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8 발생하지 않은 권리는 행사할 수 없다
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8 발생하지 않은 권리는 행사할 수 없다
  •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해양수산부 법률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승인 2023.11.0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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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해양수산부 법률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해양수산부 법률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현대해양] 1. 당사자

대법원 2022. 12. 1. 선고 2020다280685 판결

원고/상고인 A사

피고/피상고인 B사

2. 사실관계

가. 해상운송업을 영위하는 A사는 2017. 1.11. 복합운송주선업을 영위하는 B사와 화물을 대한민국 C항에서 베트남D항까지 운송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위 화물은 폐기물 처리업자가 케이블 등 수출 화물인 것처럼 가장하여 반출하려한 폐기물이었다.

나. A사는 2017. 2. 19. 운송계약에 따라 화물을 D항까지 운송하였으나 B사 및 B사가 지정한 수하인은 도착한 화물을 수령하지 않았고, 화물은 어쩔 수 없이 A사의 컨테이너에 적입된 채 D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보관되었다.

다. B사 측은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였음에도 D항에 양하된 화물을 찾지 않았으며, 컨테이너 초과사용료 및 터미널 보관료는 날마다 계속하여 발생하게 되었다.

라. A사는 화물 도착 후 약 2년이 지난 시점에 B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이 사건 소를 제기함에 이르렀다.

3. 이 사건의 쟁점

상법 제814조 제1항은 “운송인의 송하인 또는 수하인에 대한 채권 및 채무는 그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 운송인이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부터 1년 이내에 재판상 청구가 없으면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위 규정에 관하여 확립된 기존 법리는 다음과 같다. ① 해상운송인의 송하인이나 수하인에 대한 권리·의무에 관한 소멸기간은 제척기간에 해당하고, 그 기산일은 ‘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인데, ‘운송물을 인도할 날’이란 통상 운송계약이 그 내용에 좇아 이행되었다면 인도가 행하여져야 했던 날을 의미한다. ② 해상운송인의 송하인 또는 수하인에 대한 채권 및 채무는 그 청구원인이 계약인 경우뿐만 아니라 불법행위인 경우에도 위 제척기간이 적용된다.

이 사건에서는 위 제척기간이 이 사건 소제기 시점으로부터 1년 이전의 채권에만 적용되어야 하는지의 여부에 관해 쌍방의 의견이 대립하였다. 즉 위 조항의 ‘채권’에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손해배상채권 역시 포함되는지의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4. 원심법원의 판단

발생시기와는 무관하게 컨테이너 초과사용료 및 터미널 보관료 전부가 상법 제814조 제1항의 제척기간 적용대상이다. 그러므로 화물의 인도가 행하여져야 했던 날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나 제기된 이 사건 청구는 모두 제척기간이 도과하여 부적법하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제척기간은 당사자 간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하는 데 제도의 취지가 있는 것이다. ② 해상운송은 관련 당사자가 다수이며 다국적인 경우가 많아 이들 사이의 법률관계가 복잡하여 이를 단기간에 확정지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 ③ 상법 제814조 제1항은 소멸대상 채권의 발생 시기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

5. 대법원의 판단

채권의 발생일을 구분하여 상법 제814조 제1항의 제척기간을 개별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컨테이너 초과사용료 및 터미널 보관료 손해배상청구 중 이 사건 소제기 1년 안에 발생한 부분은 제척기간을 도과하였다고 볼 수 없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제척기간은 적어도 권리가 발생하였음을 전제하는 것이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권리에까지 그 제척기간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여 권리가 소멸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② D항에 도착한 화물을 수하인이 수령하지 않아 화물이 A사의 컨테이너에 적입된 상태로 D항 터미널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컨테이너 초과사용료 및 터미널 보관료 상당의 손해는 날마다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③ 따라서 위 손해는 ‘화물의 인도가 행하여져야 했던 날’을 지나서도 발생할 수 있는데, 상법 제814조 제1항 제척기간의 기산점으로서 ‘화물의 인도가 행하여져야 했던 날’을 지나서 발생하는 위 손해배상채권의 제척기간 기산일은 그 채권의 발생일이라고 해석함이 타당하고, 그 날부터 상법 제814조 제1항에 정해진 권리의 존속기간인 1년의 제척기간이 적용된다. 요컨대 청구하는 날로부터 1년을 역산한 시점 내의 채권은 살아있다는 뜻이다.

6. 결론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권리가 소멸한다는 것은 일반상식과 법 감정에 비추어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관계에 있는바, 권리의 소멸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의무의 이행 역시 가능했어야 한다. 법률의 해석은 문언의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이루어야 함을 고려할 때, 위 대법원 판결은 문리 해석의 한계를 준수하였다. 우리 법원은 형평의 원칙에 따른 책임제한을 긍정하고 있다. 혹 기 발생한 컨테이너 초과사용료 및 터미널 보관료의 액수가 너무나 큰 경우라면 제척기간의 적용범위를 넓혀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 자체를 금할 것이 아니라 제반사정을 고려해 그 손해액을 감경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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