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 대기자 남달성의 회상 11. 최신어법 참치 선망어선을 타다(1부)
수산 대기자 남달성의 회상 11. 최신어법 참치 선망어선을 타다(1부)
  • 남달성 대기자
  • 승인 2023.11.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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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선망어선
참치 선망어선

[현대해양]기자는 1975년 3월 국립수산진흥원(현 국립수산과학원) 소속 시험조사선 태백산호(309t)를 타고 마이크로네시아의 팔라우섬 근해에서 가다랑어 어선을 탈 기회를 가졌다. 마침 팔라우에 기지를 둔 국제원양 소속 오레김호(48t, 선장 남영택, 38)가 출어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벽 2시경 항구를 빠져나간 이 배는 조업에 필요한 활멸치를 세망(細網)으로 뜬 후 이를 선내 활어조에 싣고 어장탐색에 나섰다. 정오가 될 무렵까지 배는 계속 바다를 쏘다녔다. 어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어군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었다.

견시원 4명이 유목(流木) 이전의 갈매기 떼를 찾는 일이 고작이었다. 오후 2시 선수 좌현 12해리 전방에서 갈매기 무리 바로 아래 길이 7m, 직경 0.7m의 유목을 찾아냈다. 여러 선원이 새벽에 잡은 멸치를 바닷물과 함께 뿌리자 깊은 바다에서 뛰놀던 가다랑어 떼들이 냄새를 맡고 수면 가까이에서 멸치를 잡아먹고 있었다. 선원들은 그제서야 미늘 없는 낚싯대로 가다랑어를 낚아챘다. 한 마리에 4.5~5kg 가는 가다랑어가 낚싯대에 매달린 채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데크 위에 나뒹굴어졌다. 그때의 손맛은 낚시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낚시로 잡은 가다랑어

기자도 선장의 권유에 따라 낚시를 바닷물에 담궜다. 가다랑어가 낚시에 걸려 펄떡거리면 온 몸에 전율을 느낀다. 그렇게 먹이를 잡아먹느라 왁자지껄하던 어군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선체가 낡아 데크 틈 사이로 바다에 흘러내린 동료 어체의 피 냄새를 맡고 바다 깊숙이 숨어버린 것이다. 조업시간은 겨우 12분. 기관장을 제외하곤 선원 14명이 잡은 가다랑어는 모두 2.5t. 기자는 그 짧은 시간에도 20여 마리를 낚아챘다. 점심식사 땐 갓 잡은 가다랑어가 횟감으로 올라와 선원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법이 숙련 어부난 등으로 점차 쇠퇴하면서 선망어선이 유목조업에 나선 것이다. 중서부 태평양에는 인도네시아나 파푸아 뉴기니 등지에서 하역작업 중 바다에 떨어진 원목들이 많다. 이들 원목이 조류 따라 유유히 대양으로 흐른다. 기자는 이를 취재하기 위해 중서부 태평양의 괌을 거쳐 조업현장으로 달려갔다.

원래 선망어법은 1826년경 미국에서 참치가 목적이 아니라 청어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구 모두가 인력에 의존했으나 1914년에 가서야 기계화 됐다. 1916년 미국의 식품회사 밴 캠프회사가 날개다랑어를 원료로 통조림을 생산하면서 이 선망어업이 본격화 됐다. 그 현장을 살펴보자.

대양에 떠다니는 유목. 길이 10여미터, 직경 0.8미터 안팎의 유목 아래엔 그림자가 드리워져 어군이 항상 몰린다.
대양에 떠다니는 유목. 길이 10여미터, 직경 0.8미터 안팎의 유목 아래엔 그림자가 드리워져 어군이 항상 몰린다.

어려운 투망 결정

1996년 1월24일 오전 11시 반. 남위 6도 24분 동경 159도 3분의 코스타 데 마필호(807t) 선상. 본선 15해리 전방에서 어탐에 열중하던 헬리콥터(조종사 와리크 오버레이 42)에 동승한 1항사 조태연 씨(30)로부터 ‘대량어군 발견’이란 긴급연락을 받았다. 조타실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던 김현주 선장(33)의 얼굴에 일순 긴장감이 감돈다. 다시 바다를 응시한다. 투망 명령은 선장 고유의 권한. 그러나 조류의 방향과 세기, 풍향과 풍속이 조업 최적의 조건인지를 판단,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파고는 0.5m로 이상적이다.

조류 흐름은 마침 선체 진행 방향과 같아 투망에 적합하다. 다만 조류의 세기는 12노트로 약간 센 편. 1항사 조씨는 “대량어군 발견, 풀 스피드 항진 요망”을 연신 당부한다. 하지만 김 선장이 아직도 투망 결정을 못 내린 것은 어군의 형태를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는 전속으로 항진한다. 40분 정도 달렸을까. 상코파로 달려간 김 선장은 쌍안경(25*150)을 통해 저 멀리 선수 우현 5해리 부근에서 흰 파도(白波)가 일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분명 스쿨 피시(먹이를 쫓는 대어군)다. 백파란 수심 100~150m 층에서 움직이던 참치 떼가 수면 근처에 회유하는 멸치 떼 냄새를 맡고 급부상, 잡아먹을 때 이는 흰 물살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투망을 결정 못한다. 부상군(浮上群)에 의한 백파라도 1.회유군 2.색이군 3.고래군 4.상어군에 따라 투망 성공률은 천차만별이기 때문. 다행히 코스타 데 마필호가 발견한 백파는 먹이를 한참 먹으려는 참치 떼였다. 김 선장은 지긋이 입술을 깨문다. 이 이상 시간을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갑판원 “올 스탠바이” 이윽고 투망준비를 알리는 외침이 선내 스피커를 통해 흐른다. 제 자리를 찾아가는 선원의 발놀림이 빠르다. 조기장 겸 스키프 맨 고재남 씨(37)와 2기사 겸 네트 보트 맨 김석문 씨(22)가 잽싸게 정 위치에 섰다.

드디어 “렛고”

스키프는 투망 때 그물의 한쪽 끝을 잡아주는 750마력의 20t급 선박. 네트 보트는 그물 사고에 대비하는 작은 배다. 조타실 조업기기 작동대인 콘솔 앞에는 2항사 김연섭 씨(26)가 자리한다. 투망준비가 끝났다는 갑판장 김성웅 씨(3)의 고함소리가 울린다. 오후 1시 반. “렛고”.

투망시간 결정에 고민하던 김 선장이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투망 스탠바이 50분 만의 일이다. 선미에 있던 스키프가 그물을 맨 채 박차고 나간다. 수면의 멸치 떼를 잡아먹느라 정신없는 참치 떼를 둘러싸기 위한 것이다. 조타실에선 전속 명령이 내려졌다.

그물 풀리는 소리와 2,800 마력의 제너럴 모터스 주기관의 굉음이 대양의 정적을 깨뜨린다. 소나 음파탐지기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통신장 김동국 씨(27)는 본선과 어군과의 거리를 보고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제 스키프는 모선의 반대쪽에 떠 있다. 아직도 모선의 속력은 전속 항진. “5번 부이 렛고” 정확히 길이 2,150m의 대형 그물이 마지막 부분만 남았다. 그제서야 배가 속력을 낮춘다. 배가 거쳐 간 항적 따라 노란색 콜크 부자가 원주를 선명하게 그려놓는다. “토우 라인 렛고” 그물이 다 풀렸다는 보고가 조타실을 울렸다.

이윽고 엔진이 멎고 본선은 투망 전 그물 한 쪽을 넘겨받기 위해 스키프를 향해 타력(惰力)만으로 전진한다. 두 선박이 교차할 무렵 갑판장 김씨가 히빙 라인을 내던진다. 2등 기관사 김형영 씨(28)가 이를 퍼스 라인에 연결하자 데크 위의 1갑원 김진홍 씨(28)가 퍼스 윈치 레버를 젖힌다. “위잉!” 2인치 굵기의 와이어 로프가 힘겹게 감겨 올라온다. 이때 퍼스 윈치에 걸리는 장력은 12t이나 된다. 따라서 선체가 좌현으로 기우뚱한다. 작업은 이때부터다. 이미 그물 안에 든 고기를 한데 모으기 위해 선미 좌현에서 비트(와이어로프 감는 쇠기둥)를 치는 망치 소리가 요란하다.

코스타 데 마필호 투망 후 그물이 뚫린 본선 쪽 부근에서 어군의 도주를 막기 위해 네트 보트(윗쪽)와 스피드 보트(아랫쪽)가 물살을 일으키고 있다.
코스타 데 마필호 투망 후 그물이 뚫린 본선 쪽 부근에서 어군의 도주를 막기 위해 네트 보트(윗쪽)와 스피드 보트(아랫쪽)가 물살을 일으키고 있다.

체리 봄

해머 소리는 물속으로 전달되면서 고기 떼를 위협한다. 공중에서는 헬기의 허버링으로 주회전 날개의 힘을 빌어 굉음과 파도를 일으킨다. 이때 물감이 뿌려진다. ‘퍼세이너 다이’라는 빨간색 가루봉지가 연이어 던져진다. 이는 그물이 완전히 둘러치지 않은 본선(길이 68m) 아래쪽으로 참치 떼가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영리한 어군들은 그래도 이쪽으로 회유해 온다. 다시 비장의 무기를 내던진다. ‘체리 봄’ 선장의 짤막한 한마디에 강 기관장은 다이너마이트 도화선에 불을 댕겨 선수와 선미 좌현에서 ‘체리 봄’을 연신 내던진다.

‘체리 봄’은 물속 5~6m에서 폭발, 어군을 교란한다. 투망한 지 40분이 지나자 그물 밑부분의 조임이 끝났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에 아무리 많은 어군을 둘러싸도 순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부들은 이를 ‘물방’이라고 한다. 스쿨피시(school fish - 해수 표면의 어군 조업)는 다분히 모험적이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에는 스쿨피시조업은 거의 꿈도 꾸지 못했다. 이동 어군이 워낙 빠르고 조류와 풍향 등 조업여건이 맞지 않은데다 우선 정상 어법마저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또 지구 반대편 대서양에서도 스쿨피시 대신 유목(流木)조업을 선호한다.

선장은 안절부절

그러나 차츰 참치 떼의 생태가 밝혀지면서 이 어법이 도입된 것이다. 요즘은 선장의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성공률이 60~70%에 달한다. 그래서 한방 잘 뜨는 선장이 ‘명선장’ 칭호를 얻는다. 사람들은 참치 선망어선을 두고 가장 남성적인 어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패도 많다. 조류 세기와 방향 날씨에 따라 ‘물방’도 허다하다. 기계로 끌어올린 그물을 다음 투망을 위해 챙기는 선원들의 몸놀림이 가볍다. 양망이 끝나갈 무렵 더 이상 그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너무 무리한 힘을 가하면 그물이 터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선원들이 “영차, 영차” 연호하며 애를 쓰지만 그물은 꼼짝할 생각을 않는다. “그물이 어디에 걸렸나. 못 올라올 정도의 양은 아닌데...” 선장은 안절부절이다. 시간이 갈수록 불리하다. 특히 고기는 선도 유지가 필수적이다. 오후 4시 5분. 드디어 첫 고기가 올라온다. 남태평양의 검푸른 물결을 이부자리로 삼고 뛰놀던 대망의 고기가 그물 속에서 데크 위로 쏟아진다. “야! 고기다. 고기!” 선원들은 함성을 지른다. 여느 때의 조업과 다를 바 없지만 이처럼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면서 대어를 거둬 올리기 때문에 그 어느 때 보다 한결 가뿐한 마음이다.

실로 조업 스탠바이한 지 4시간 반 만이다. 이날 저녁 노을이 물들 때까지 잡아 올린 고기는 260t. 참치통조림 원료가 되는 가다랑어가 180t, 황다랑어가 80t, 돈으론 26만 달러(가다랑어 t당 950달러, 황다랑어 t당 1,120달러). 원화로 따지면 2억 800만 원어치. 선원들은 잡은 참치를 차곡차곡 어창에 쌓는다. 이때 브라인 냉동을 한다. 이 냉동법은 우선 영하 6℃에서 어체 표면을 냉동, 육질 내부까지 염분 침투를 못하도록 한 뒤 영하 17℃ 상태에서 소금물을 빼내고 저장하는 방법이다. 어느새 사방에 어둠이 깔린다.

선원들이 그물 속에 든 가다랑어를 끌어올리고 있다. 많을 땐 한 차례 투망에 200~300톤 씩 잡는다.
선원들이 그물 속에 든 가다랑어를 끌어올리고 있다. 많을 땐 한 차례 투망에 200~300톤 씩 잡는다.

스쿨피시 조업으로 450t 어획

얼마 전까지 이글거리던 태양은 온 데 간 데 없고 칠흑같은 밤바다에 적막감이 감돈다. 그러나 오늘은 대어다. 김 선장은 괌 입항 때 미리 준비한 나폴레옹 코냑 한 병을 터뜨린다. 선원 모두가 즐겁다. 2월 들어서는 사조산업 소속 선단들도 쾌조의 어획을 올리고 있었다. 올림피아호(972t, 선장 하명진, 33)가 지난 12일 오후 2시경 솔로몬 군도 스타워트 섬 북동쪽 100해리 해상에서 스쿨피시를 만나 240t을 잡았다. 콜롬비아호(1,106t, 선장 김수성, 32)는 지난 2월 20일 역시 솔로몬 군도 엔다이 환초 동남쪽 80해리 해상에서 유목을 발견, 무려 250t을 끌어 올렸다는 소식이다. 지금까지 한국선단이 스쿨피시로 가장 많이 잡은 것은 450t, 유목조업은 300t으로 기록되고 있다. 스쿨피시 조업 이전 대부분의 선망어선들은 유목조업에 의존해 왔다. 이 조업은 대양에 떠다니는 유목을 발견하는 게 관건이다. 중서부 태평양에는 인도네시아나 파푸아 뉴기니 등지에서 하역작업 중 바다에 떨어진 원목들이 많다. 이들 원목이 조류 따라 유유히 대양으로 흐른다. 일본은 과거부터 중서부 태평양의 참치 선망어업을 육성하기 위해 인공유목을 바다에 띄웠다. 일본은 연간 5,000~6,000개의 인공유목을 투하했다. 이에 드는 정부예산만도 자그마치 200억 원에 달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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