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다시 11. 최초의 신체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한국 바다시 11. 최초의 신체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 고신대 석좌교수
  • 승인 2023.12.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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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출처_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해에게서 소년에게(출처_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현대해양] 바다가 드러나는 시가작품들이 고전에서는 그렇게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지금까지 선조들이 남긴 시가작품을 중심으로 고전 시가에서 바다와 관련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근대로 넘어와서 바다가 등장하는 시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1908년에 창간된 《소년》지에는 한국 최초의 소위 신체시라고 불리는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나타난다. 육당 최남선 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소년들이 바다로 나아갈 것을 노래하고 있다. 바다는 젊은이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세상임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먼저 소위 신체시라고 불리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읽어보자.

이 시는 창가와 현대의 자유시 사이에 나타난 중간 단계의 시가로, 소위 신체시로 불리운다. 최남선은 이 시를 통해 전근대적인 사상에서 벗어나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근대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근대 서구사상의 수용 의지를, 바다를 시적 화자로 하여 소년에게 말을 건네게 하는 방식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앞선 서양의 문물을 최대한 받아들여야 한다는 최남선의 근대사상을 시의 형식을 빌어 제시하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이 ‘少年에게서 海에게’가 아니라, ‘海에게서 少年에게’인 것도 이런 이유이다. 이미 최남선은 계몽주의자로서의 주제의식을 제목과 화자의 설정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1연에서 4연까지 바다의 위력과 속성에 대해 노래하고, 5~6연은 소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바다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데 비해 육지의 것들은 보잘 것 없다. 태산 같은 높은 뫼와 집채 같은 바윗돌, 힘과 권세를 부리던 자들, 그리고 적은 시비 적은 쌈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진시황 나폴레옹 같은 역사 속의 영웅들조차 바다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바다는 그들을 미워하며, 오직 담 크고 순정한 소년들만을 사랑한다. 바다의 거칠 것 없는 힘은 소년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최남선은 이 시에서 바다는 무한한 힘이자, 소년들이 받아들여야 할 가능성의 세계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큰 것을 보고자 하난 者, 넓은 것을 보고자 하난 者, 긔운찬 것을 보고자 하난 者, 끈기 잇난 것을 보고자 하난 者는 가서 시원한 바다를 보아라!”라고 말하며 《少年》지에 「嶠南鴻瓜」(1909)라는 기행문도 썼다. 그에게 바다는 힘과 가능성의 세계이자, 크고 넓고 기운차며 끈기 있는 것을 구하는 소년들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지점이었다.

바이런의 「대양(The Ocean)」이란 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밝혀진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번안의 오해를 사기는 하지만, 그 전의 개화기 시가에 비하면 우리 시사에서 새로운 시 형식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시에 활용된 언어의 상징성과 기법적인 면에서의 참신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바다라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당시로서는 참신하고 진보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바다와 소년의 상징적 의미를 통해 현실적 욕망에 취하고 소소한 시비에 묶여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개척적 의지와 희망을 가질 것을 강렬하게 노래하고 있다. 자라나는 소년들을 향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큰 포부를 지니고 미래를 개척하자는 의지의 표명은 《소년》지가 지닌 방향성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후 이 시는 오랫동안 우리나라 근대시뿐만 아니라 바다시의 대표적이고 선구적인 작품으로 논의되어왔다. 바다가 지닌 열린 개방성과 미래지향적인 희망의 의미와 함께 바다시에 대한 문학연구자들의 관심을 계속 받아온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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