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다시 10 『해동가요』에 나타나는 두 편의 시조
한국 바다시 10 『해동가요』에 나타나는 두 편의 시조
  •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 고신대 석좌교수
  • 승인 2023.11.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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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가요 (출처_한국중앙연구원)
해동가요 (출처_한국중앙연구원)

[현대해양]『해동가요』는 말 그대로 해동, 즉 한국의 가요라는 의미로, 18세기 중반에 김수장(金壽長, 1690∼?)이 편찬한 가곡집이다. 고려 말부터 당시까지의 유명씨의 시조 568수(자작 117수 포함)를 앞세우고 뒤에 무명씨의 시조 315수를 보탰다. 수록된 작품 수는 888수이다. 시조 사상 둘째로 오래된 시가집이며, 『청구영언』, 『가곡원류』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시조집이다.

여기서 가곡은 우리가 흔히 시조(時調)라고 부르는 것으로, 한국 고유의 전통 시를 가사로 삼아 부르는 노래를 뜻한다. 한자 전래 이래 한국의 문학은 한문 문학과 우리말 문학 양 갈래로 나뉘었다. 그중 고려 말 무렵부터 형성된 우리 고유의 노래 형태가 바로 시조다. 결국 가요, 가곡, 시조는 모두 같은 뜻으로, ‘시조’는 문학 형식인 동시에 음악 명칭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여러 사람을 통해 형성되어 간 시조의 범주가 분명해진 것은 1728년 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 덕분이다. 그동안 구전으로 전하던 노래들을 모아 가곡, 즉 시조를 문자로 된 형태로 남김으로써, 시조라는 형식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청구영언』의 뒤를 이어 여러 가곡집이 출현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책이 바로 『해동가요』다. 『해동가요』는 『청구영언』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청구영언』에서 빠진 작품들을 보완해 소개했다.

『청구영언』이 여말 선초에서 18세기까지의 가곡사를 정리했다면, 『해동가요』는 18세기 당대에 새롭게 생성되어 가는 역동적인 가곡의 변모상을 현장감 있게 중계하고 있다. 『청구영언』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성종, 이이, 윤선도 등 새롭게 발굴한 작가의 작품들을 새로 수록했으며, 『청구영언』 편찬 이후 새로 등장한 이정보를 비롯한 사대부 작가, 김우규, 김태석 등의 여항인 작가, 무명씨의 작품 등을 대폭 소개해 『청구영언』 편찬 이후 새롭게 생성된 가곡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사대부와 관료층이 주로 창작한 한시는 형식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고, 따라서 그 내용과 표현도 천편일률적이다. 그러나 순우리말로 된 시조는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이름 없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지을 수 있었기에 형태도 비교적 자유롭고 내용도 그만큼 다양하다. 사표를 낸 신하에게 가지 말라고 붙들고 늘어지는 임금의 노래, 평생 학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유학자의 노래, 무나물에 청국장 맛에 감탄하며 육식자를 비웃는 비건의 노래, 떠돌이 땜장이가 마을 여인들에게 수작을 거는 야한 입담까지, 맛깔스럽고 재치 넘치는 노래들은 우리네 삶을 진솔하게 보여 준다.

『해동가요』 집에 실려 있는 노래 중에 479번째의 노래는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어류들을 대상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은 새롭고도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 노래의 원문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사설시조 형태로 지어진 위의 시는 바다와 물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을 다양하게 펼쳐놓고 있다. 그런데 그 펼침이 단순하지 않다. 그 대상의 특징을 묘사하고 형용하는 말본새가 예사롭지 않다. 그 대상의 본질과 특징을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부만 다시 옮겨오면 사설시조가 지닌 리듬감도 있지만, 열거되는 대상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준치는 눈 큰 준치로, 갈치는 헐이 긴 갈치로, 메기는 두룻쳐 메육이(메기)로, 낙지는 츤츤 감을치 문어(文魚)의 아들 落蹄(낙지)로, 가자미는 넙치딸 가자미로, 공치는 배부른 올창이 공치로, 곤쟁이는 결례(겨례) 많은 권장이(곤쟁이)로, 배암장어는 고독(孤獨)한 배암장魚로, 고래는 집채같은 고래로, 송사리는 바늘 같은 송사리로, 농게는 눈 긴 농게(물맞이 게)로, 병어는 입 작은 병어(甁魚)로, 오징어는 열업시 생긴(겁 많게 생긴) 烏賊魚(오징어)로, 꼴두기는 오징어의 손자 골독(骨獨)이(꼴두기)로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사설시조의 맛과 멋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중 <추사(秋詞) 2>가 해동가요에 실려 있다. 그런데 여기에 실린 시조는 원래 윤선도의 어부사사사에 실린 후렴구가 빠져 있다. 원래 어부사시사 <추사(秋詞) 2>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원래 시조에 있던 후렴구(닻 들어라 닻 들어라/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를 생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동가요에 실린 시조는 모두 시조창을 위한 곡들이다. 시조창의 초장은 정서를 처음 표출하는 부분이므로 ‘평성’으로, 중장은 초장에서 제시한 정서를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제시하는 부분으로 ‘초고성’으로, 종장은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마무리하는 부분으로 ‘최고성’으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중간에 여음인 후렴구가 들어가면 이러한 노래의 흐름에 지장을 줄 수 있기에 생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20년대 후반까지 시조론자들은 시조의 종류를 논함에 곡조를 기준으로 삼았다. 곡조의 분류가 곧 시조의 종류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는 노래와 가사를 분리하지 않은 가집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시조가 詩이기 이전에 歌였음을 인식하였기에 초, 중, 종장의 구성방식을 노래와 연관시킨 것이다. 그리고 시조의 종류를 논함에 있어 근대 이전의 가집의 전통을 계승하여 곡조별로 종류를 나누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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