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68. ‘한국의 갯벌’보다 ‘작은 예배당’이라고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68. ‘한국의 갯벌’보다 ‘작은 예배당’이라고
  • 김준 박사
  • 승인 2023.10.17 1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안 증도면 기점소악도 (1)
기점소악도
기점소악도

[현대해양] 최근 여러 섬에서 다양한 이름의 재생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내용과 형식이 마뜩찮다. 섬이 죽었나? 인구가 감소하면 섬이 죽나. 거주하는 사람이 계속 줄어드는 것은 맞다. 그래서 섬에 인구가 늘어나면 섬이 살아나고, 인구가 감소하면 죽는다고 한다. 지극히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기후위기, 수온상승, 폭염과 폭우 등도 이러한 사고방식과 무관한가. 그 사업의 방향과 내용과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만 가지고 성공이나 실패를 논의한다. 그리고 재생사업을 추진한 사람들은 성공을 많은 관광객이 오는 것으로 판단한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여행객이 많이 오는 곳은 SNS에 많이 노출되는 장소다. 즉 감성적인 사진이 많이 올라오는 곳이다. 그래서 여행의 목적이 개인미디어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한 것으로 바뀌고 있다. 섬도 마찬가지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조형물이나 멋진 배경을 갖춘 장소가 인기다. 유행처럼 같은 조형물이나 유사한 장소가 인기다. 유행하는 색, 꽃, 소품들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여행객이 반짝 증가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지속되기는 어렵다. 그렇게 되려면 여행객이 감소할 때마다 대상물을 바꾸어 볼거리나 매력성을 제공해야 한다. 섬 재생을 관광객의 여행패턴에 맞추면 생기는 문제다. 대신에 섬의 가치를 생각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 사업의 이름이 재생이든 활성화든 섬의 가치를 생각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섬마다 그 가치가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하고 다르다. 그렇다면 기점도나 소악도의 가치는 무엇일까.

갯벌 위에 작은 별, 기점소악도

기점도는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두 개의 섬을 합해서 부르는 지명이다.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에 속한다. 병풍리는 병풍도,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등 유인도와 여러 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섬은 물이 빠지면 갯벌로 연결되어 일찍부터 노둣돌로 징검다리를 놓아 오갔다. 지금은 시멘트로 포장된 노둣길로 연결되어 있다. 기점도와 소악도로 가는 배는 압해도 송공항에서 출발한다. 목포에서 압해도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 압해도를 가로질러 서쪽에 있는 ‘송공항여객선터미널’이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신안군 중부지역 섬으로 연결된 천사대교 밑을 지나 당사도와 매화도를 거친다. 배는 소악항, 청돌선착장(매화도), 소기점도선착장, 대기점도선착장 순으로 닿는다.

송공항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차림의 일행이 배에 올랐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수도권에서 KTX를 타고 내려온 모양이다. 차림으로 보니 산악회 모임인듯하다. 배가 출발하자 선상에서 간단한 아침식사가 이루어진다. 김밥과 어묵이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이들은 천사대교를 지나자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섬과 바다와 다리가 만들어낸 경관에 매료된 탓이다. 이들과 달리 친구나 연인의 단출한 여행객들도 있다. 이들은 하룻밤 머물겠다는 생각에선지 여유롭다.

기점도에 속하는 대기점도, 소기점도, 장도, 소악도 그리고 딴섬까지 섬과 섬이 갯벌로 연결된다. 물이 들면 섬이 되었다가 물이 빠지면 뭍처럼 연결되는 섬들이다. 그 주변 갯벌은 모두 2021년 세계자연유산에 포함된 ‘한국의 갯벌’ 유산구역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16개의 세계유산 중 자연유산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에 이어 ‘한국의 갯벌’까지 두 개 뿐인 세계자연유산이다. 가장 최근에 등재된 세계유산은 ‘가야고분군(2023)’이다.

여행의 끝을 알리는 종(가롯유다의 집)
여행의 끝을 알리는 종(가롯유다의 집)
기점소악도로 가는 여객선(송공여객선터미널)
기점소악도로 가는 여객선(송공여객선터미널)
대기점도과 병풍도 사이 노둣길
대기점도과 병풍도 사이 노둣길
기점소약도’ 지도(출처_전라남도)
기점소약도’ 지도(출처_전라남도)

순례길을 걸으면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뭍에서 중신애비의 말만 듣고 시집오던 박씨 할머니는 배에서 내려 가마를 타고 노두를 건넜다. 배를 탈 때도 막막했는데, 가마를 타고 갯벌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널 때 심정은 어땠을까. 그렇게 결혼해 낳은 아이들은 징검다리를 건너 학교를 다녔다. 학교에 가는 시간은 물이 빠지는 시간이었고, 집으로 가는 시간은 물이 들기 전이었다. 수업을 하다가도 물이 들기 시작하면 서둘러 책보를 허리춤에 묶고 내달렸다.

그 노둣길과 선창에 열두 개의 ‘작은 예배당’이 세워져 있다. 서너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다. 서남해역의 섬과 어촌에서 전도활동을 하다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순교했던 문준경(1891-1950) 전도사가 모티브가 되었다. 마침 기점소악도가 전라남도가 추진하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섬에 선정되어 ‘순례자의 섬’으로 콘셉트를 정하고 산티에고의 순례길을 모델로 걷는 길에 작은 예배당을 배치한 것이다. 그것이 ‘순례자의 섬_기점소악도’다. 이 섬은 순식간에 세간에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섬이었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던 곳이었다. 주말이면 줄을 서서 배를 타야 했다. 그 덕에 오가는 배편도 늘어나고, 안내센터와 식당과 카페도 생겨났다. 펜션과 민박집도 생겨났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하루 종일 외지인 한명도 보기 힘든 섬에서 이제는 주민들보다 외지인이 더 많이 오가는 섬으로 바뀌었다.

송공항에서 출발한 배가 반시간이 조금 지나 대기점도 선착장에 이른다. 선착장 입구에 작은 예배당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질 급한 여행객은 휴대폰을 들고 힘껏 당겨서 찍은 사진을 확대해 살펴보기도 한다. ‘베드로의 집(건강의 집)’이다. 그 옆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화장실이 있다. 베드로의 집과 화장실 사이에 종이 있다. 순례자의 섬 여행의 시작은 종소리와 함께 이루어진다. 바닷물이 빠지면 배를 접안하기 어려운 섬이라 갯벌을 지나 갯골까지 둑을 쌓고 끝에 선착장을 만들었다. 그 끝에 ‘베드로의 집’을 올렸다. 이곳에는 자전거를 빌려준다. 걸어서 열두 개의 섬을 돌아보는 것이 쉽지 않다.

기점도를 찾아온 여행객들
기점도를 찾아온 여행객들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노을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노을
‘순례자의 섬’ 지도
‘순례자의 섬’ 지도

열두 개의 쉼터를 따라 걷는 순례자의 길

대기점도항의 베드로의 집에서 나와 자전거를 빌린다. 그리고 북쪽으로 달려 닿는 마을이 대기점마을이다. 마을 앞 전망이 좋은 곳에 ‘안드레아의 집(생각의 집)’이 있다. 이곳에서 병풍도로 이어지는 노둣길이 아름답다. 가장 긴 노둣길이 놓인 곳이다. 이곳에서 쉬어가면 좋다. 작은 예배당이 있기 전에 정자가 있어 주민들이 쉼터 역할을 했던 곳이다. 대기점도에는 이외에도 ‘야고보의 집(그리움의 집)’과 ‘요한의 집(생명평화의 집)’ 그리고 ‘필립의 집(행복의 집)’ 등 모두 다섯 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다. 노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좋은 집은 필립의 집이다. 대기점도와 소악도 사이에 노둣길이 함께 들어오는 배경이다. 노둣길을 건너 소악도로로 내려가면 ‘바르톨로에오의 집(감사의 집)’과 ‘토마스의 집(인연의 집)’이 있다. 바르톨로에오의 집은 작은 둠벙에 구조물을 띄우고 그 위에 예배당을 올렸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볼 수 없다. 태양광을 이용한 조명도 설치되어 밤에 보면 더욱 이채롭다. 하룻밤을 머물러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토마스의 집은 게스트하우스와 가까운 곳에 있다.

소악도로 가는 노둣길 가운데에 ‘마테오의 집(기쁨의 집)’이 있고, 섬에는 ‘작은 야고보의 집(소원의 집)’이 있다. 진섬에는 ‘유다다태오의 집(칭찬의 집)과 ‘시몬의 집(사랑의 집)’이 있다. 그리고 딴섬에 마지막 종을 울릴 수 있는 ‘가롯유다의 집(지혜의 집)’이 있다. 가롯유다의 집은 모래갯벌을 지나야 닿는 작은 무인도 딴섬에 있다. 차가 들어갈 수도 없어 예배당을 짓는 모든 재료를 지고가야 했다. 게다가 물때에 익숙하지 않아 작가와 일하는 분들이 고립되기도 했다. 여행객들도 간혹 바닷물에 잠겨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또 이곳 물때를 알지 못해 들어갔다가 물이 들어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열두 개의 작은 예배당을 따라가는 길은 모두 12킬로미터에 이른다. 작은 예배당은 특정 종교시설이 아니다. 산티에고 순례길이 그렇듯이 치유와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의 쉼터이며, ‘건축미술’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송공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와 걸어서 하루에 돌아보고 가기에는 벅찬 감이 있다. 또 북쪽에 위치한 병풍도를 돌아보는 것까지 생각하면 하루는 머물러야 가능하다. 갯벌로 지는 노을과 갯벌로 떠오르는 아침을 맞는 것도 이채롭다. 배가 기점소악도의 남쪽인 소악도항에도 닿기 때문에 섬에서 떠날 때 다시 배를 탔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이들 섬을 모두 돌아보려면 자전거를 타고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그러니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해찰할 시간이 없다. 하물며 골목에서 섬 주민을 만나거나 갯벌이나 선창에서 사람을 만나도 따뜻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눈길을 줄 시간도 없다. 하룻밤 머물며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