹는다. 산부해간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식당 안에 큼지막하게 적어 놓았다. 그리고 모든 반찬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주요리가 나오기 전에 여수가 자랑하는 돌게장과 가리비와 삶은 오징어를 내왔다. 밑반찬으로는 역시 여수가 자랑하는 갓을 이용해 물김치, 김치 그리고 파김치와 오이를 살짝 데쳐 무친 것이 나왔다. 하나 같이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다. 반주를 한 잔씩 하는 사이에 삼치회가 준비되었다. 큼직큼직하게 썰어 가지런하게 접시에 올려진 삼치와 김과 안주인 특별하게 준비한 양념장이 곁들여졌다. 여수는 선어를 즐겨 먹는다. 그리고 선어의 종류에 따라서 양념장이 다르다. 또 집마다 양념장에 더해지는 것들이 다르니 음식이 얼마나 다양하겠는가.
마무리는 삼치뼈를 이용한 미역국이다. 당연히 미역은 거문도에서 가져왔고, 삼치 역시 그 바다에서 잡힌 것이다. 아침에 해장국까지 완벽한 밥상으로 마무리했다.

와온포 ‘해반’ 식당에서 만난 삼치회
와온포 ‘해반’ 식당에서 만난 삼치회

뻘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갯벌
와온마을 갯벌은 세계자연유산 ‘한국의 갯벌’ 유산구역이다. 여자만의 동쪽에 위치한다. 순천만이 널리 알려져 방문객들이 많이 오갈 때도 찾는 사람이 적은 오지였다. 지금도 교통편으로 보면 순천만에서 가장 불편한 곳이다. 그런데도 최근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이 제법 오가고,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또 노을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래서인지 해안을 따라 갯벌 위로 걸을 수 있는 데크를 만들었다. 또 여러 곳에 쉼터와 공원도 마련했다. 마을 주변에 카페와 펜션이 생겨났다. 주변에 땅값도 많이 올랐다. 한때 그곳에 빈집을 찾다가 땅값을 알고 포기해야 했다. 이러한 변화에도 주민들의 일상은 큰 변화가 없다. 와온 주민들은 여전히 뻘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야 먹고 살 수 있다. 갯벌과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주민들의 생활공간이며 경제활동의 공간이다. 물 빠진 갯골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모습은 꼬막양식장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참꼬막은 구경한 지 오래되었다. 새꼬막을 양식하거나 새꼬막 종패를 채집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갯벌이나 바다 환경은 예전 같지 않지만, 찾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똥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노을이 좋은 날 몰려든다. 때아닌 교통체증이 생기기도 한다. 와온의 마음씨 좋은 식당 주인을 찾아가던 날도 그랬다. 노을을 지고 나자 논 사이에 좁은 길에서 자동차들이 줄지어 빠져나온다. 그래서 노을이 지고 난 뒤에 찾는 편이 더 낫다. 진짜 노을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해진 뒤에 바다나 갯벌에 진 잔영을 본다고 한다. 그날은 정말 해지는 것보다 해지 뒤가 더 아름다웠다. 일몰이 진행되는 시간은 30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뒤의 잔영까지 보려면 한 시간은 더 머물러야 한다. 노을빛이 바다에 내리고, 다시 갯벌로 밀려온다. 그 뒤 화포에 불이 하나둘 켜지고, 저 멀리 벌교포구에도 불빛이 밝아질 무렵이면 와온 갯벌에 내린 노을은 사라진다. 그리고 물이 들면서 저녁 조업을 하는 배들이 하나둘 불을 밝힌다. 이 무렵 뻘배를 타고 갯벌을 오갔던 아낙들은 소코봉(231m) 아래 옴팡진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한다.

뻘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펄갯벌
뻘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펄갯벌

칠게 잡고 짱뚱어 잡고
와온으로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빠른 길은 없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가야 한다. 알량한 국도에서 지방도로를 지나 해안길에 이르러야 한다. 아쉽다면 대중교통으로 오가는 길이 수월치 않다는 점이다. 더해서 순천만이 내놓는 짱뚱어, 망둑어, 칠게, 꼬막, 대갱이 등 개미진(먹을수록 당기는 맛, 전라도 방언)을 볼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찾기 어렵다는 것도 아쉽다. 그래도 가정식으로 오가는 이에게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려내는 심성 좋은 분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와온마을의 노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순천만의 경관이 입소문을 타면서다. 비록 예전처럼 고기잡이나 갯살림이 풍요롭지 않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오염된 하천과 쓰레기로 덮인 갯벌이 바뀌면서 새들은 더 많이 찾고 있다. 이제 두루미는 순천을 상징하는 겨울새가 되었다. 

새꼬막 종패를 채집하는 그물
새꼬막 종패를 채집하는 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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