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9. 항해용선계약상 선박소유자의 운송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과 그 범위
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9. 항해용선계약상 선박소유자의 운송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과 그 범위
  • 이상협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 승인 2023.12.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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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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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항해용선계약의 선박소유자는 자기 또는 선원이나 그 밖의 선박사용인이 운송물의 수령ㆍ선적ㆍ적부(積付)ㆍ운송ㆍ보관ㆍ양륙과 인도에 관하여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운송물의 멸실ㆍ훼손 또는 ‘연착’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상법」 제795조, 제841조 제1항). 그런데 해상운송 실무상 운송물을 일정한 기한까지 도착할 것을 약정하는 경우가 드물고, 그러한 약정이 없는 경우에는 ‘연착’ 여부가 다투어질 수 있다. 나아가 선박소유자가 운송물 연착 시에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도 문제된다. 특히 「상법」은 항해용선계약에 있어 육상운송인의 정액배상주의를 준용하고 있는데(「상법」 제841조 제1항, 제137조), 항해용선계약에서 손해배상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는 경우에 그 규정과 「상법」 제137조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도 쟁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에 소개할 하급심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5. 28. 선고 2020가합540450 판결, 이하 ‘대상 판결’)은 항해용선계약 하에서 선박의 고장 등으로 인하여 화물의 운송이 지연된 경우에 선박소유자가 화주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 및 배상하여야 할 손해의 범위에 관하여 다루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2. 사실관계
석유화학업체인 A는 2011. 4. 1. 해운사 B와 B의 선박을 통하여 A가 구매한 인도네시아산 발전용 유연탄을 운송하기로 하는 항해용선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다. A는 2019. 7.경 B에게 발전용 유연탄 72,400톤을 인도네시아 타보네오항에서 여수항까지 운송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B는 위 화물을 운송하기 위하여 선박 C를 다른 선박소유자로부터 용선하였고, 2019. 7. 31. A에게 선박 C가 인도네시아 타보네오항에서 출항하여 2019. 8. 9. 또는 2019. 8. 10. 여수항에 입항할 예정이라고 통보하였다. 그러나 선박 C는 위와 같은 B의 통보와 달리 2019. 8. 3. 출항하여 두 차례의 선박 고장으로 인한 수리기간을 거쳐 2019. 11. 7. 비로소 여수항에 입항하였다. 

한편, A는 위 화물의 운송 지연으로 인하여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발전소의 가동 중단을 막기 위하여 외부로부터 발전용 유연탄을 조달하였다. 그리고 A는 B를 상대로 운송 지연으로 인하여 지출하게 된 대체 유연탄의 하역보관료 및 운송료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3. 법원의 판단
법원은 운송물의 연착을 의미하는 인도지연은 ‘약정일시 또는 그러한 약정이 없는 경우에는 상당한 시기에 운송물을 수하인에게 인도하지 못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정의를 내린 후, A와 B 사이에는 운송물 인도에 관한 약정 일시는 존재하지 않지만, 문제되는 화물을 운송하기 전 3년간 인도네시아 타보네오항에서 여수항까지의 10여 차례 운송하는 동안 9-15일 가량의 기간이 소요된 점을 근거로 출항일로부터 약 100일이 경과한 이후 도착한 것은 상당한 시기에 운송물을 수하인에게 인도하지 못한 인도지연에 해당하여 B는 A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나아가 법원은 「상법」 제137조 정액배상주의가 적용되어 B의 손해배상책임이 제한된다는 B의 주장에 대하여 이 사건 계약상 적정선박 미확보로 계약을 불이행 시 A의 모든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하고, 선박고장의 경우 B가 불가항력을 이유로 면책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등 운송인의 운송 지연에 관한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로 합의한 점 등을 근거로 「상법」 제137조의 적용을 배제하였다. 그리고 법원은 B가 운송 지연으로 인하여 A가 대체 유연탄을 조달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을 이유로 A가 대체 유연탄을 조달함에 따라 추가로 발생한 하역보관료 및 운송료에 대해서 B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4. 검토
항해용선계약의 선박소유자는 개품운송계약의 운송인과 마찬가지로 운송에 관한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수하인에게 뒤늦게 운송물을 인도한 때에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운송물의 인도기한에 관한 약정이 없더라도, 통상적으로 9-15일 정도 걸리는 운송구간에서 선박소유자의 관리 하에 있는 선박의 고장으로 인하여 도착에 100일이 넘게 소요된 경우에는 계약상 다른 면책사유가 없는 한 선박소유자 B는 화주 A에 대하여 운송물 연착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러한 경우, B가 A에 운송물의 연착에 따라 부담하여야 할 손해배상의 범위가 문제된다. 운송물 자체가 연착으로 인하여 가격이 하락하거나 손상되어 발생하는 손해는 마땅히 손해배상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나, 그 외에 B가 연착으로 입게 되는 대체 유연탄을 조달함에 따라 입게 된 경제적인 손실까지도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되는지가 다투어질 수 있다. 만약 「상법」 제137조의 정액배상주의가 그대로 적용되면 운송물의 가격이 하락한 경우에 한하여 인도할 날의 가격과 인도한 날의 가격의 차액만 지급하면 된다고 해석되고, 그 외에 다른 유형의 손해는 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 계약의 목적 및 취지, 적정선박 확보의무 조항 및 불가항력 조항의 문언, 운송지연에 따른 손해 발생의 유형 및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운송지연에 따른 모든 손해를 배상하기로 한 약정이 있었다는 이유로 「상법」 제137조의 적용을 배제하였다. 결국 대상 판결은 「상법」 제137조를 계약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배제할 수 있는 임의규정으로 해석하는 전제 하에, 운송계약의 내용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정액배상주의의 적용을 배제시킬 수 있는 당사자 간 합의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상 판결의 입장은 향후 항해용선계약에 있어 「상법」상 정액배상주의가 적용될 수 있을지 여부에 있어 중요한 해석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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