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 R&D 사업 예산 36% 삭감
해양수산 R&D 사업 예산 36% 삭감
  • 김엘진 기자
  • 승인 2023.12.0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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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예산 결정 시 증액 기대
11월 22일 박찬대 의원 주최로 '미래를 만드는 남극북극의 극지연구, 성과와 전망을 말하다' 세미나가 열렸다.
11월 22일 박찬대 의원 주최로 '미래를 만드는 남극북극의 극지연구, 성과와 전망을 말하다' 세미나가 열렸다.

[현대해양]지난 6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예산편성에 앞서서 우리가 전반적으로 검토를 해야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정부는 “효과 분석 없이 추진된 예산, 돈을 썼는데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는, 왜 썼는지 모르는 그런 예산들은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재점검해야 된다.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양수산과학기술 R&D 예산 36.4% 삭감

정부가 2024년 국가 R&D 예산을 올해 31조 3,1000억 원에서 25조 9,000억 원으로 16.7% 삭감한 가운데, 해양수산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 예산은 36.4%나 삭감된 것으로 밝혀졌다.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 서귀포시)은 지난 10월 “정부의 제2차 해양수산과학기술 육성 기본계획(2023~2027)과 2023 해양수산과학기술 육성 시행계획의 4대 전략 12대 추진과제에 해당하는 111개 사업 중 55%인 61개 사업 예산이 5,310억 원에서 3,376억 7,300만 원으로 55% 삭감됐다”고 전했다.

특히 기본계획의 추진과제로 ‘탄소 중립을 선도하는 해양에너지 대전환’을 설정했으나 막상 △중소선박 보급형 온실가스 등 저감장치 개발(47억 원→9억 4,000만 원)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 생태계 반응·변화연구(35억 원→7억 원) 등 예산을 각각 80% 감액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양·극지 개척으로 해양과학영토 확대’라는 계획을 세웠지만 △친환경 쇄빙연구소 건조 예산(421억 9,000만 원→181억 300만 원) △극지 유전자원 활용 기술개발(48억 7,700만 원→4억 3,500만 원) 예산 역시 크게 삭감됐다. 특히 해양수산과학기술분야 SCI 논문 건수는 2017년 581건 대비 2022년 753건으로 29.6% 늘어났으며, 논문 질적 우수성도 2018년 59.55에서 2022년 69.16으로 매년 향상되고 있는 상황에 이러한 R&D 예산 삭감은 자칫 우리가 미래보다는 현재에만 급급한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극지유전자원 R&D 사업’ 90% 삭감

이번 예산 삭감안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부설 극지연구소였다.

지난달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 인천연수갑)이 주최한 「미래를 만드는 남극·북극의 극지연구, 성과와 전망을 말하다」 정책토론회가 열렸다.이 행사는 2024년 정부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극지 연구와 관련된 R&D 예산이 1,058억 원에서 약 710억 원으로 약 67.11%나 삭감됐기에, 극지연구의 성과를 재조명하고 2024년도 최종 예산안 편성에 반영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과기부는 극지 분야 기초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사업 ‘해양극지원천기술 개발 사업’을 당초 79억 원에서 39억 원 삭감한 40억 원으로 편성했으며, 해수부는 △극지 유전자원 활용기술 개발(56억 8,800만 원 삭감) △극지 해양환경 및 해저조사 연구(33억 8,100만 원 삭감) △극한지 개발 및 탐사용 협동이동체 시스템 기술개발(10억 4,700만 원 삭감) △급격한 남극빙상 용융에 따른 근미래전지구 해수면 상승예측기술개발(9억 7,400만 원 삭감)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560억 3,900만 원)을 삭감했다. 특히 ‘극지유전자원 R&D 사업’의 경우 특정연구기관에 1:1로 입찰 됐다는 사유로 사실상 전액에 가까운 연구비가 줄었다. 그러나 해수부의 ‘2024년 R&D 예산 비효율 조정 예시’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은 2020년 2차 재공고까지 진행했음에도 ‘극지연구’라는 특수성 때문에 다른 기관이 신청할 수 없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극지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극지연구소가 단독 선정된 것이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설치된 한국개발예산 원상회복 대책위원회 천막농성장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설치된 한국개발예산 원상회복 대책위원회 농성 천막

해양과학계 입조심중

지난 10월 해수부 산하기관 국감에서 강도형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원장은 예산 삭감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정부가 이유가 있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본다”라는 소극적 답변을 내놓았다.

KIOST 측은 국감 당시 회의장 앞에서 R&D 사업 예산 삭감을 규탄하는 연구원들의 시위가 진행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건 우리가 아니라 과기노조(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다”라며, “우리가 다른 기관에 비해 (예산이) 그다지 크게 떨어지진 않았고, 복구를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대통령으로부터 내려온 지시인만큼 이번 예산안에 대해서는 이름을 걸고 취재에 응해주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관계자들은 “매우 예민한 부분이며 규정상 홍보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예산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인 지금으로서는 어떤 이야기를 했다가 (정부에) 밉보일 수 있어 조심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전문가 A 씨는 “정부가 카르텔을 이야기하고, 이후 대부분의 과기계 예산이 삭감됐는데, 그런 구조가 아쉽다”라며, “그동안에도 부처가 그냥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기획을 하고, 각 기관과 상의하고, 과기부와 기재부를 설득하는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거쳤으며 R&D는 특히 매 단계 과기부의 국가 심의도 받으며 선별하고 선정된 과제가 아니었나”라고 토로했다.

A 씨는 “당장 연구소들도 특별한 방안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며, “연구비가 남는 경우는 해수부쪽 연구기관에는 거의 없는 편인데, 이렇게까지 예산이 삭감됐는데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기는 쉽지 않고, 그렇지만 또 예산이 줄었다고 성과지표까지 낮아지는 것도 아니라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몇 년간 지속되는 사업 중 마지막 1,2년을 남겨두고 갑자기 예산이 삭감되는 경우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도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인프라와 과학은 연동 돼”

전문가 B 씨는 “당장 한 해 정도는 줄어든 예산에 적응한다 치는데, 후년에도 이 상황이라면 심각한 문제다”라며, “과제에 따라 인력을 조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 출연 기관들이 모두 근본적인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연구소로서는 인프라 구축이 중요한데, 이런 것들은 예산이 줄어든다고 규모를 줄여서 시행하는 게 어렵기에 하드웨어나 건설 등 인프라가 포함된 사업에서는 사업 자체를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A 씨 역시 “솔직히 말하자면 장기 사업의 경우 마지막 연차쯤에서는 지난 몇 년간 수행해온 연구결과를 잘 만지면 당장의 성과지표는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규 사업이나 중간 단계 사업의 경우엔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한 “환경보존 관련 사업 등의 예산은,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굉장한 가치가 있는 사업이다”라며, “경제적으로 따질 수 있는 이익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이지 못하더라도 더 큰 이익과 가치가 있는 장기적 시야가 필요한 분야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탐사를 하려면, 그 ‘탐사’라는 정책을 수립하기 전 테스트베드 등이 완성돼야 하고, 이러한 인프라는 바로 과학과 연동돼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B씨는 “예산이 줄어들면 제일 먼저 원천 기술처럼 당장 하지 않아도 문제가 적은 사업부터 줄게 될 것이다”라며, “그러나 이러한 사업들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투자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장 급한 일부터 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방향성을 정하고 가야 하는 R&D 사업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미래의 과학 기술력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는 부분이 될 것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박찬대 의원실 측은 지난달 30일, “R&D 관련 예산은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증액의결은 됐기에 최종 예산안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며, “구체적으로 예산 규모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관련 부처에서도 긍정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답변한 상태. 12월 초·중순까지는 아마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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