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원더우먼, 그 빛과 그림자
바다의 원더우먼, 그 빛과 그림자
  • 조재호 법무법인 황앤씨 변호사
  • 승인 2023.10.1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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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호 법무법인 황앤씨 변호사
조재호 법무법인 황앤씨 변호사

[현대해양] 금녀의 구역이 깨졌다

국적선사의 선장 및 기관장에 이어 외국 선사에서도 한국인 여성 선장이 나왔다. 그뿐 아니라 국내 최초 여성 도선수습생까지 탄생하자 해운업계는 크게 고무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한국여성해사인협회(Women In Maritime Association Korea, WIMA KOREA)도 결성되었다. 이제 여성 선원을 만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도 아니고, 외관상 선박에서 유리로 된 천장은 없어진 것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의 일이고, 올해 6월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선사인 MOL에서도 최초로 자동차 운반선에 여성 선장을 임명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그 기사에서 여성 선장, 여성 3등 항해사·기관사가 함께 찍은 사진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러한 보도 내용과는 다르게 실제 선박에 승선하는 여성 선원의 비율은 국내 및 전 세계적으로 2% 내외라는 통계가 있다. 아직도 100명의 선원 중 98명은 남성 선원인 것이다. 뭔가 큰 괴리감이 느껴지는데, 결국 현재 바다에는 극소수의 원더우먼들이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변호사가 된 이후 선원과 관련된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여성 선원과 관련되는 사건들이 대폭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여성 선원들이 승선하는데 현재의 승선 환경이나 근무 문화가 충분히 성숙되어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사건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필자가 최근 많이 접하고 있는 사건 종류 중 하나는 ‘선박 내 괴롭힘’이다. MZ세대들이 실습 또는 초급 사관으로 승선하면서, 장기간 승선 생활을 해온 상급 선원들의 업무 지시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선박은 직장과 주거가 하나로 되어 있는 곳이며, 항해 중이나 외국 항에서는 자신이 원한다고 해도 임의로 하선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다면 이는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그 괴롭힘의 강도가 몇 배로 증폭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극단적인 선택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여성 선원과 관련된 사안에는 직장 내 괴롭힘에 더하여 성희롱이나 따돌림과 같은 내용까지 추가된다. 한 선박에 여성 선원들이 두 명 이상 있는 경우가 드물고, 자신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도 적어서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적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일관되게 본인은 통상적인 방식으로 피해 선원을 대했으며 이러한 방식이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질문을 계속 이어가면 약간의 장난이나 농담은 있었다고 한다. 반면 이를 받아들이는 여성 선원의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상급 선원이 자신에게 대하는 방식이나 업무 중에 이루어진 언동(言動)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최근 선박에 연결된 인터넷과 최신의 디지털 기기를 통해 모두 기록된다. 모욕적이거나 불쾌한 언동을 접했던 직후 본인의 지인들이 있는 소셜미디어에 해당 내용을 모두 전송하였으며, 어떤 순간부터는 회의나 식사 자리에서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켜두기도 한다. 승선경험을 가지고 있는 필자가 이러한 자료들을 볼 때면 서글픈 생각이 앞선다.

양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선상 문화를 위한 과제

필자는 동일한 상황에 대하여 가해자와 피해자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상급 선원들은 자신의 업무 진행 방식을 한번 점검해 보고 필요하다면 수정할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지속해왔던 업무 진행 방식들이라고 하더라도 2023년도의 기준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예전부터 선박에서는 불쾌하고 불편한 상황이 있더라도 가능한 참고 넘기는 문화가 있었던 것이지, 상급자의 행동이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기준을 제시하자면 원칙적으로 선박에서 업무 중 혹은 식사나 회식 과정에서 하는 모든 언동은 누군가가 녹음을 해서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게재되더라도 당당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다소 삭막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농담이었다거나 선박 업무의 특성상 이정도의 방식은 필요하다는 호소는 통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형사법상 유죄 판결의 근거로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다.

피해를 입은 선원 역시 자신이 느낀 불쾌한 상황에 대하여 이를 곧바로 법적 절차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본인이 더욱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선상에서 근무 중인 상대방은 자신이 어떠한 가해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을 확률이 크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될 때에는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할 권리나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서 선을 넘는 표현이나 행동이 나온다면 상대방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곧바로 이를 그 사람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조치가 매우 어렵고, 이후에 선박 내 분위기가 자신에게 비우호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필자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본인이 더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절차에 대하여 회사가 보다 선제적으로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회사들이 법정교육의 이수나 최소한의 예비원 확보에 신경을 써왔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세대 간의 갈등이나 여성 선원과 관련한 잠재적인 갈등 요소들은 일선 선박에서 고스란히 감당해왔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회사에서 손을 놓게 된다면, 수 년 내로 법적 분쟁의 양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문제 상황을 접한 선원이 선박에서 계속 근무하는데 아무런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절차와 사내 문화를 속히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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