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69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을 여행하려면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69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을 여행하려면
  • 김준 박사
  • 승인 2023.11.14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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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증도면 기점·소악도 (2)
기점·소악도로 가는 길에 만난 아침
기점·소악도로 가는 길에 만난 아침

[현대해양]신안의 70여 개의 유인도 중 최근 여행객이 주목하는 섬으로는 퍼플섬으로 알려진 ‘반월·박지도’와 열두 개의 작은 예배당을 순례하는 ‘기점·소악도’다. 모두 두 개의 섬을 묶어 전라남도가 추진한 ‘가고 싶은 섬 가꾸기’에 선정되었다. 방문객이 거의 없던 한적한 섬이었다. 퍼플섬은 입장료를 받을 만큼 바뀌었고, 순례자의 섬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섬이 되었다.

무엇이 여행객을 붙잡았을까. 그 섬 자원은 무엇일까. 섬 자원과 섬의 관광자원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것, 이를 관광자원이라 한다면 그것은 기점·소악도는 열두 개의 작은 예배당이다. 하지만 섬 자원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자연유산 ‘한국의 갯벌’ 유산구역으로 선정된 갯벌이다. 아쉽다면 여행객은 갯벌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없다는 것이다. 섬의 가치는 섬 자원에서 비롯되어야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속가능성도 여기서 출발한다.

기점·소악도 김양식장
기점·소악도 김양식장
김포자가 붙은 김발
김포자가 붙은 김발
지주식 김 양식을 준비하는 주민들
지주식 김 양식을 준비하는 주민들

특별한 낙지를 만나다

오랜만에 대기점도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 자전거로 노둣길을 달렸다. 마침 매화도 너머 압해도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농게, 짱뚱어, 칠게 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본능적으로 곧 물이 들기를 알기에 그 전에 한나절 먹을거리를 챙겨야 한다. 어제 오후 식탁에 올릴 낙지를 잡았던 갯벌로 향했다. 간밤에 물이 많이 들었지만, 갯벌 흙을 쌓아 ‘묻음낙지’ 자리를 표시한 흔적이 무너지지 않았다.

어제 오후였다. 낙지잡이에 나서는 한 주민을 따라 갯벌에 들어섰다. 우리나라 낙지잡이는 맨손, 연승, 통발, 그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서해 갯벌에서 조업하는 그물에는 양이 적든 많든 낙지가 들어온다. 하지만 낙지잡이가 주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통발이나 주낙(연승)을 이용한 경우는 낙지만 잡기 위해 게를 넣어 미끼로 유인한다. 게는 낙지가 좋아하는 먹이이다. 밤이면 불을 켜고 낙지를 잡기도 하고, 뜰채로 잡기도 한다. 이 경우는 어민보다는 외지인들이 마을어장으로 들어와 잡기 때문에 종종 주민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낙지잡이 중 가장 원시적인 어법은 맨손어업이다. 맨손어업은 호미, 삽(가래) 등 단순한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과 맨손만으로 잡는 방법이 있다. 맨손으로 잡는 경우는 낙지 서식굴에 손을 집어넣어 잡는 법과 서식굴 위에 흙으로 뚜껑을 덮어 잡는 방법이 있다. 어제 시도했던 낙지잡이 방법이다. 이를 묻음낙지라 하는데, 최근에 보기 힘든 맨손어업 중에 하나다.

묻음으로 낙지를 잡으려면, 먼저 낙지의 서식굴을 찾아야 한다. 낙지는 여러 개의 서식굴을 파 놓고 생활한다. 실제로 숨을 쉴 때 흔적을 남기는 ‘부럿’과 먹이를 잡아 들락거리는 구멍이 있다. 경험이 많은 어민들은 흔적을 보고 서식굴에 낙지가 있는지 없는지, 어느 정도 깊이에 머무는지를 가늠한다.

낚지회(탕탕이)
낚지회(탕탕이)
조수웅덩이에서 잡은 망둑어
조수웅덩이에서 잡은 망둑어
아침 해를 맞는 농게, 짱둥어, 칠게
아침 해를 맞는 농게, 짱둥어, 칠게

묻음낙지를 해보다

갯벌에는 다양한 갯벌 생물의 서식굴이 있다. 낙지처럼 바닷물이 들 때 나와서 먹이활동을 하는 생물이 있는가 하면, 물이 빠진 후에 바쁜 생물도 있다. 낙지가 좋아하는 칠게는 물이 빠진 후에 먹이활동을 하고, 낙지는 물이 든 후에 칠게를 잡아먹는다. 따라서 물이 빠진 후에 낙지를 잡으려면 서식굴을 파헤치고 잡아야 하고, 물이 든 후에는 통발이나 주낙 등에 미끼를 설치해 유인해 잡는다.

묻음낙지 잡이는 먼저 낙지 서식굴을 찾아 조심스럽게 파내면 작은 물웅덩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 갯벌 흙을 떠서 덮어 놓는다. 그리고 물이 들때쯤, 낙지가 서식굴에서 나와 웅덩이에 머물며 활동을 준비한다. 이때 조심스럽게 다가가 뚜껑을 열고 낙지를 잡는다. 조금이라도 낌새를 알아차리면 순식간에 깊은 서식굴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기점도 앞에 모두 여섯 개의 묻음낙지를 해 놓았는데 두 마리의 낙지를 잡았다. 주민이 잡아 놓은 낙지까지 더해 저녁 밥상에 올랐다.

바다농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기점도와 소악도는 추석이 지나고 나면 분주하다. 논에 심은 벼들이 익어가면서 황금빛 그러데이션으로 바뀔 무렵이면 가을걷이를 시작한다. 이와 함께 바다농사를 준비해야 한다. 기점·소악도의 바다농사는 김 양식이다. 이곳 김 양식은 갯골과 조간대 사이에 대나무를 꽂고 김발을 걸어서 양식하는 ‘지주식 김 양식’이다.

9월부터 김발을 매달 기둥을 점검하고 새로 교체하는 일을 시작했다. 또 김 씨앗이 포자를 굴이나 가리비 껍데기에 붙이는 일도 해야 한다. 김장배추를 심을 때 육묘장에서 모종을 사듯 김 포자를 사기도 한다. 김 양식 시설은 기점 소악도와 매화도 사이, 증도 사이에 설치한다. 10월이 되면 이렇게 준비한 김 포자를 붙인 김 발을 양식장에서 설치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김 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1980년대 김 양식은 서남해를 대표하는 양식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쇠퇴했다가 최근 우리나라 김이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북미까지 수출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지주식 김 양식은 갯벌이 발달하고 조차가 큰 탓에 선택한 양식 방법이다. 예전의 김 양식보다 규모도 확대되었고, 양식 과정에서 고려할 것도 늘었다. 김 양식이 이루어지는 신안지역 대부분의 갯벌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염산을 사용하면 김 양식을 한 갯벌에서 낙지를 만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곤 했다. 낙지가 없다는 말은 낙지가 좋아하는 칠게 등 게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칠게가 좋아하는 규조류 등 갯벌 생물의 1차 생산자들이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생물다양성과 희귀생물의 서식지의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김 양식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양식법의 개선이 필요하다.

김 부침개
김 부침개
김국
김국
낙지볶음
낙지볶음

소비자가 공동생산자로 나서야 한다

기점·소악도 갯벌에선 낙지, 칠게, 망둑어, 함초 등을 얻어 밥상을 만들고, 여행객에게 내놓을 수 있다. 또 김 양식 등을 통해 어가소득과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소악도의 한 카페에서는 가공한 마른 김은 말할 것도 없고, 김국, 김 피자, 김 쿠키 등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학교나 취업을 위해 도시로 나갔던 자식들이나 은퇴한 출향 인사들이 다시 섬을 찾을 수 있다. 전라남도에서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을 시책으로 10년 동안 추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전이다.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로 노두를 건너오다 양식장 제방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하는 주민을 만났다. 다가가 보니 제방에 뚫린 구멍에서 갈게를 잡고 있었다. 삽으로 구멍을 파내고 끝에 두 개의 갈고리가 달린 꼬챙이를 구멍에 집어넣어 겨울잠을 자는 게를 잡아냈다. 육상가두리나 염전 제방에 구멍을 내서 어민들에게 불청객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게다. 주민들은 겨울에는 갈게를 잡아다 게장을 담아 먹는다. 잡는 것이 번거롭지만 겨울 반찬으로 좋다. 어느 가을철에 노둣길을 걷다가 손자와 함께 망둑어 낚시를 하는 노부부를 보았다. 바닷물이 빠진 너른 갯벌에도 조수웅덩이가 있다. 그곳에는 으레 망둑어가 있었다. 어민들은 망둑어는 빈 낚시로도 잡는다고 한다. 그만큼 식탐이 강하다. 신안, 무안, 해남, 순천, 고흥, 강진 등 서남해에서는 운저리, 문절구라고도 부른다. 가을에 잡은 운저리는 회로 먹고, 무쳐서 먹는다. 말려서는 조림, 구이 등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다. 갯벌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겨울 식량으로 운저리를 말렸다가 겨울 반찬으로 이용했다.

어민들이 세계유산에 맞는 양식을 하고 갯벌어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도 좋은 환경에서 생산된 김과 수산물을 가치에 맞게 소비를 해줘야 한다. 이렇게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가치판매가 이루어지도록 매개하는 플랫폼을 공공영역에서 만들어야 한다. 지금 행정이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갯벌을 지키고 기점·소악도를 지속 가능한 섬으로 유지하는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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